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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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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왕국 스튜어트 왕조 초대 국왕
로버트 2세
Robert II
Robert II
왕호
로버트 2세 (Robert II)
이름
로버트 스튜어트 (Robert Stewart)
출생
사망
재위기간
배우자
엘리자베스 뮤어(1336년 결혼 / 1355년 사망)
유페미아 드 로스(1335년 결혼 / 1386년 사망)
자녀
로버트 3세, 월터, 로버트, 알렉산더, 마거릿, 마조리, 엘리자베스, 이사벨, 조안나, 캐서린, 데이비드, 월터, 엘리자베스, 에지디아
아버지
월터 스튜어트[1]
어머니
마조리 브루스[2]

1. 개요2. 배경3. 잉글랜드와의 전쟁4. 기타

1. 개요[편집]

스코틀랜드 게일어: Raibeart II
영어 & 스코트어: Robert II

스코틀랜드 왕국 스튜어트 왕조의 초대 국왕으로 독립 영웅 로버트 1세 브루스의 외손자였으며, 선왕 데이비드 2세의 외조카였다.

2. 배경[편집]

월터 스튜어트와 로버트 1세의 딸 마조리 브루스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자식이었다. 300년 넘게 스코틀랜드를 지배할 스튜어트 왕조의 개막이었지만 시작부터 굉장히 불안했다. 대관식을 치르기도 전에 더글러스 가문 등 유력 클랜들이 시비를 걸고 나왔는데 이들은 스튜어트 가문 이전부터 스코틀랜드에 있었던 유서깊은 명문가들이었다.[3] 그래도 스코틀랜드 왕실에는 로버트 2세 외에 왕위계승자가 없었고, 간신히 안정을 찾은 나라에 또 내전이 벌어질 수 있었기에 결국 클랜들도 타협하고 로버트 2세를 스코틀랜드 왕으로 인정하면서 반발은 무효로 끝났다. 하지만 그의 권위는 사실 국왕이 되기 전부터 취약했는데 일단 국왕의 가까운 혈족이란 배경 외엔 군주에 걸맞는 재능이 없었다. 특히 17세의 나이에 에드워드 3세의 잉글랜드군에 맞선 할리던 전투에서는 중앙을 지휘했으나 패전했다. 게다가 네빌스 크로스 전투에선 외삼촌인 데이비드 2세을 버리고 튀었다는(...) 경력이 있었다. 심지어 1363년에 데이비드 2세와 갈등이 커져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로버트 2세는 왕이 될 때부터 나이가 너무 많았던 사람이다. 무려 55세였다.

3. 잉글랜드와의 전쟁[편집]

데이비드 2세에드워드 3세가 맺은 평화조약 덕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모처럼 찾아온 평화를 누리고 있었으나 잉글랜드가 점령한 스코틀랜드 국경 지대가 화근이 되어 이를 둘러싸고 양국의 갈등이 커진 것이 문제였다. 결국 평화는 로버트 2세때 이 지역을 되찾으려고 스코틀랜드가 먼저 공격함에 따라 깨지게 되었고, 잉글랜드도 가만있지않고 공격하면서 15세기까지 양국 간에 치열한 국경 분쟁이 이어졌다. 스코틀랜드의 국력이 워낙 잉글랜드보다 열세인터라 로버트 2세는 프랑스를 끌여들어 공동 작전을 펼치며 잉글랜드 남북을 위협했다. 특히 스코틀랜드군은 잉글랜드군과 정면 대결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일부러 대규모 전투를 피하고 후퇴하며 잉글랜드군이 회군하면 다시 잉글랜드 북부를 약탈했다. 양군이 만난 오터번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은 잉글랜드군을 무찌르고 지휘관이었던 노섬벌랜드 백작의 장남 헨리 퍼시와 그의 동생 랄프 퍼시를 포로로 잡는 등 그동안의 치욕을 갚아주었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다시 대규모로 반격해 와 스코틀랜드에 불리해졌으며 스코틀랜드 기사들과 스코틀랜드에 영향력이 상당하던 더글러스 백작이 전사하면서 국내 정치의 공백이 생겨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또한 프랑스에서도 개입을 꺼리게 되면서 대잉글랜드 전쟁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결국 로버트 2세가 협상에 나서면서 1389년 양국간의 협정으로 전쟁은 일단 막을 내렸다.

이후 로버트 2세는 스코틀랜드의 내정을 다스렸으나 말년에 가면 건강이 나빠져 병석에 눕게 되었고 이 때문에 국정을 돌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이를 틈타 왕세자인 캐릭 백작 존[4]과 3남인 파이프 백작[5] 로버트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자식들에게 권력을 모두 빼앗기게 되었다. 결국 로버트 2세는 74세의 나이로 던 도널드 성(Dundonald Castles)[6]에서 승하했다. 사후 시신은 스콘 수도원(Scone Abbey)[7]에 안치되었다.

4. 기타[편집]

  • 외삼촌인 데이비드 2세와 달리 장성한 아들들이 있어 후사 걱정은 없었고, 스튜어트 왕조는 오랫동안 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
  • 외삼촌인 데이비드 2세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외할아버지 로버트 1세가 한동안 아들을 낳지 못하다가 49세에 늦둥이로 데이비드 2세를 낳은 반면, 로버트 2세의 어머니인 마조리 브루스(1296-1317?)는 로버트 1세가 22세에 일찍 낳은 첫 자식이기 때문이었다.[8]
[1] 스코틀랜드의 6대 최고시종장이다.[2] 로버트 1세의 딸.[3] 특히 더글러스 가문의 경우, 수장인 제임스 더글러스가 로버트 1세를 보좌하며 수많은 전공을 세운 영웅이자 공신이었다.[4] 원래 이름은 존이었지만 왕위에 오른 뒤에는 로버트로 이름을 바꿔 로버트 3세로 불린다.[5] 후의 올버니 공작[6] 지금의 스코틀랜드 와인하우스 예트 킬마목(Winehouse Yett Kilmarnock)[7] 현재의 스코틀랜드 스콘시(Scone city)[8] 참고로 마조리 브루스는 로버트 1세의 첫번째 아내인 마의 이사벨라 소생이고, 데이비드 2세를 비롯한 로버트 1세의 나머지 적자녀들은 두번째 부인 엘리자베스 드 버그 소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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