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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탄다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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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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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9ff,##0065cc 상륙함
볼린데르급RE
어뢰정
Sh-4급, G-5급, D3급, PT 보트US
잠수정 / 함
슈카급, 칼레브급노획, M급, A급, L급, P급, S급, D급, K급, 로니스급노획, 바르스급, L급UK, S급UK, U급UK, 퀘벡급C
호위함
구축함
기뢰전함
순양함
모니터함
군수지원/구난함
순양전함
전함
항공모함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 C: 전후 완공, 윗첨자 UK/US: 영국/미국 해군에서 도입, 윗첨자 노획: 전쟁 중 노획한 함선, 윗첨자 RE: 러시아 제국 시절 개발된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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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мператорская яхта «Штандарт»
external/wio.ru/...
«Марти»
[2]

1. 개요2. 제원
2.1. 슈탄다르트2.2. 마르티
3. 러시아 제국 황실의 요트로서4. 충격과 공포의 마개조5. 제2차 세계대전기의 활약6. 전후

1. 개요[편집]

러시아 제국의 황제 일가가 타고 다니던 황실 요트. 하지만 소련 정부 수립 이후 마개조되어 소련 해군의 기뢰부설함으로 변경되어 2차 세계대전 동안 활약했다.

2. 제원[편집]

2.1. 슈탄다르트[편집]

선박 종류: 황실 소유 요트 (Императорская яхта, Imperial Yacht)
건조 회사: 브루마이스터 & 바인 조선소 (Burmeister & Wain Shipyard), 덴마크 코펜하겐
진수일: 1895년 3월 21일
운용 국가: 제정 러시아
운용 개시 연도: 1896년 9월
배수량: 5480 톤
전장: 128m
너비: 15.8m
: 6.6m
추진 기관: 3중 추진 증기 엔진 x 2 (샤프트 x 2)
속도: 21.18 노트
항속 거리: 12 노트 기준 1400 마일
탑승 인원: 승조원 357명, 전용 승무원 16명
무장: 호치키스제 47mm 3파운더 포 x 8문

2.2. 마르티[편집]

선박 분류: 기뢰부설함
운용 국가: 소련
운용 개시 연도: 1918년
근대화 개장 연도: 1936년
배수량: 5665 톤 (표준) | 6198 톤 (만재)
전장: 122.3 m
너비:14.4 m
: 6.8 m
추진 기관: 3중 추진 증기 엔진 x 2, 보일러 x 4 (샤프트 x 2)
속도: 18.85 노트
승조원: 400명

주포: 130mm 1913년형 B-7 단장포 x 4문
대공포: 76.2mm M-1938형 대공포 x 7문, 45mm 21-K형 대공포 x 3문, 12.7mm DShK 기관총 x 3정
기뢰: 320기

3. 러시아 제국 황실의 요트로서[편집]

본래 슈탄다르트 라는 함명을 사용한 배는 이 배가 처음이 아니며, 이전에도 발트해의 첫 무역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러 함선에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3] 한편 알렉산드르 3세의 명령에 따라 덴마크 코펜하겐의 브루마이스터 & 바인 조선소에서 제작된 슈탄다르트 호는 본래 황실의 관광용 요트로 사용될 예정이었으며, 이후 알렉산드르 3세, 마리아 표도로브나, 니콜라이 황태자를 비롯한 황실의 참관 아래 진수식이 1895년 3월 21일 거행되어, 1896년 9월부터 운행에 들어갔다.

슈탄다르트 호는 마치 물 위를 떠다니는 궁전과 비슷하게 보일 정도로 내부가 아주 화려하게 꾸며졌다.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같은 각종 사치품을 시작으로 편의시설들을 구비하였고, 배는 제국 해군의 지휘 아래 움직였으며, 니콜라이 2세 집권 당시인 1914년의 슈탄다르트 호의 함장은 '니콜라이 파블로비치 사블린' 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07년 핀란드 근해에서 암초와 부딪힌 이후에는 1차 대전 기간동안 드라이독에서 시간을 보냈다.

4. 충격과 공포의 마개조[편집]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였고, 발트 함대의 몇몇 함선들은 시위 참가를 선언하였는데, 본래 황실 요트로써 로마노프 일가의 궂은 시중을 들고 살았던 슈탄다르트(마르타 18)의 승조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슈탄다르트는 적기를 게양하고 2월 혁명과 10월 혁명 모두 참가하였으며, 혁명 종료 이후 붉은 군대 해군에 자진 합류하였다. 이후 1918년, 핀란드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함대는 '얼음 여정' 이라는 이름 아래 헬싱키에서 크론슈타트로 함대를 이동시켰다.

1933년에서 1936년 사이, 마르타 18은 "마르티 (Марти)" 라는 새로운 함명을 부여받고 기뢰부설함으로 함급이 재지정되었다. 또한 근대화 개장도 이루어져 새로운 선체와 무기들이 장비되었으며, 이 시기에 선체를 뜯어고치다시피 하여 거의 환골탈태를 해버렸다. 이후 마르티는 소련 해군 기뢰 부설 함대의 주력이 되었으며, 1941년에는 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

5. 제2차 세계대전기의 활약[편집]

마르티가 겪은 최초의 전투는 1941년 6월 23일에 일어났으며, 그 시기에 마르티는 해상 순찰을 돌고 있었으나 레이더에 발견된 적 잠수함을 추적하여 격침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마르티 역시 1941년 9월 23일 크론슈타트 공습 당시 피해를 입기도 했다.

1941년 11월에는 발렌틴 페트로비치 드로즈드 중장의 지휘 아래 핀란드의 항고 반도 철수 작전에 투입되어 병력 2,029명, 대포 60기, 11기의 박격포, 그리고 탄약 및 음식들 800톤을 크론슈타트로 후퇴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 외에도 마르티는 간간히 지상 포격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1942년 4월 3일 "근위 훈장"을 수여받았다.

6. 전후[편집]

1948년, 마르티는 "오카 (Ока)" 라는 함명으로 다시금 개명하였고 1957년 훈련함으로 재지정되어 복무하다가 1963년 스크랩 처리 되었다.

[1] 러시아 제국 당시 러시아 제국 황실 요트 슈탄다르트. 얄타에서 촬영 - 촬영일자 미상[2] 소련 해군 당시 마르티급 기뢰부설함. 옥챠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아급 전함 1번함 옥챠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아와 함께 촬영 - 촬영일자 미상[3] 이 이름이 마지막으로 쓰인 배가 지금 소개하는 이 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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