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치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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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한글 | 쇼치쿠 주식회사 |
일본어 | 松竹株式会社 |
영어 | Shochiku Co., Ltd. |
본사 소재지 | |
설립일 | |
업종명 | 종합 서비스업 |
상장여부 | 상장기업 |
기업규모 | |
상장시장 | |
종목코드 | |
도호[3], 토에이와 함께 일본 영화 3대 배급사 중 하나이다. 하지만 도호와 토에이가 워낙 초강세라 쇼치쿠는 그렇게 주목받는 상황은 아닌편. 대부분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들은 도호, 토에이를 배급사로 선호하고, 쇼치쿠는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가 아닌 이상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선택하곤 한다.[4] 쇼치쿠 레이블을 단 쇼치쿠 배급 영화는 전체 일본 개봉영화 중 10% 남짓(도호는 70% 이상), 관객 비율은 7% 남짓밖에 안 된다. 도호 레이블 영화는 외국 직배사 뺀 거의 전부 다라서 50% 이상인 편.
이 점 때문에 되려 닛카쓰와 더불어 일본 아트하우스 영화를 이끌었던 스튜디오기도 하다. 오즈 야스지로나 시미즈 히로시처럼 일본 영화사를 관통하는 감독들이 활동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 기반은 되지만 콩라인 이미지 때문에 도호에서는 쉽게 만들지 못할 실험적인 영화들이 여길 통해 배급되거나 제작되었다. 특히 1950~60년대에 신진 감독들을 주축으로 독특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는데, 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요시시게 같은 감독들은 쇼치쿠에서 경력을 시작해 쇼치쿠 누벨바그로 불리며 일본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5] 다만 쇼치쿠 역시 당시엔 이런 영화들을 탐탁치 않게 여겼기에 둘 다 독립 제작사인 아트 시어터 길드(ATG)를 설립하면서 떨어져 나갔다. 이외 야마다 요지도 쇼치쿠 스튜디오에서 활동한다.
타사랑 협동 배급하는 경우도 많다. '크리피 일가족 연쇄실종 사건' 같은 경우엔 쇼치쿠에서 제작했지만 아스믹 에이스랑 공동 배급했다.
TV 애니메이션의 경우 흥행력은 기복이 있지만 고급 제작진을 여럿 섭외해오기 때문에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는 믿고 볼 수 있다는 인식이 많다. 한 예시로 은하영웅전설 Die Neue These의 경우, Production I.G와 공동제작 하고 있으며 예고편을 비롯한 해당 애니의 각종 영상 정보가 모두 쇼치쿠 유튜브 계정으로 올라온다.
쇼치쿠멀티플렉스시어터즈로 영화관도 경영하고 있지만 역시 실적은 별로 좋지 않다.
특기점으로 DVD 시절엔 어지간한 자사 영화에 영어 자막을 곧잘 넣어주기도 했으나 블루레이로 넘어오면서는 영어 자막을 잘 안 넣어준다. 물론 오즈 야스지로 영화처럼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경우엔 넣긴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일본프로야구에 참가하기도 했다. 쇼치쿠 로빈스. 이래 봬도 센트럴 리그 초대 우승팀이라는 영광이 있지만 1952년에 승률 3할 미만은 엄청난 벌금을 물리자는 일종의 캐삭빵에 걸려 해체되고 만다.
일본 전통 연극인 가부키의 주관사로 업계 영향력이 지대하며 가부키 산업은 쇼치쿠의 도움 없이 수익을 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 그런 만큼 가부키 가문들의 대소사, 예컨대 가문 후계자의 배우자를 맞이하는 일 등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건 예능계에서 가장 윗줄로 취급받는[6] 전통 깊은 업계이니만큼 까다로운 기준으로 품격에 맞는 사람을 집안에 들여야 이미지와 사업성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점 때문에 되려 닛카쓰와 더불어 일본 아트하우스 영화를 이끌었던 스튜디오기도 하다. 오즈 야스지로나 시미즈 히로시처럼 일본 영화사를 관통하는 감독들이 활동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 기반은 되지만 콩라인 이미지 때문에 도호에서는 쉽게 만들지 못할 실험적인 영화들이 여길 통해 배급되거나 제작되었다. 특히 1950~60년대에 신진 감독들을 주축으로 독특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는데, 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요시시게 같은 감독들은 쇼치쿠에서 경력을 시작해 쇼치쿠 누벨바그로 불리며 일본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5] 다만 쇼치쿠 역시 당시엔 이런 영화들을 탐탁치 않게 여겼기에 둘 다 독립 제작사인 아트 시어터 길드(ATG)를 설립하면서 떨어져 나갔다. 이외 야마다 요지도 쇼치쿠 스튜디오에서 활동한다.
타사랑 협동 배급하는 경우도 많다. '크리피 일가족 연쇄실종 사건' 같은 경우엔 쇼치쿠에서 제작했지만 아스믹 에이스랑 공동 배급했다.
TV 애니메이션의 경우 흥행력은 기복이 있지만 고급 제작진을 여럿 섭외해오기 때문에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는 믿고 볼 수 있다는 인식이 많다. 한 예시로 은하영웅전설 Die Neue These의 경우, Production I.G와 공동제작 하고 있으며 예고편을 비롯한 해당 애니의 각종 영상 정보가 모두 쇼치쿠 유튜브 계정으로 올라온다.
쇼치쿠멀티플렉스시어터즈로 영화관도 경영하고 있지만 역시 실적은 별로 좋지 않다.
특기점으로 DVD 시절엔 어지간한 자사 영화에 영어 자막을 곧잘 넣어주기도 했으나 블루레이로 넘어오면서는 영어 자막을 잘 안 넣어준다. 물론 오즈 야스지로 영화처럼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경우엔 넣긴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일본프로야구에 참가하기도 했다. 쇼치쿠 로빈스. 이래 봬도 센트럴 리그 초대 우승팀이라는 영광이 있지만 1952년에 승률 3할 미만은 엄청난 벌금을 물리자는 일종의 캐삭빵에 걸려 해체되고 만다.
일본 전통 연극인 가부키의 주관사로 업계 영향력이 지대하며 가부키 산업은 쇼치쿠의 도움 없이 수익을 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 그런 만큼 가부키 가문들의 대소사, 예컨대 가문 후계자의 배우자를 맞이하는 일 등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건 예능계에서 가장 윗줄로 취급받는[6] 전통 깊은 업계이니만큼 까다로운 기준으로 품격에 맞는 사람을 집안에 들여야 이미지와 사업성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 건담 시리즈 극장 상영작 전부
- 기노시타 케이스케 영화
전부대부분 (24개의 눈동자, 카르멘 고향으로 돌아오다) -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마찬가지로 쇼치쿠 전속 감독이었다. 데뷔도 쇼치쿠에서 했고 흥행작 대부분을 쇼치쿠에서 제작,개봉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성향의 영화를 많이 만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스튜디오가 사랑했던 감독"이라는 평가이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TV의 등장으로 영화산업이 주춤거릴때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TV 제작으로 진출하고 쇼치쿠를 나오게 되는게 이게 쇼치쿠가 자초한 바가 크다. 당시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향의 향기" 이후 다음작품을 "전쟁터에서의 굳은 약속(가제)"로 정하고 제작을 준비하는데 영화내용이 반전을 주제로 한 것이 경영진의 심기에 거슬렸다. 쇼치쿠는 별다른 해명도 없이 차기작 제작을 뒤엎어 버리는데 여기에 대노한 기노시타 감독은 길길이 날뛰며 당시 쇼치쿠의 재정/경영상태의 부조리를 언론에 폭로하기까지 하며 쇼치쿠와 대판 싸우다 청춘을 보낸 쇼치쿠에서 퇴사해 버린다. 기노시타 감독 쯤 되면 쇼치쿠의 간판스타급 감독이며 기노시타는 구로사와 감독처럼 제작비에 신경안쓰고 자기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는 자유로운 영혼도 아니었다. 쇼치쿠와 30여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해오면서 한번도 쇼치쿠에 반기를 들지 않았던 기노시타에게 영화주제를 걸고 넘어지는 일은 분명 모욕으로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 크리피 일가족 연쇄실종 사건, 산책하는 침략자
- Free! 시리즈 극장판
[1] 1945년 6월 18일 도쿄도 출신의 사업가로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2] 1953년 4월 2일 도쿄도 출신의 사업가로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제학부와 법학부를 졸업하였고 UCLA로스쿨을 수료하였다.[3] 도호의 전신 중 하나인 구 PCL도 원래는 쇼치쿠에서 일했던 직원이 퇴사하고 나서 설립한 회사다.[4] 예외적으로 극장판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을 제외한 교토 애니메이션 작품은 전부 쇼치쿠가 배급했다.[5] 이마무라 쇼헤이는 쇼치쿠 소속이었던 오즈 야스지로 아래에서 일을 했지만, 활동 자체는 닛카쓰에서 했다.[6] '수영복을 입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마츠 다카코뿐(水着にならなくてもいいのは松たか子だけ)'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웬만한 여자 연예인들은 수영복 그라비아 등으로 벗고 촬영을 해야 하고 가부키 4대 명가 출신인 마츠 다카코 정도쯤 되어야 그 예외가 될만하다는 것이다. #[7] 제작은 스튜디오 지브리. 당시 토호랑 토쿠마쇼텐 사장과 불화가 있어서 유일한 지브리의 쇼치쿠 배급작이다.[8] 후지영화라는 명의로 배급.[9] 이 이전에도 하누만과 7인의 울트라맨의 배급도 맡았다. 이쪽은 엄밀히는 쇼치쿠의 퍼스트파티인 후지영화 배급.[10] 극장 선행상영[11] 극장 선행상영[12] 일본개봉명: 교환 거짓말 일기(交換ウソ日記)[13] 원래는 각종 소프트웨어의 디버그업무를 주로 하는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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