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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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구 시가지라 불리는 곳이다. 그렇다고 신 시가지가 딱히 정해져 있는것은 아니지만 중소도시들이 다 그렇듯 평택역 앞은 과거부터 번화가였으며 계속해서 확장되어진 지역이다. 현재 개발중인 신시가지와는 거리가 있기에 역 앞 건물을 보면 전형적인 중소도시의 풍경을 보여주는 곳.
그래도 평택역 앞 오거리는 천안, 안성, 안중, 송탄으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에 유동 인구가 매우 많고 과거부터 번화가였던 곳이라 특히 평택 관내는 물론 인접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큰 상권으로서 메리트가 있는, 평택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다.
그래도 평택역 앞 오거리는 천안, 안성, 안중, 송탄으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에 유동 인구가 매우 많고 과거부터 번화가였던 곳이라 특히 평택 관내는 물론 인접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큰 상권으로서 메리트가 있는, 평택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은 평택동 거의 전 구간이 뻑뻑하다. 물론 진짜 헬게이트인 곳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평택에서는 가장 그렇다는 것.
2000년대 중반 까지만해도 평택역 앞 오거리에 신호등이 없었다. 당시 평택역에 처음오는 사람들은 당연히 황당해 했었다. 그 와중에 유유히 차사이로 길을 건너면 그건 십중팔구 평택 사람.(횡단보도 대신 지하도가 있었다.) 물론 개선된지 10년이 훌쩍 넘었기에 현재는 그런 혼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역와 버스터미널이 근접해있다. 특히 서울노선만 운영하는 고속버스터미널은 역 바로옆에 위치해 있고 서울과 그외 노선을 운영하는 시외버스터미널도 500미터 안쪽에 위치한다.
평택역 광장 맞닿아 있는 곳에 대놓고 사창가가 있다. 차후 구획정비로 없어지니까 정육점 불빛이 심한거 같아도 무심하게 넘어가자.
이름과는 달리, 역사적으로는 평택 고을이 아닌 진위 고을의 영역이었다. 일제가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진위군, 평택군 및 수원군 남부를 통폐합해 설치한 진위군[1]의 새로운 중심 시가지를 조성하기 위해, 이 지역에 있던 자연부락을 합쳐 임의로 '평택'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2] 이 평택리가 1986년 평택시 승격으로 그대로 평택동으로 바뀌었다. 평택시/역사를 참고.
평택역 광장 맞닿아 있는 곳에 대놓고 사창가가 있다. 차후 구획정비로 없어지니까 정육점 불빛이 심한거 같아도 무심하게 넘어가자.
이름과는 달리, 역사적으로는 평택 고을이 아닌 진위 고을의 영역이었다. 일제가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진위군, 평택군 및 수원군 남부를 통폐합해 설치한 진위군[1]의 새로운 중심 시가지를 조성하기 위해, 이 지역에 있던 자연부락을 합쳐 임의로 '평택'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2] 이 평택리가 1986년 평택시 승격으로 그대로 평택동으로 바뀌었다. 평택시/역사를 참고.
[1] 이후 1938년 '평택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평택리(동)가 진위군의 새로운 중심지 기능을 하기 위해 설계된 곳이므로, 이때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군명은 바뀌었을 것이다.[2] 1905년 당시 이 곳에 경부선의 기차역이 들어오는데, 역명을 평택역으로 지으면서 부군면 통폐합 이후 이 일대 행정구역도 평택리(역 개통 당시에는 진위군 병남면)가 되었다. 역이나 IC 같은 교통시설의 명칭이 행정구역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지금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예: 수원IC→용인 소재, 서동탄역→오산 소재 등) 평택역, 평택동을 포함한 현 평택 시가지가 비록 전통적으로는 진위의 영역이었더라도, 진위군 소재지(현 진위면)보다 평택군(현 팽성읍)과 훨씬 밀접했기 때문에 '평택'이라는 이름을 따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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