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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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기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명칭인 연화지(鳶嘩池)는 1700년대 당시 김천의 군수였던 윤택(尹澤) 이라는 인물이 솔개가 연못에서 날아올라 봉황으로 바뀌는 꿈을 꾸고선, 이 꿈을 길몽이자 좋은 징조라고 여겨 저수지의 이름을 연화지라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벚나무가 저수지를 빙 둘러 심겨 있다. 또한 저수지 한 쪽에는 세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작은 섬에는 소나무와 벚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다. 나머지 두 섬은 작은 석재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섬 내부에는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된 봉황대(鳳凰臺)라는 정자 하나가 위치해 있다.[1]
현재와 같은 산책로와 조경 등이 조성된 시기는 1993년경이다.
풍경이 상당히 예쁜 편이라 김천시 내에서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특히 벚꽃이 폈을 때나 야경이 예쁘다. 벚꽃 시즌에는 사람이 꽉 찬다고 보면 된다.
김천예고 출신인 김호중이 내일은 미스터트롯으로 유명해진 후 김천예고 일대가 김호중 거리로 지정되어 관광 산업이 활성화됐는데, 연화지가 김천예고에서 가깝다 보니 덩달아 같이 유명해지기도 했다.
벚나무가 저수지를 빙 둘러 심겨 있다. 또한 저수지 한 쪽에는 세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작은 섬에는 소나무와 벚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다. 나머지 두 섬은 작은 석재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섬 내부에는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된 봉황대(鳳凰臺)라는 정자 하나가 위치해 있다.[1]
현재와 같은 산책로와 조경 등이 조성된 시기는 1993년경이다.
풍경이 상당히 예쁜 편이라 김천시 내에서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특히 벚꽃이 폈을 때나 야경이 예쁘다. 벚꽃 시즌에는 사람이 꽉 찬다고 보면 된다.
김천예고 출신인 김호중이 내일은 미스터트롯으로 유명해진 후 김천예고 일대가 김호중 거리로 지정되어 관광 산업이 활성화됐는데, 연화지가 김천예고에서 가깝다 보니 덩달아 같이 유명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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