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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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89년 출생
- 2022년 은퇴
- 창녕 조씨
- 울산광역시 출신 인물
- 학성고등학교 출신
-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 요코하마 FC/은퇴, 이적
- 오미야 아르디자/은퇴, 이적
- 상무 축구단/전역
- 울산 HD FC/은퇴, 이적
- 경남 FC/은퇴, 이적
- 알비렉스 니가타/은퇴, 이적
- 대한민국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
-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08 베이징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대한민국의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
- 2009 FIFA U-20 월드컵 이집트 참가 선수
- 공격수
- 윙어
- 세컨드 스트라이커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윙어 및 세컨드 스트라이커였으며, 최전방도 소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다른 팀이나 대학에서 하이재킹 해갈까 두려웠던 요코하마 FC에서 2007년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던 조영철을 바로 팀에 입단시켰다. 요코하마 FC 이후로는 알비렉스 니가타, 오미야 아르디자까지 총 세 팀에서 뛰었는데, 의외로 가는 팀마다 팬들에게 인기가 엄청났는지 세 팀 모두에서 팀내 최고 인기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3] 실제로 일본내 한 스포츠 신문에서 실시한 J리그 한국 선수 인기도 조사에서 박지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적도 있다. 친화력이 강한지 일본인, 카타르인 등 외국인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고 팬들에게도 팬 서비스를 잘 해서 그런 듯. 그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을 보면 동료들과 어울리는 사진들이 올라오고 그리고 음식 사진들 일본 여성팬들이 보내온 선물 사진들이 올라오는가 하면 일본 여성팬들이 일본어든 한글이든 그를 응원하는 멘션과 댓글을 쓴 것들도 적지 않게 올라온다. 특히 시즌 끝날 때마다 일본에 들르는데 2015년 시즌 카타르, 울산 현대에서 시즌을 마쳤을 때도 마찬가지. 하지만 상무에 있을 때는 전역하기 전엔 일본에 못 가겠지 이제 전역했다 아마 상무에 입대한 뒤에도, 더구나 상무가 2015 K리그 챌린지에서 1위로 승격해서 2016 K리그 클래식에서 뛰게 되었으니 일본 팬들도 그의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을 것이므로 조영철 본인이 SNS 활동은 자주 못하게 되더라도 일본 팬들의 선물과 응원 공세는 이어질 듯 싶다.
2014년 7월 6일 카타르 스타즈 리그 소속 카타르 SC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5년 7월 24일 카타르 SC와의 계약을 1년만에 해지하였다. 갑작스러운 계약 해지로 인해 대부분의 팬들은 의아해했는데...
그러나 2015년 7월 24일 카타르 SC와의 계약을 1년만에 해지하였다. 갑작스러운 계약 해지로 인해 대부분의 팬들은 의아해했는데...
2015년 7월 28일 울산 현대 축구단과 2년 6개월 계약을 맺었다.[4] 반면 윤정환 감독이 부임 후 끝없는 부진에 허덕이고 있던 터라 조영철의 가세를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조영철은 8월 12일 FC 서울을 상대로 교체 투입되어 K리그 첫 데뷔전을 치른 이후 잔부상에 시달리며 한동안 경기에 투입되지 못하였고, 데뷔전을 치른지 2달 후인 10월 17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오랜만에 투입되기도 하였지만 역시 별다른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결국 2경기 출장에 그친 뒤 15시즌을 마쳤고, 시즌 종료 후 바로 상주 상무에 합격하면서 울산 팬들에게 부상 때문에 자주 못 뛰었다고는 하지만 순전히 입대만을 위해 울산에 온 것이 아니냐며 강한 성토를 받았다.[5]
2020년, 일본 축구 5부리그 격인 간사이 1부 리그 팀이자 오사카부에 위치한 티아모 히라카타에서 조영철을 영입했음을 발표했다. #
아직은 프로 리그에서 활약해도 무방한 나이임에도 아마추어격인 5부리그까지 이적해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던지 본인의 sns를 통해 이적한 이유를 밝혔다. 니가타 시절 동료가 이번 시즌에 감독으로 취임했고 미래를 생각해야 될 나이에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 것을 보면 은퇴 후 팀의 스태프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이후 어렵게 시작된 시즌 5부리그의 메시로 군림하며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역 챔피언스리그에서도 3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여줬고 대회에서 히라카타를 우승으로 이끌며 JFL로 승격시키게 되었다.
2021년 JFL에서도 승격팀인 히라카타를 상위권으로 이끌며 당시 무패를 달리던 이와키 FC도 잡는 등의 돌풍을 일으켰다. 다만 2022시즌 J3 라이선스 취득에 실패하면서 바로 또다시 승격은 하지 못했다.
2022시즌을 앞두고는 간토지역 1부 리그팀 도치기 시티로 이적했다.
아직은 프로 리그에서 활약해도 무방한 나이임에도 아마추어격인 5부리그까지 이적해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던지 본인의 sns를 통해 이적한 이유를 밝혔다. 니가타 시절 동료가 이번 시즌에 감독으로 취임했고 미래를 생각해야 될 나이에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 것을 보면 은퇴 후 팀의 스태프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이후 어렵게 시작된 시즌 5부리그의 메시로 군림하며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역 챔피언스리그에서도 3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여줬고 대회에서 히라카타를 우승으로 이끌며 JFL로 승격시키게 되었다.
2021년 JFL에서도 승격팀인 히라카타를 상위권으로 이끌며 당시 무패를 달리던 이와키 FC도 잡는 등의 돌풍을 일으켰다. 다만 2022시즌 J3 라이선스 취득에 실패하면서 바로 또다시 승격은 하지 못했다.
2022시즌을 앞두고는 간토지역 1부 리그팀 도치기 시티로 이적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끈 FIFA U-20 월드컵에서는 첫 경기 카메룬전에 선발 출전하였으나 팀의 0-2 패배를 막지 못했고, 이후 팀이 승승장구하며 8강까지 진출하는 동안 후반 교체로만 투입되어야 했다.
요코하마 FC 입단 후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도 뽑혔는데, 이 때 대표팀 연령 규정이 85년생 이후 출생자, 즉 23세 이하였다. 그리고 당시 조영철의 나이는 89년생인 19세. 무려 4년을 월반해서 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2012 올림픽때도 뽑힐 수 있었다. 조영철은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온두라스전에서 후반 교체로 투입되었는데 여러 차례 나이답지 않은 과감한 슈팅과 돌파를 선보이며 축구팬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여담이지만 이 때 올림픽 대표팀에 뽑힌 89년생이 조영철 말고 한 명 더 있는데 그게 바로 기성용.[7]
성인 대표팀에선 대표적으로 김민우, 남태희와 함께 항상 감독 부임초기에 소집해서 테스트를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개업화환'으로 유명하다. 묘하게도 김민우와 조영철은 J리그의 인기스타라는 공통점이 있다.[8]
조광래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첫 경기인 나이지리아전을 준비하면서 조영철을 깜짝 선발하여 화제가 되었었고 본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했지만 깊은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고, 심지어포지션 파괴자 조광래에 의해 우측 풀백으로 강제 포지션 이동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홍명보 감독 취임 후 첫 무대인 동아시안컵에서도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팬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팬들도 이젠 기대하다 기대하다 못해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2014년 10월 슈틸리케호 1기멤버에 발탁되었다. 10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 최전방공격수로 선발 출장하여 한골을 터뜨릴 뻔 했으나 오프사이드로 무효가 되었다. 그러나 조영철의 위치는 명백한 온사이드로, 부심의 오심 때문에 A매치 데뷔골을 날린 셈. 비록 기록지상으로는 무득점이었으나 그동안의 부진했던 조영철이라고는 상상도 안 될 정도로 위협적인 침투와 부드러운 연계플레이, 부지런한 전방압박으로 축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동안 측면에만 기용해 왔던 감독들이 선수의 능력을 오판한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마저 나왔을 정도.
11월 요르단 전에서는토템 스트라이커 때문에 4-1-4-1전술 때문에 오른쪽에서 한교원, 차두리와 번갈아 자리를 바꾸며 부지런히 공간을 만들고 침투와 패스를 시도했다. 실패는 했지만, 수비수를 제끼고 슈팅을 날리기도. 요르단전 항목에도 나와있듯 전반 27분에 슛을 날린 건 조영철이 아니라 한교원이었다. 슛팅 후 조영철이 바닥에 침을 뱉고 따봉을 날려서 중계진도 헷갈린 모양. 다만 그 전에 남태희의 스루패스를 받지 못한 건 조영철이 맞다.
파라과이전만큼은 아니지만 공격과 수비 압박을 무난하게 수행한 점을 보면 새로운 감독 체제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듯 하다.
조광래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첫 경기인 나이지리아전을 준비하면서 조영철을 깜짝 선발하여 화제가 되었었고 본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했지만 깊은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고, 심지어
2014년 10월 슈틸리케호 1기멤버에 발탁되었다. 10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 최전방공격수로 선발 출장하여 한골을 터뜨릴 뻔 했으나 오프사이드로 무효가 되었다. 그러나 조영철의 위치는 명백한 온사이드로, 부심의 오심 때문에 A매치 데뷔골을 날린 셈. 비록 기록지상으로는 무득점이었으나 그동안의 부진했던 조영철이라고는 상상도 안 될 정도로 위협적인 침투와 부드러운 연계플레이, 부지런한 전방압박으로 축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동안 측면에만 기용해 왔던 감독들이 선수의 능력을 오판한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마저 나왔을 정도.
11월 요르단 전에서는
파라과이전만큼은 아니지만 공격과 수비 압박을 무난하게 수행한 점을 보면 새로운 감독 체제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듯 하다.
2015년 1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전반전 대표팀 경기력이 워낙 끔찍했기 때문에 구자철과 더불어 많은 우려와 비난을 샀다. 결국 72분 이정협과 교체되어 나갔고, 이정협은 후반 추가시간에 득점을 기록하면서 대표팀 최전방 공격수 경쟁에 불을 붙였다.
1월 10일 2015년 AFC 아시안컵 오만전에서 전반 막판에 결승골을 터뜨려 대한민국이 1:0으로 승리했다. 구자철의 중거리 슈팅 후 튕겨나온 공을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밀어넣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사우디전과 마찬가지로 최전방 공격수로서 함량 미달인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했다. 특히 전반 중반까지 상대 수비와 싸워주지 않고 자꾸 왼쪽 측면으로 나가는 바람에 선수들이 왼쪽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밀집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사우디전과 마찬가지로 70분 이정협과 교체되었고, 조별 3차전 호주전부터 이정협이 계속 선발로 나서면서 라인업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아시안컵 이후로는 황의조, 이재성, 권창훈 등 신예 공격 자원들이 속속 발탁이 되면서 2015년을 끝으로 대표팀과의 연은 다하게 되었다.
1월 10일 2015년 AFC 아시안컵 오만전에서 전반 막판에 결승골을 터뜨려 대한민국이 1:0으로 승리했다. 구자철의 중거리 슈팅 후 튕겨나온 공을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밀어넣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사우디전과 마찬가지로 최전방 공격수로서 함량 미달인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했다. 특히 전반 중반까지 상대 수비와 싸워주지 않고 자꾸 왼쪽 측면으로 나가는 바람에 선수들이 왼쪽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밀집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사우디전과 마찬가지로 70분 이정협과 교체되었고, 조별 3차전 호주전부터 이정협이 계속 선발로 나서면서 라인업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아시안컵 이후로는 황의조, 이재성, 권창훈 등 신예 공격 자원들이 속속 발탁이 되면서 2015년을 끝으로 대표팀과의 연은 다하게 되었다.
- 별명은 욘초루. 이름인 조영철을 가타가나로 표기하면 일본어 발음의 한계 때문에 チョ・ヨンチョル로 표기해야 되는데, 이에 따라 영철이 욘초루가 된 것. 여담으로 2017년 전역하면서 없어졌지만, 상주 상무 공식 홈페이지의 선수들 자기소개를 보면 조영철이라 쓰고 욘초루라 읽는다고 쓰여져 있었다 (...) #
- 울산에서 뛰던 2017년에 유부남이 되었다.
- 해외에서 뛰는 선수의 종합소득세 관련하여, 대법원까지 간 '중대한 이해관계의 중심지' 판례에 이름을 남겼다. #
[1] JFL 소속팀으로, J리그부터 따지자면 당시 5부리그에 해당되는 팀이었다.[2] 간토 사커 리그 소속 팀이다.[3] J리그 팬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 소속의 선수의 팬이 되면 그 선수가 나중에 응원하는 팀을 떠나더라도 나쁘게 이적하지 않은 이상 응원해준다.[4] 상무와 경찰청 입대를 위해선 입대 전 시즌에 K리그에서 뛰어야 한다. 상주 상무의 나이 제한이 만 27세이며, 안산 경찰청도 만 29세에서 만 27세로 하향되어 15시즌에 복귀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마지노선에 맞춰서 입대한 셈.[5] 특히 조영철이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났고, 울산 최고의 축구 명문으로 손꼽히는 학성고등학교 출신이었기에 로컬 보이로 성장할수도 있었음을 생각하면... 근데 조영철은 2년 6개월 계약이라 어차피 제대 후에도 남을 것이다[6] 이후 안타깝게도 부친은 2023년 3월 15일날 작고하였다.[7] 다만 기성용은 빠른 89년생이기 때문에 당시 같이 뽑힌 88년생 이청용과 동기이다. 기성용, 이청용도 역시 조영철과 같이 비교적 어린 나이에 뽑혔다.[8] 다만 김민우는 일본에서 사간 도스 단 한 팀에서만 뛰었고, 조영철은 두 차례의 이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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