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그라이츠 후국
최근 수정 시각: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Fürstentum Reuß-Greiz / Reuß älterer Linie | ||
국기 | 국장 | |
Ich Bau Auf Gott 나는 신으로부터 지어졌다 | ||
위치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역사 | ||
1778년 성립 1918년 멸망 | ||
지리 | ||
위치 | 독일 튀링겐 | |
수도 | ||
인문환경 | ||
언어 | ||
종교 | ||
민족 | ||
정치 | ||
정치체제 | ||
국가원수 |
로이스 공가는 모든 남자 구성원이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썼다. 로이스-그라이츠의 경우에는 100세까지 모두 채워지면 다시 1세부터 시작하기로 했으나, 24세를 끝으로 단절되었다.
- 하인리히 11세 (1778-1800)
- 하인리히 20세 (1836-1859)
1794~1859. 1848년 혁명 이후 헌법을 제정은 했으나 실제 시행은 않았다. 오스트리아군에서 복무. - 하인리히 22세 (1859-1902)
1846~1902. 나이가 어려 21세가 될 때까지 모비인 헤센홈부르크의 카롤리네가 섭정했다. 카롤리네는 반프로이센파였으며 그 때문에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때 프로이센군에 게라가 점령되었고 10만 탈레르를 배상해야 했다. 1867년 친정을 시작하면서 헌법을 도입했다. 하인리히 22세도 부모처럼 반프로이센 시각을 견지했고, 보불전쟁의 승리 축하, 빌헬름 1세와 프리드리히 3세에 대한 추모, 비스마르크의 문화투쟁과 사회주의자 진압법을 모두 반대했고 의화단 운동 파병도 반대했다. 별명은 장난꾸러기 하인리히(Heinrich der Unartige). 4녀 헤르미네는 빌헬름 2세의 후처가 되었다. - 하인리히 24세 (1902-1918)
1878~1927. 어릴 적의 사고로 정신과 육체 모두 온전하지 않아 로이스게라 후국의 제후들이 섭정했다. 미혼이었으며 그가 사망함에 따라, 로이스-그라이츠 계통은 단절되었다.
로이스의 노래(Die Reußenhymne)
1860년 율리우스 디텔(Julius Dietel)이 작사했다. 당시 독일 영방들의 국가들이 대개 영국 국가의 곡조를 빌린 것과 달리, 디텔은 요제프 하이든이 작사한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가의 곡조를 빌렸다. 즉 이 노래는 독일인의 노래와 곡조가 같다.
1860년 율리우스 디텔(Julius Dietel)이 작사했다. 당시 독일 영방들의 국가들이 대개 영국 국가의 곡조를 빌린 것과 달리, 디텔은 요제프 하이든이 작사한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가의 곡조를 빌렸다. 즉 이 노래는 독일인의 노래와 곡조가 같다.
Gott, erhalt' in Deiner Gnaden Unsern Fürsten, Deinen Knecht! Wahre Ihn vor allem Schaden, Schmücke Ihn mit Licht und Recht! Geh' mit Ihm auf seinen Pfaden, Bis die letzte Stunde schlägt! Gott, erhalt' in Deiner Gnaden Unsern Fürsten, Deinen Knecht! Spende Glück Ihm, Heil und Frieden, Freude alle Tag' und Stund'! Lieb' und Treu' sei ihm beschieden In des Fürstenhauses Rund! Und Sein ganzes Volk hienieden Segne Ihn mit Herz und Mund: Gott, erhalt' in Deiner Gnaden Unsern Fürsten, Deinen Knecht! |
[1] 그래서 이름과는 달리 작은 집보다 영토가 작았다.[2] 장녀 루이제 카롤리네는 작센알텐부르크 공자 에두아르트(초대 공작 프리드리히의 7남)와 결혼해 2남 2녀를 두었다가 사별하고 로이스게라 공가의 방계 가문인 로이스쾨스트리츠 가문의 하인리히 4세(후손인 아래의 쾨스트리츠 계통 출신 공위요구자와는 동명이인)와 재혼해 1남 3녀를 두었는데, 하인리히 4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증손자 하인리히 14세가 현재 로이스 공가의 수장을 맡고 있다.[3] 정작 이 가문의 본가는 오스트리아에 있다. 진첸도르프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성을 그 대가 끊기면서 19세기 초에 상속해서인데, 게다가 로이스 가문이 다스리던 영지에 있던 성들이 소군정에 의해 몰수되고 동독이 되어버리면서...[4] 상기한 바와 같이, 하인리히 19세의 장녀의 증손자이기도 하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