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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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주요 수상 및 헌역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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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Bernardo Bertolucci OMR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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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사망 | |
국적 | |
신체 | 178cm |
학력 |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 (현대문학 / Laurea) |
직업 | 영화 감독, 각본가 |
활동 | |
배우자 | 마리아 파올라 마이노 (1967–1972) 클레어 페플로어(1978–2018) |
2013년의 인터뷰에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나오는 강간장면에서 일부 묘사가 픽션이 아닌, 배우의 동의없이 촬영된 실제상황이라고 감독 스스로가 밝혔으며, 이는 2016년 유튜브 등을 통해 다시 이슈화되면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피해자 여배우 마리아 슈나이더는 2007년 데일리 메일 인터뷰에서 강간당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으며 이때 에이전트와 변호사를 불러 대본에 없는 내용은 촬영할 수 없다고 대응했어야 했다고 고백한 바가 있었다. 슈나이더의 인터뷰에 따르면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즉 대본에 없었던 장면은 강간 장면이 아니라 강간 장면에서 버터를 윤활제로 쓴다는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는 말론 브란도에게서 나왔고, 배우에게는 촬영 직전에 그것이 일방적으로 통보되었다고 한다. # # 슈나이더는 이 장면을 찍고 싶지 않아 했으나 말론 브란도가 그냥 영화일 뿐이라고 설득해서 촬영에 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베르톨루치는 슈나이더가 배우가 아니라 여자로써의 반응을 보여주길 원했다고 밝혔으며 자신이 각본에 없던 내용을 찍게 해서 슈나이더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인정했다. 다만 후회하진 않는다고 밝혀 큰 비난을 받았다. 슈나이더는 2011년 사망했기는 하지만 이 장면의 후유증으로 자살했다는 썰과는 달리 58세에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인터뷰엔 슈나이더가 마약과 자살 시도를 하게 된 것은 영화로 인한 갑작스러운 유명세, 특히 마지막 탱고 영화에서의 이미지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2016년 당시 현장에 있던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는 촬영 당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비토리오 스토라로, 말론 브란도, 마리아 슈나이더 이 4사람을 제외한 다른 스태프들 출입은 엄격히 통제됐으며 이는 주연 여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에 대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배려였다고 회상했다. 또 자신은 촬영감독인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목격했는데, 슈나이더의 말은 거짓말이며 감독의 말이 맞다고 증언했다.#
일단 마리아 슈나이더는 말론 브란도 생전엔 이를 문제 삼지 않았고, 말론 브란도 사후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브랜도에도 출연해 고인이 된 말론 브란도를 추모했다.
어쨌거나 베르톨루치의 이미지는 상당히 개판이 됐으며 제시카 차스테인은 속이 뒤틀렸다고 트윗했고 크리스 에반스는 역겨운 것 이상의 것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소련 외무장관 안드레이 그로미코는 미국 영화 광팬이었고 그가 일정을 위해 뉴욕을 방문했을때 유엔의 소련 대표부 차석대사였던 빅토르 이스라옐란이 그를 위해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틀어주었는데[1], 영화를 본 그로미코는 감히 자기에게 포르노를 보여줬다고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사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처음 X등급을 받은 포르노가 맞다(...). 이후 R등급(청불)로 하향됐다가, 최종 NC-17(청불+제한) 상향 등급을 받았다.
베르톨루치는 슈나이더가 배우가 아니라 여자로써의 반응을 보여주길 원했다고 밝혔으며 자신이 각본에 없던 내용을 찍게 해서 슈나이더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인정했다. 다만 후회하진 않는다고 밝혀 큰 비난을 받았다. 슈나이더는 2011년 사망했기는 하지만 이 장면의 후유증으로 자살했다는 썰과는 달리 58세에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인터뷰엔 슈나이더가 마약과 자살 시도를 하게 된 것은 영화로 인한 갑작스러운 유명세, 특히 마지막 탱고 영화에서의 이미지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2016년 당시 현장에 있던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는 촬영 당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비토리오 스토라로, 말론 브란도, 마리아 슈나이더 이 4사람을 제외한 다른 스태프들 출입은 엄격히 통제됐으며 이는 주연 여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에 대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배려였다고 회상했다. 또 자신은 촬영감독인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목격했는데, 슈나이더의 말은 거짓말이며 감독의 말이 맞다고 증언했다.#
일단 마리아 슈나이더는 말론 브란도 생전엔 이를 문제 삼지 않았고, 말론 브란도 사후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브랜도에도 출연해 고인이 된 말론 브란도를 추모했다.
어쨌거나 베르톨루치의 이미지는 상당히 개판이 됐으며 제시카 차스테인은 속이 뒤틀렸다고 트윗했고 크리스 에반스는 역겨운 것 이상의 것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소련 외무장관 안드레이 그로미코는 미국 영화 광팬이었고 그가 일정을 위해 뉴욕을 방문했을때 유엔의 소련 대표부 차석대사였던 빅토르 이스라옐란이 그를 위해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틀어주었는데[1], 영화를 본 그로미코는 감히 자기에게 포르노를 보여줬다고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사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처음 X등급을 받은 포르노가 맞다(...). 이후 R등급(청불)로 하향됐다가, 최종 NC-17(청불+제한) 상향 등급을 받았다.
연도 | 제목 | 연출 | 각본 | 제작 | 비고 |
1962 | 냉혹한 학살자 La commare secca | O | O | ||
1964 | 혁명전야 Prima della rivoluzione | O | O | ||
1967 | 석유의 길 La via del petrolio | O | O | 다큐멘터리 | |
1968 |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 O | |||
1968 | '사랑과 분노' 中임종 Agonia | O | O | 단편, 옴니버스 영화 참여작 | |
1969 | 파트너. Partner. | O | |||
1970 | O | O | |||
1970 | 거미의 계략[3] Strategia del ragno | O | O | ||
1972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4] Ultimo tango a Parigi | O | O | ||
1976 | 1900년[5] Novecento | O | O | ||
1979 | 루나 La luna | O | O | ||
1981 | 바보같은 자의 비극 La tragedia di un uomo ridicolo | O | O | ||
1987 | 마지막 황제 The Last Emperor | O | O | ||
1990 | 마지막 사랑 The Sheltering Sky | O | O | ||
1993 | 리틀 부다[6] Little Buddha | O | O | ||
1996 | 스틸링 뷰티 Stealing Beauty | O | O | ||
1998 | 하나의 선택 L'assedio | O | O | ||
2001 | 사랑의 승리 The Triumph of Love | O | O | ||
2002 | '텐 미니츠 - 첼로' 中물의 이야기 Histoire D'eaux | O | O | 단편, 옴니버스 영화 참여작 | |
2003 | O | ||||
2012 | 미 앤 유[8] Io e te | O | O |
[1] 그런데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미국 영화가 아니다. 언어만 영어지, 프랑스-이탈리아 자본 영화.[2] 주인공은 파시스트가 되기 위하여 상부의 지령을 받고 자신의 스승을 죽이기 위해, 신혼여행을 가장한 여행을 떠난다. (역시 세계 제2차대전의 이탈리아가 배경)[3] 원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이 원작이며, 주인공은 자신의 아버지의 정부(…)의 호출로 마을에 온다. 그는 세계 제2차 대전, 파시스트들에게 저항했던 레지스탕스의 리더였던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는데... 오페라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4] 베르톨루치 감독 영화중 가장 논란이 많은 영화. 말론 브란도가 나오는 영화. 시작부터 프랜시스 베이컨(화가)의 괴상한 그림들이 나오고, 노출도 강하고 치모도 나온다. 뜬금없이 섹스 장면이 나오는 괴작. 이걸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극장 상영 영화 중에서 최초로 애널 섹스가 직접적으로 묘사된 작품이기도 한데, 이것 또한 극중 나름의 의미(애널섹스는 생식과 관련이 없다는 점)가 있다고 분석된다.[5]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 1900년 같은 해에 태어난 지주의 아들과 소작농의 아들. 그들의 할아버지는 서로가 이해하고 공존하며 살아왔지만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이 들어서자, 할아버지들은 노환으로 죽고 부모들의 정치적 대립을 통해 서서히 사이가 나빠진다. 지주의 아들은 파시스트 편에 선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무솔리니는 좆망해서 공산당이 득세한다.(이탈리아는 공산당이 강한 편이다) 지주의 아들은 보복으로 죽을 뻔하지만 역사의 증거로 놔두라는 소작농의 아들 덕에 목숨을 건지는데...[6]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 그것도 석가모니역으로 출연한 영화였지만 흥행이나 비평은 참혹했다.[7] 에바 그린 주연의 영화. 베르톨루치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 68혁명을 배경으로 한 쌍둥이 남매와 미국인 유학생의 이야기이다. 외설적인 장면이 꽤 있다. 무삭제 버전과 cut된 버전이 있으며 3분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8] 히키코모리 남동생이 약쟁이 의붓누나에 이끌려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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