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율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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耶律室魯
(972 ~ 1015)
요나라의 인물. 자는 을신은(乙辛隱). 야율십신노, 야율구리사(耶律欧里斯)의 아버지.
(972 ~ 1015)
요나라의 인물. 자는 을신은(乙辛隱). 야율십신노, 야율구리사(耶律欧里斯)의 아버지.
육원부 사람으로 장대하고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성종과 나이가 같아 성종이 그를 아꼈다. 20세에 지후낭군이 되었다가 얼마 후에 숙직관이 되었다.
송나라 정벌 때는 남부재상 야율노과와 통군사령관 소달람을 따라 조, 위 지방을 공략하는데 공훈을 세워 검교태사, 북원대왕이 되었다. 송나라에 통리군을 공략하는 공을 세웠고 송나라와 평화 협정을 맺자 문하평장사, 추성갈절보의 공신이 되었다.
소속 부족에 봉급으로 주는 양이 많이 모자라 부족 사람들이 굶어죽자 야율실로는 조정에 늙은 양과 가죽을 달라고 청해서 남쪽 지방에 비단과 바꾸어 많은 돈을 벌었다. 그 후 북원추밀사, 한왕이 되었고 한덕양이 북원추밀사가 되자 벼슬자리가 사실상 많이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어서 야율실로가 추밀사가 되자 조정 신료들과 백성들이 모두 기뻐했다.
1011년 6월에 성종과 함께 송림에 사냥을 갔다가 사령에 이르러 갑자기 죽으니 44세였다. 수사도, 정사령에 추증되었다.
송나라 정벌 때는 남부재상 야율노과와 통군사령관 소달람을 따라 조, 위 지방을 공략하는데 공훈을 세워 검교태사, 북원대왕이 되었다. 송나라에 통리군을 공략하는 공을 세웠고 송나라와 평화 협정을 맺자 문하평장사, 추성갈절보의 공신이 되었다.
소속 부족에 봉급으로 주는 양이 많이 모자라 부족 사람들이 굶어죽자 야율실로는 조정에 늙은 양과 가죽을 달라고 청해서 남쪽 지방에 비단과 바꾸어 많은 돈을 벌었다. 그 후 북원추밀사, 한왕이 되었고 한덕양이 북원추밀사가 되자 벼슬자리가 사실상 많이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어서 야율실로가 추밀사가 되자 조정 신료들과 백성들이 모두 기뻐했다.
1011년 6월에 성종과 함께 송림에 사냥을 갔다가 사령에 이르러 갑자기 죽으니 44세였다. 수사도, 정사령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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