2009년 재보궐선거
최근 수정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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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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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 ||||||||||
정당 | 기초단체장 | 국회의원 | 광역의원 | 기초의원 | ||||||
1석 | 1석 | 0석 | 2석 | |||||||
- | 1석 | - | - | |||||||
- | 0석 | 1석 | 1석 | |||||||
0석 | 0석 | 1석 | 0석 | |||||||
0석 | 3석 | 1석 | 2석 | |||||||
성향 | 교육감 | |||||||||
2석 |
재보궐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는 평가대로 한나라당이 대패한다. 또 이 날은 노무현 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검찰 출두 하루 전에 치러진 선거여서 한나라당이 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 진출에 실패[1]한 진보신당은 이 선거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고, 민주노동당은 호남에서 약진했다. 전북에서는 무소속이 초강세를 보였다.
특히 재보궐선거 지역구 중 하나였던 경상북도 경주시가 단연 주목을 받았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던 당시 여권 실세였던 정종복이 다시 이 지역구에 출마했고, 친박 성향 퇴역장군 정수성이 맞붙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치열했던 이명박 정부 초기 친이 vs 친박 세력 대결의 핵심 지역구라는 말씀. 당시 한나라당은 실세인 정종복을 밀어주기 위해 하루가 마다하고 경주로 내려와 유세를 하였으나, 결국은 무소속 친박 성향 정수성에게 떡실신. 물론 이후에도 정종복은 매년 총선마다 같은 지역구에 꼬박꼬박 출마했지만[2], 번번이 2위로 물만 먹고 있다.
민주당도 상황은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정세균 지도부가 신건과 정동영을 공천에서 탈락시키자, 반발한 정동영과 신건이 탈당했고, 출마하여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그나마 선거구 1개를 한나라당에게서 탈환했으니, 손해는 없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묻히긴 했으나, 200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충청남도와 경상북도의 교육감 재보궐선거도 실시되었다.
참고로, 투표율은 34.5%가 나왔다.
특히 재보궐선거 지역구 중 하나였던 경상북도 경주시가 단연 주목을 받았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던 당시 여권 실세였던 정종복이 다시 이 지역구에 출마했고, 친박 성향 퇴역장군 정수성이 맞붙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치열했던 이명박 정부 초기 친이 vs 친박 세력 대결의 핵심 지역구라는 말씀. 당시 한나라당은 실세인 정종복을 밀어주기 위해 하루가 마다하고 경주로 내려와 유세를 하였으나, 결국은 무소속 친박 성향 정수성에게 떡실신. 물론 이후에도 정종복은 매년 총선마다 같은 지역구에 꼬박꼬박 출마했지만[2], 번번이 2위로 물만 먹고 있다.
민주당도 상황은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정세균 지도부가 신건과 정동영을 공천에서 탈락시키자, 반발한 정동영과 신건이 탈당했고, 출마하여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그나마 선거구 1개를 한나라당에게서 탈환했으니, 손해는 없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묻히긴 했으나, 200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충청남도와 경상북도의 교육감 재보궐선거도 실시되었다.
참고로, 투표율은 34.5%가 나왔다.
부평구 을 산곡1동, 산곡2동, 산곡4동, 청천1동, 청천2동, 갈산1동, 갈산2동, 삼산1동, 삼산2동, 부개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24,199 | 2위 | |
39.09% | 낙선 | ||
2 | 30,667 | 1위 | |
49.54% | 당선 | ||
5 | 3,468 | 4위 | |
5.60% | 낙선 | ||
7 | 3,568 | 3위 | |
5.7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13,761 | 투표율 29.05% |
투표 수 | 62,118 | ||
무효표 수 | 216 |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에 위치한 지역구라 자연스럽게 최대 격전지로 부상하였다. 박희태, 홍준표, 정몽준 등 여당 지도부는 전 지식경제부차관 이재훈을 전략 공천하여,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전문성과 경륜을 강조했다. 덕분에 지역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GM대우 문제가 선거 이슈로 부각되는가 싶었는데, 민주당에서 재빨리 이명박 정부 심판 여론전에 나서며 프레임을 전환시켜 버렸다.
민주노동당도 따로 후보를 내 야권 단일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민주당 캠프에서는 압승은 못하더라도 500여표차 내 신승을 점쳤으나, 투표함을 열어보니 10%p차 대승이었다. 이후 홍영표는 승승장구하여 여당 원내대표직까지 오르고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승해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4선에 달성하였다.
민주노동당도 따로 후보를 내 야권 단일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민주당 캠프에서는 압승은 못하더라도 500여표차 내 신승을 점쳤으나, 투표함을 열어보니 10%p차 대승이었다. 이후 홍영표는 승승장구하여 여당 원내대표직까지 오르고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승해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4선에 달성하였다.
전주시 완산구 갑 중앙동, 풍남동, 노송동, 완산동, 동서학동, 서서학동, 중화산1동, 중화산2동, 평화1동, 평화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태기표(太基杓) | 3,454 | 3위 |
7.46% | 낙선 | ||
2 | 이광철(李光喆) | 14,919 | 2위 |
32.25% | 낙선 | ||
7 | 김대식 | 989 | 7위 |
2.13% | 낙선 | ||
8 | 김형근 | 1,132 | 6위 |
2.44% | 낙선 | ||
9 | 김형욱 | 1,223 | 5위 |
2.64% | 낙선 | ||
10 | 신건(辛建) | 23,307 | 1위 |
50.38% | 당선 | ||
사퇴 | |||
12 | 이재영 | 1,235 | 4위 |
2.6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3,551 | 투표율 33.03% |
투표 수 | 46,693 | ||
무효표 수 | 434 |
전주시 덕진구 덕진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6,893 | 3위 | |
8.67% | 낙선 | ||
2 | 10,279 | 2위 | |
12.93% | 낙선 | ||
7 | 4,861 | 4위 | |
6.11% | 낙선 | ||
8 | 57,423 | 1위 | |
72.27%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207,845 | 투표율 38.36% |
투표 수 | 79,742 | ||
무효표 수 | 286 |
'어머니, 정동영입니다'라는 감성마케팅으로 요약되는 선거. 왕년의 대권후보로 18대 총선 동작구 을 낙선 이후 향후 정치 생명까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2009년 재보궐선거는 이후 10년에 이르는 정동영의 후반부 정치 인생을 시작한 선거였다. 비록 땅 집고 헤엄치며 당선 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다소 낯간지러운 복귀였지만, 그래도 전북특별자치도(특히 전주시) 민심은 아직 정동영에게 있다는 건 충분히 확인시켜줬으며, 신건과의 무소속 연대로 세 과시에 완벽히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로 정동영은 두 차례의 서울특별시 출마에서 모두 낙선하고 도로 전주시로 돌아오는, 지역 할거 정치인으로서 그치게 되는 한계를 보여주는 선거이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으로 나온 김근식 후보는 13%에도 못미치는, 한나라당과도 큰 차이가 없는 처참한 득표를 하게 된다. 이후 김근식 교수는 10여년 간 공천 경선에서도 밀려 선거에도 나오지 못했으며(...) 특히 국민의당으로 탈당했을 때는 같은 지역구에서 경선도 못해보고 정동영 지지 선언을 하는(...) 수모를 겪는다.[3] 결국 미래통합당에 입당, 21대 총선, 22대 총선에서 송파구 병에 출마했으나 또 낙선하였다.
한편 민주당으로 나온 김근식 후보는 13%에도 못미치는, 한나라당과도 큰 차이가 없는 처참한 득표를 하게 된다. 이후 김근식 교수는 10여년 간 공천 경선에서도 밀려 선거에도 나오지 못했으며(...) 특히 국민의당으로 탈당했을 때는 같은 지역구에서 경선도 못해보고 정동영 지지 선언을 하는(...) 수모를 겪는다.[3] 결국 미래통합당에 입당, 21대 총선, 22대 총선에서 송파구 병에 출마했으나 또 낙선하였다.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40,982 | 2위 | |
36.48% | 낙선 | ||
2 | 채종한 | 2,384 | 6위 |
2.12% | 낙선 | ||
3 | 4,286 | 5위 | |
3.81% | 낙선 | ||
7 | 이순자 | 5,450 | 4위 |
4.85% | 낙선 | ||
8 | 51,545 | 1위 | |
45.88% | 당선 | ||
9 | 채수범 | 1,007 | 7위 |
0.89% | 낙선 | ||
10 | 최윤섭 | 6,682 | 3위 |
5.9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11,494 | 투표율 53.75% |
투표 수 | 113,684 | ||
무효표 수 | 1,348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대동(朴大東) | 21,313 | 2위 |
41.38% | 낙선 | ||
사퇴[5] | |||
7 | 조승수(趙承洙) | 25,346 | 1위 |
49.21% | 당선 | ||
8 | 김수헌(金壽憲) | 4,848 | 3위 |
9.4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6,368 | 투표율 46.73% |
투표 수 | 54,378 | ||
무효표 수 | 2,871 |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이에 단일화가 이뤄졌고, 결국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참고로 공교롭게도 조승수 후보가 첫 당선되었을 땐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다.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24,545 | 2위 | |
44.05% | 낙선 | ||
2 | 25,679 | 1위 | |
46.08% | 당선 | ||
7 | 최준열 | 5,496 | 3위 |
9.8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83,277 | 투표율 19.77% |
투표 수 | 55,997 | ||
무효표 수 | 277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최준호 | 5,692 | 1위 |
46.50% | 당선 | ||
2 | 4,892 | 2위 | |
39.96% | 낙선 | ||
5 | 유문희 | 1,656 | 3위 |
13.5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 | 투표율 16.57% |
투표 수 | ? | ||
무효표 수 | ? |
기호 | 후보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선유무 | |
1 | 김인화 | 384 | 26.21% | 3 | 낙선 | ||
2 | 486 | 33.17% | 1 | 당선 | |||
3 | 연규송 | 469 | 32.01% | 2 | 낙선 | ||
7 | 연장희 | 무소속 | 126 | 8.54% | 4 | 낙선 |
기호 | 후보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선유무 | |
2 | 1,243 | 7.69% | 4 | 낙선 | |||
7 | 권혁복 | 무소속 | 2,405 | 14.89% | 3 | 낙선 | |
8 | 무소속 | 7,270 | 45.01% | 1 | 당선 | ||
9 | 장순철 | 무소속 | 4,696 | 29.07% | 2 | 낙선 | |
10 | 최병호 | 무소속 | 535 | 3.31% | 5 | 낙선 |
기호 | 이름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비고 |
1 | 54,250 | 19.85% | 2위 | 낙선 | |
2 | 권혁운 | 26,677 | 9.76% | 4위 | 낙선 |
3 | 84,893 | 31.07% | 1위 | 당선 | |
4 | 52,639 | 19.26% | 3위 | 낙선 | |
5 | 박창재 | 7,629 | 2.79% | 7위 | 낙선 |
6 | 장기상 | 20,625 | 7.55% | 6위 | 낙선 |
7 | 장기옥 | 26,559 | 9.72% | 5위 | 낙선 |
선거인 수 | ? | 투표 수 | ? | ||
무효표 수 | ? | 투표율 | 17.61% |
2009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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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 |||||||
정당 | 국회의원 | ||||||
3석 | |||||||
2석 |
(투표율: 39%)
5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거였지만, 이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였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참고로 지방자치단체 관련 선거는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실시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5개 중 2개를 건졌지만 경합지에서는 모두 패하고 말았다.
당시 칩거 중이던 손학규 전 대표는 자숙을 계속 해야 한다는 이유로 수원시 장안에 자신 대신 이찬열 후보를 밀었고, 결국 성공하면서 정계에 복귀한다. 안산시 상록 을에서는 김영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양산시를 양보받는 대신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임종인 후보에게 후보를 단일화하라는 시민단체와 군소 야당들의 요청을 거절함으로서 경남 양산시에서 송인배 후보가 단일화에 실패해 석패하는 결과를 겪었다는 분석이 많다. 여당 텃밭인 강릉시를 빼놓고는 전승할 수 있었음에도 박희태 전 대표의 복귀를 불러왔다는 것은 뼈아픈 실책으로 여겨졌다.[6][7] 결국 박희태 전 대표는 이를 계기로 국회의장이 되어 돌아온다.[8]
강원 강릉시에서 창조한국당 후보가 출마했지만 무소속 후보들에게조차 밀려 4위로 낙선했다.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33,106 | 2위 | |
42.67% | 낙선 | ||
2 | 38,187 | 1위 | |
49.22% | 당선 | ||
5 | 5,570 | 3위 | |
7.17% | 낙선 | ||
7 | 윤준열 | 716 | 4위 |
0.9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17,067 | 투표율 35.83% |
투표 수 | 77,793 | ||
무효표 수 | 214 |
이 선거에서 당선된 이찬열 의원은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 3선까지 했으나, 2017년 자신의 계파 수장인 손학규를 따라 국민의당에 입당했고, 이후 바른미래당을 거쳐 자신의 친정인 미래통합당으로 돌아갔다. 그와 별개로 이 때부터 장안구는 수원시장, 국회의원, 경기도지사,대통령 등 모든 선거에서 단 한번도 보수정당의 손을 들어주지 않게 되었다.
안산시 상록구 을 일동, 이동, 부곡동, 월피동, 성포동, 안산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송진섭(宋鎭燮) | 11,420 | 2위 |
33.17% | 낙선 | ||
2 | 김영환(金榮煥) | 14,176 | 1위 |
41.17% | 당선 | ||
3 | 장경우(張慶宇) | 1,145 | 4위 |
3.32% | 낙선 | ||
7 | 김석균(金石均) | 896 | 6위 |
2.60% | 낙선 | ||
8 | 윤문원(尹文遠) | 439 | 7위 |
1.27% | 낙선 | ||
9 | 이영호(李泳鎬) | 987 | 5위 |
2.86% | 낙선 | ||
10 | 임종인(林鍾仁) | 5,363 | 3위 |
15.5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 | 투표율 29.25% |
투표 수 | - | ||
무효표 수 | - |
민주당에서 공천된 구 민주계 출신 김영환 후보와 무소속으로 출마한 열린우리당 출신이자 진보 성향인 임종인 후보가 동시에 출마하면서 야권 표 분산이 예상되었으나, 결과는 김영환 후보의 낙승으로 나타났다. 김영환은 이후 국민의당-바른미래당을 거쳐 2020년 미래통합당에 입당했다.
강릉시 강릉시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34,834 | 1위 | |
50.90% | 당선 | ||
6 | 홍재경 | 901 | 4위 |
1.08% | 낙선 | ||
7 | 송영철 | 23,097 | 2위 |
33.75% | 낙선 | ||
8 | 7,883 | 3위 | |
11.52% | 낙선 | ||
계 | 선거인수 | 170,329 | 투표율 40.34% |
투표 수 | 68,721 | ||
무효표 수 | 295 |
증평군·진천군·괴산군·음성군 증평군 일원, 진천군 일원, 괴산군 일원, 음성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22,077 | 2위 | |
29.64% | 낙선 | ||
2 | 31,232 | 1위 | |
41.94% | 당선 | ||
3 | 정원현 | 3,249 | 4위 |
4.36% | 낙선 | ||
5 | 박기수 | 2,379 | 5위 |
3.19% | 낙선 | ||
7 | 552 | 6위 | |
0.74% | 낙선 | ||
8 | 14,997 | 3위 | |
20.1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4,719 | 투표율 42.88% |
투표 수 | 74,926 | ||
무효표 수 | 460 |
한나라당에서는 경대수 후보가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경회 전 진천군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바람에 보수표가 분산되어[10][11] 민주당 정범구 후보가 5년 만에 국회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여담이지만 이 때 낙선한 경대수 후보는 훗날 19대, 20대 총선에서 해당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다.
양산시 양산시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30,801 | 1위 | |
38.13% | 당선 | ||
2 | 27,502 | 2위 | |
34.05% | 낙선 | ||
5 | 2,836 | 5위 | |
3.51% | 낙선 | ||
7 | 김상걸 | 2,436 | 6위 |
3.01% | 낙선 | ||
8 | 11,162 | 3위 | |
13.82% | 낙선 | ||
9 | 김용구 | 443 | 8위 |
0.54% | 낙선 | ||
10 | 김진명 | 546 | 7위 |
0.67% | 낙선 | ||
11 | 유재명 | 5,033 | 4위 |
6.23% | 낙선 | ||
계 | 선거인수 | 184,691 | 투표율 43.91% |
투표 수 | 81,103 | ||
무효표 수 | 344 |
[1] 당시에는 득표율 2%에 미달하면 정당이 해산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진보신당은 2%를 넘겨 해산을 간신히 면했는데, 봉쇄조항 3%에 약간 못 미치는 2.9%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2] 단,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출마는 했지만, 중도에 사퇴하였다.[3] 상대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후보가 막강한 상황에서 반문 단일화로서는 상징적이긴 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후 바른미래당을 창당을 거치며 국민의당은 사실상 분당되면서...[4]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 강동동, 효문동, 송정동, 양정동, 염포동[5]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와 단일화.[6] 여담으로 송인배는 2012년 19대 총선, 2016년 20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으로 경남 양산(20대 총선에서는 양산시 선거구가 인구 상한선을 넘겨 갑과 을로 분구되었고, 송인배는 양산 갑에 출마했다)에 출마했으나, 두 번 모두 새누리당 윤영석 후보에게 5%p 미만 차로 낙선하면서(...) 10년 넘게 도전했지만 아직까지 배지를 달지 못하고 있다. 한편 20대 총선 당시 양산시 을 선거구에 같은 당 후보로 나온 서형수는 출구조사까지 뒤집으며 한 번에 당선되었다.[7] 그나마 2017년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서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되었다는 게 위안. 참고로 송인배는 친노-친문 계파로 분류된다. 여담으로 문 대통령 역시 경남 양산에 사저가 있으며, 문 대통령 부친의 묘소 역시 양산에 있다.[8] 그러나 돈봉투 사건으로 인해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사퇴했으며, 나중에는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당에서 제명되었다.[9] 파장동, 율천동, 송죽동, 영화동, 연무동,
정자1동, 정자2동, 정자3동, 조원1동, 조원2동[10] 경대수 후보가 괴산군 출신인 데 반해 김경회 후보는 진천군 출신이라는 것, 거기에 괴산군과 증평군 간 지역갈등 역시 표가 갈리는 원인이었다.[11] 소지역주의로 괴산군은 경대수, 진천군은 김경회, 음성군은 정범구를 밀어주었는데, 괴산군과 갈등이 있는 증평군의 유권자들이 괴산군 출신인 경대수 뿐만 아니라 경대수와 같은 정당 출신인 김경회도 거부하면서 그 표를 민주당의 정범구가 받았다. [12] 물론 이후 손녀딸 같아서 그랬다라는 최후의 명언과 함께 금지어가 되면서 국립묘지 안장 자격도 박탈당했다.
정자1동, 정자2동, 정자3동, 조원1동, 조원2동[10] 경대수 후보가 괴산군 출신인 데 반해 김경회 후보는 진천군 출신이라는 것, 거기에 괴산군과 증평군 간 지역갈등 역시 표가 갈리는 원인이었다.[11] 소지역주의로 괴산군은 경대수, 진천군은 김경회, 음성군은 정범구를 밀어주었는데, 괴산군과 갈등이 있는 증평군의 유권자들이 괴산군 출신인 경대수 뿐만 아니라 경대수와 같은 정당 출신인 김경회도 거부하면서 그 표를 민주당의 정범구가 받았다. [12] 물론 이후 손녀딸 같아서 그랬다라는 최후의 명언과 함께 금지어가 되면서 국립묘지 안장 자격도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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