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십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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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십삼릉에 묻히지 않은 황제는 홍무제, 건문제, 경태제 등 세 명이 있다. 초대 황제 홍무제는 당시 명나라의 수도였던 난징 효릉(孝陵)에 묻혔고, 2대 황제 건문제는 정난의 변으로 실종되어 능을 조성하지 못했다. 7대 황제 경태제는 탈문의 변으로 폐위되어 친왕 신분으로 격하되었기 때문에 북경 서산 인근에 별도로 매장되었고 묘호조차 받지 못해 명십삼릉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현재 중국에서는 장릉(영락제), 소릉(융경제), 정릉(만력제)만 일반에 공개한다.
현재 중국에서는 장릉(영락제), 소릉(융경제), 정릉(만력제)만 일반에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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獻陵. 제4대 황제 인종 홍희제의 능.
景陵. 제5대 황제 선종 선덕제의 능.
裕陵. 제6대 황제 영종 정통제의 능.
茂陵. 제8대 황제 헌종 성화제의 능.
泰陵. 제9대 황제 효종 홍치제의 능.
康陵. 제10대 황제 무종 정덕제의 능.
永陵. 제11대 황제 세종 가정제의 능.
昭陵. 제12대 황제 목종 융경제의 능.
慶陵. 제14대 황제 광종 태창제의 능.
德陵. 제15대 황제 희종 천계제의 능.
思陵. 제16대 황제 의종 숭정제의 능. 이 시기의 명나라는 이미 망국의 길을 걷고 있었기에 숭정제의 무덤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자성의 반란군에게 북경이 함락당하였고 숭정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북경에 입성한 이자성은 숭정제와 황후 주씨의 시신을 전 귀비의 무덤으로 쓰려고 한 묘역에 합장하였고 때문에 명십삼릉 중 규모가 가장 작고 부장품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들어선 청나라도 숭정제의 무덤을 새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사릉은 명십삼릉의 마지막 능이 되었다.
사실 숭정제의 무덤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명나라가 멸망한 뒤 청나라 황제들이 안장되면서 청동릉이 되었다.
사실 숭정제의 무덤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명나라가 멸망한 뒤 청나라 황제들이 안장되면서 청동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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