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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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족 출신으로 명의 만력제 즉위 원년인 1574년에 3남 1녀 중에 셋째로 출생하였다. 유일한 딸이었기 때문에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하며, 당시 봉건사회에서는 드물게 여성의 몸임에도 학문과 무예를 닦았는데 그 성취가 남달랐다고 한다.
20세에 석주 토사 겸 선무사 마천승[3]과 혼인하여 1596년 아들 마상린(馬祥麟)을 낳았다. 1599년에 도적을 토벌하기 위해 물푸레나무로 만든 창인 백간창을 쓰는 부대인 백간병(白杆兵)을 남편과 함께 이끌었다. 백간병은 명말청초 전란기에 창으로 무장해 유명했던 정예병으로, 남편인 마천승은 3,000명, 자신은 500명을 이끌었다고 한다.
후에 남편이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 풀려났다가 홧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관직과 함께 그 군사를 이어받아 크게 활약하였다. 사신의 목을 벨 정도로 강단이 있었다고 하며, 도적 600명과 그 수괴인 동산호의 목을 기습하여 이들을 참하기도 했다. 숭정제는 그녀의 활약에 감탄해 술, 비단, 네 수의 시를 하사했다고 한다.
전근대 사람치고는 상당히 장수한 케이스인데, 70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장수로서 활약하여 사병 3천을 이끌고 반란군의 공격으로부터 사천성을 지키는 등 연전연승을 거두었으며, 성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들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늙어서 병약해졌기 때문에 낙향하였다. 그러다 1644년 이자성이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북경을 방어하였지만, 명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이후 남명 정권에 망명해 충정후 작위를 받은 뒤, 칠순의 노구를 이끌고 반란군과 싸움을 계속하다 1648년에 사망했다.
명나라가 쇠퇴하던 시기에 관직 생활을 하면서 국운이 기울었음에도 끝까지 명조에 충성을 다했다는 점에서, 청나라에 투항한 다수의 한족 장수들과 대비되어 칭송받는다. 특히 소수민족 + 여성이라는 비주류 출신의 대명사였음에도 주류인 한족 + 남성 장군들을 뛰어넘는 전공과 충심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당대의 영웅이라 칭할만 하다. 동시에 명나라 사회가 능력이 출중하면 출신에 상관없이 출세할 수 있는, 전근대치고는 개방적인 사회였다는 점을 드러내는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현대 중국에서는 묘족들의 대표적인 위인으로 추앙받는다.
20세에 석주 토사 겸 선무사 마천승[3]과 혼인하여 1596년 아들 마상린(馬祥麟)을 낳았다. 1599년에 도적을 토벌하기 위해 물푸레나무로 만든 창인 백간창을 쓰는 부대인 백간병(白杆兵)을 남편과 함께 이끌었다. 백간병은 명말청초 전란기에 창으로 무장해 유명했던 정예병으로, 남편인 마천승은 3,000명, 자신은 500명을 이끌었다고 한다.
후에 남편이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 풀려났다가 홧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관직과 함께 그 군사를 이어받아 크게 활약하였다. 사신의 목을 벨 정도로 강단이 있었다고 하며, 도적 600명과 그 수괴인 동산호의 목을 기습하여 이들을 참하기도 했다. 숭정제는 그녀의 활약에 감탄해 술, 비단, 네 수의 시를 하사했다고 한다.
전근대 사람치고는 상당히 장수한 케이스인데, 70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장수로서 활약하여 사병 3천을 이끌고 반란군의 공격으로부터 사천성을 지키는 등 연전연승을 거두었으며, 성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들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늙어서 병약해졌기 때문에 낙향하였다. 그러다 1644년 이자성이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북경을 방어하였지만, 명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이후 남명 정권에 망명해 충정후 작위를 받은 뒤, 칠순의 노구를 이끌고 반란군과 싸움을 계속하다 1648년에 사망했다.
명나라가 쇠퇴하던 시기에 관직 생활을 하면서 국운이 기울었음에도 끝까지 명조에 충성을 다했다는 점에서, 청나라에 투항한 다수의 한족 장수들과 대비되어 칭송받는다. 특히 소수민족 + 여성이라는 비주류 출신의 대명사였음에도 주류인 한족 + 남성 장군들을 뛰어넘는 전공과 충심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당대의 영웅이라 칭할만 하다. 동시에 명나라 사회가 능력이 출중하면 출신에 상관없이 출세할 수 있는, 전근대치고는 개방적인 사회였다는 점을 드러내는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현대 중국에서는 묘족들의 대표적인 위인으로 추앙받는다.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9 PS2의 숨겨진 추가무장으로 나온 후 코에이에서 만든 게임에 자주 등장하며 급유명해졌다. 능력치는 9편부터 좋았으나 11편부터 고대무장치고 +B급으로 너프된 무장이다. 그것도 명장이긴 하나 과대평가된 정성공과 비교하면 불공평하다는 의견도 있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94/무력 86/지력 85/정치 71 분투, 돌진, 주사, 제사, 충차, 조영, 덫, 매도, 고무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는 통솔력 91/무력 80/지력 78/정치 60/매력 90 특기 12개 능력치과 특기 배치를 보면 장합보다 모자라다.
삼국지 11에서도 고대무장으로 등장했다. 능력치는 전작보다 하향되어서 통솔력 82/무력 78/지력 76/정치 70/매력 90으로, 전작에 비해서 정치력만 오르고 통솔력과 무력이 너프됐다. 특기는 강행. 그나마 +B급 무관으로 활약한다. 궁합은 마등과 맹획에 맞게 설정되어 있고 이들 세력에 넣으면 돌대가리뿐인 두 세력에서 정치와 지력이 받쳐주는 매우 소중한 장수가 된다. 특히 기병 적성이 S에 친애무장이 마초라 마등군과는 최고의 궁합이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화남의 유력자로 등장한다.
대체역사물 명군이 되어보세!에서는 누르하치에게 패한 유정과 생존장병들이 조선측에 넘어왔는데, 그들 중 한 사람으로 첫 등장한다.
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무목악왕의 패라는 계보의 미등장 데이터로 남았다. 병과는 경기병. 능력치는 무력 75, 지력 73, 통솔 81, 민첩 87, 행운 86.
Fate/Grand Order에서는 초기 유출 캐릭터 중 하나로 실장 예정이었으며, 중국을 무대로 한 2부 3장에 등장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진양옥(Fate 시리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1] 정식으로 관직을 받은 걸로는 유일하지만 사실 낭자군을 이끌어 아버지를 도와 당나라를 건국한 당 고조 이연의 딸 평양공주도 여성이었고, 양가창법의 시조로 여겨지는 여자 군벌 양묘진 같은 이들도 있기는 했다.[2] 양홍옥의 경우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3] 토사라는 관직은 토가족 등 소수민족들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명나라의 지방관직 중 하나이다. 실제로 마천승의 선조인 1대 석주토사인 마정호는 스스로 마원의 후손이라고 자칭했지만 실제로는 토가족이었다고 하며, 마천승은 26대 석주토사이다. 같은 토사직 중에는 파주토사가 있는데, 이 파주토사가 바로 양응룡의 난을 일으키는 양응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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