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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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ドクタースパート Doctor Spurt | |
출생 | ||
죽음 | ||
성별 | 수컷 | |
털색 | 갈색 (鹿毛, 카게) | |
아비 | 호스피털리티(ホスピタリテイ) | |
어미 | 닥터 노블(ドクターノーブル) | |
외조부 | ||
생산자 | 스자키 코지 | |
마주 | 마츠오카 사토루 | |
조교사 | 나리타 하루오 (홋카이도) → 츠카자키 타카시 (미호) | |
성적 | 18전 7승 (7-1-2-8) | |
총상금 | 1억 7154만 8600엔 | |
주요 우승 | G1 | 사츠키상(1989) |
G2 | 케이세이배 3세 스테이크스(1988) | |
G3 | 스테이어즈 스테이크스(1990) | |
지방 중상 | 홋카이도 3세 유슌(1988)[A] | |
레이팅 | 59(1989) / 55(1990) | |
상세 정보 | ![]() |
닥터 스퍼트는 일본의 경주마로, 특이한 혈통과 그에 걸맞는 진기록으로 존재감이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1989년 클래식 세대 중에선 그래도 기억에 남는 말로 알려져 있다.
1대 | 2대 | 3대 |
호스피털리티 ホスピタリテイ 1979 | 튜더 멜로디 Tudor Melody | |
히스 로즈 Heath Rose | ||
토코 포포 トウコウポポ 1969 | 아이언 리에주 Iron Liege | |
후지치요 フジチヨ | ||
닥터 노블 ドクターノーブル 1980 | 차이나 록 China Rock | |
타카츠나미 タカツナミ | ||
로댕 에이코 ロダンエーコ 1972 | 로댕 Rodin | |
팔 스타 パルスター | ||
* - |
부마는 호스피털리티는 오이 경마장 소속으로 8전 8승을 올리고 클래식 시즌 가을에 중앙진출, 세인트 라이트 기념을 우승했지만 클래식 등록을 못해서 킷카상에는 출주하지 못했다. 인대염으로 장기휴양 후 복귀전을 승리했지만 인대염 재발로 은퇴, 통산 11전 10승이란 전적을 올렸다. 2008년 NAR 그랑프리 특별 표창마에 올랐고, 나중에는 오프사이드 트랩의 외조부가 되기도 했다. 모마는 홋카이도 경마에서 18전 2승을 올린, 별로 특별한 성적의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모계 혈통이 하이세이코와 같아 나름 나쁘지 않은 혈통에 속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주목할 만한 계통이 모마의 부마, 즉 외할아버지인데 바로 2004년 JRA 현창마에 선정되었고 최초로 상금 1억엔을 넘겼던 60년대를 대표하는 괴물 경주마 타케시바 오. 즉, 꽤 기대할 만한 혈통의 말이었던 셈이다.
"모계 혈통은 터프하고 힘은 있지만 폭발력에서 모자란 모습을 보인다. 그런 부분을 순발력으로 감싸줄 수 있는 상대" 중에서 마주가 좋아했던 호스피털리티를 교배 상대로 선택해 2번째로 태어난 것이 닥터 스퍼트다. 처음엔 중앙경마에 데뷔시키려 했었지만 닥터 스퍼트의 다리가 외향형이었던데다 같은 혈통의 1살 친형인 닥터 차일드가 홋카이도 경마에서도 1승도 못 올리는 모습을 보고 닥터 스퍼트도 일단은 홋카이도 경마에서 데뷔시키기로 결정한다.
큰 기대를 걸었던 말이 아니기에 조교를 강하게 하지 않아서 신마전과 첫번째 미승리전에선 3착과 2착으로 선전하는 수준이었지만 3번째 미승리전에서 기어이 승리하더니 이후 2연승을 올리고, 첫 중상경기인 '홋카이도 3세 우준(더트 1200m)'에서는 동 레이스의 코스 레코드를 12년만에 갱신하는데 이 레코드 타임은 중앙경마의 동일거리 레코드 타임과 타이기록이기도 했다.
이런 호성적을 기록하자 마주 마츠오카는 중앙으로의 이적을 결정하고 조교사인 나리타 하루오에게 공식으로 사죄장을 보내기도 했는데, 나리타는 "닥터 스퍼트라면 충분히 중앙에서도 통한다. 가서 홋카이도의 실력을 보여주고 오기 바란다"라며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큰 기대를 걸었던 말이 아니기에 조교를 강하게 하지 않아서 신마전과 첫번째 미승리전에선 3착과 2착으로 선전하는 수준이었지만 3번째 미승리전에서 기어이 승리하더니 이후 2연승을 올리고, 첫 중상경기인 '홋카이도 3세 우준(더트 1200m)'에서는 동 레이스의 코스 레코드를 12년만에 갱신하는데 이 레코드 타임은 중앙경마의 동일거리 레코드 타임과 타이기록이기도 했다.
이런 호성적을 기록하자 마주 마츠오카는 중앙으로의 이적을 결정하고 조교사인 나리타 하루오에게 공식으로 사죄장을 보내기도 했는데, 나리타는 "닥터 스퍼트라면 충분히 중앙에서도 통한다. 가서 홋카이도의 실력을 보여주고 오기 바란다"라며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려 했던 진영이지만 홋카이도에서 올린 성적 덕분에 400만엔 이하 조건전에는 출전할 수 없었던지라 자동적으로 중상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케이세이배 3세 스테이크스에 출전한 닥터 스퍼트는 특유의 추입 전략으로 2위를 머리차로 제치고 승리하며 중앙 첫 중상 승리를 달성한다.
이후 4개월간의 장기휴양을 마친 후 사츠키상 트라이얼 경기인 '스프링 스테이크스'에 출전, 역시 추입으로 도전하지만 도주마인 나르시스 느와르가 끝까지 도주하며 3착으로 입상, 사츠키상 출주권을 얻은데 만족한다.
그리고 맞이한 사츠키상은 역대급 흉작소리를 듣는 상황이었다. 인기 1위인 사쿠라 호쿠토 오는 최우수 3세 수말에 선정되었지만 마장 상태가 안좋으면 자랑인 스피드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는데 이날은 하필 비가 내려서 중마장 상태가 되어버린 상황이라 인기 1위지만 승리는 어려울 거라 보여지는 상황에서 인기 2위는 중상 승리는 한번도 없는 앤시스토리, 3위가 지방에서 올라온 기대주인 닥터 스퍼트일 정도로 딱히 눈에 띄는 말이 없는 상태. 그래도 시작된 경기에서는 도주마인 나르시스 누아르와 마이네르 무트가 선도하며 진행되었지만 스트링 스테이크와는 달리 끝까지 버티지 못하며 역분사, 그 틈을 닥터 스퍼트가 파고들어 선두에 서고 맹추격해 온 위너즈 서클을 끝내 따돌리고 닥터 스퍼트가 우승하며 첫 G1 승리를 올리게 된다. 이는 하이세이코 이후 처음으로 지방경마 출신의 경주마가 올린 사츠키상 승리였고, 기수인 마토바 히토시에게는 데뷔 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들어올린 G1 트로피였다.
하지만 사츠키상 승리는 "유력마가 없는(정확히는 유일한 유력마였던 사쿠라 호쿠토 오에게 불리한 마장) 상태에서, 지방출신이라 더트 경험이 있는 닥터 스퍼트에게 유리한 경기에서 우연히 건져올린 뽀록승"이란 이미지가 강해서[2] 더비에서는 인기 4위로 밀리고 실제로 착외 대패. 이후 거리와 마장을 바꿔가며 8번의 경기에 출전하지만 모두 착외로 참패하며 "그저 조열 타입(이른 시기에 본격화 해서 전성기가 빨리 지나는 타입)의 말이 운 좋게 뽀록승 한번 올린 경우"라는 소릴 듣게 된다.
그러던 와중 진영측에서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갑자기 '스테이어즈 스테이크스'의 출주를 결정하는데, 이 경기는 3600m의 거리로 JRA 중상경기 중에서도 굴지의 초장거리 경기였다. 게다가 거리 문제상 보통 많아봐야 10두 전후가 출주하던 경기였으나 이 해에는 총 15두가 출주하는 접전상황, 그래도 G1 승리 경험이 있는 말인지라 3번 인기를 받아 도전하는데, 결과는 4코너부터 선두를 차지해 추격해온 미스터 애덤스를 목 차이로 제치고 우승, 1년 8개월만에 승리를 기록한다. 덤으로 이 경기에서 코스 레코드를 세우는데, 이 승리로 더트 1200m의 단거리 코스 레코드와 잔디 3600m의 초장거리 코스 레코드를 동시에 갖게 된 사츠키상(잔디 2000m) 우승마라는 변태적인 기록을 갖게 된다.
장거리전에 자신감을 갖게 된 진영에선 다음해 봄의 천황상을 목표로 조교에 들어가지만 굴건염으로 은퇴를 결정하게 된다.
은퇴 후에는 종마전향을 하지만 딱히 뛰어난 산구는 없이 종마도 은퇴한 후에는 은퇴마 시설에 들어가서 여생을 보내다 2011년, 25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후 4개월간의 장기휴양을 마친 후 사츠키상 트라이얼 경기인 '스프링 스테이크스'에 출전, 역시 추입으로 도전하지만 도주마인 나르시스 느와르가 끝까지 도주하며 3착으로 입상, 사츠키상 출주권을 얻은데 만족한다.
그리고 맞이한 사츠키상은 역대급 흉작소리를 듣는 상황이었다. 인기 1위인 사쿠라 호쿠토 오는 최우수 3세 수말에 선정되었지만 마장 상태가 안좋으면 자랑인 스피드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는데 이날은 하필 비가 내려서 중마장 상태가 되어버린 상황이라 인기 1위지만 승리는 어려울 거라 보여지는 상황에서 인기 2위는 중상 승리는 한번도 없는 앤시스토리, 3위가 지방에서 올라온 기대주인 닥터 스퍼트일 정도로 딱히 눈에 띄는 말이 없는 상태. 그래도 시작된 경기에서는 도주마인 나르시스 누아르와 마이네르 무트가 선도하며 진행되었지만 스트링 스테이크와는 달리 끝까지 버티지 못하며 역분사, 그 틈을 닥터 스퍼트가 파고들어 선두에 서고 맹추격해 온 위너즈 서클을 끝내 따돌리고 닥터 스퍼트가 우승하며 첫 G1 승리를 올리게 된다. 이는 하이세이코 이후 처음으로 지방경마 출신의 경주마가 올린 사츠키상 승리였고, 기수인 마토바 히토시에게는 데뷔 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들어올린 G1 트로피였다.
하지만 사츠키상 승리는 "유력마가 없는(정확히는 유일한 유력마였던 사쿠라 호쿠토 오에게 불리한 마장) 상태에서, 지방출신이라 더트 경험이 있는 닥터 스퍼트에게 유리한 경기에서 우연히 건져올린 뽀록승"이란 이미지가 강해서[2] 더비에서는 인기 4위로 밀리고 실제로 착외 대패. 이후 거리와 마장을 바꿔가며 8번의 경기에 출전하지만 모두 착외로 참패하며 "그저 조열 타입(이른 시기에 본격화 해서 전성기가 빨리 지나는 타입)의 말이 운 좋게 뽀록승 한번 올린 경우"라는 소릴 듣게 된다.
그러던 와중 진영측에서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갑자기 '스테이어즈 스테이크스'의 출주를 결정하는데, 이 경기는 3600m의 거리로 JRA 중상경기 중에서도 굴지의 초장거리 경기였다. 게다가 거리 문제상 보통 많아봐야 10두 전후가 출주하던 경기였으나 이 해에는 총 15두가 출주하는 접전상황, 그래도 G1 승리 경험이 있는 말인지라 3번 인기를 받아 도전하는데, 결과는 4코너부터 선두를 차지해 추격해온 미스터 애덤스를 목 차이로 제치고 우승, 1년 8개월만에 승리를 기록한다. 덤으로 이 경기에서 코스 레코드를 세우는데, 이 승리로 더트 1200m의 단거리 코스 레코드와 잔디 3600m의 초장거리 코스 레코드를 동시에 갖게 된 사츠키상(잔디 2000m) 우승마라는 변태적인 기록을 갖게 된다.
장거리전에 자신감을 갖게 된 진영에선 다음해 봄의 천황상을 목표로 조교에 들어가지만 굴건염으로 은퇴를 결정하게 된다.
은퇴 후에는 종마전향을 하지만 딱히 뛰어난 산구는 없이 종마도 은퇴한 후에는 은퇴마 시설에 들어가서 여생을 보내다 2011년, 25세의 나이로 죽었다.
- 덤으로, 닥터 스퍼트의 최단거리 승리기록은 미승리전에서 거둔 더트 900m로, 거리적성을 생각한다면 그 폭이 2700에 달하는 상황이다.
- 뽀록승이라곤 해도 어쨌든 G1 우승마이고, 중상전에서 코스 레코드도 세운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강하다는 이미지는 없는 편이다. 뭐 이 부분은 89년 클래식 세대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존재감 없는 동기들 중에선 상당히 오랫동안 활약을 한 편에 속한다.
경주일 | 경마장 | 경기명 | 등급 | 트랙 | 배당 | 인기 | 착순 | 기수 | 1착마 (2착마) |
1988년 (3세, 현 2세, 홋카이도) | |||||||||
6.29 | 서러브레드계 3세 신마 | 더트 900m | 3착 | 야나기사와 요시미 | 다이치 카가와 | ||||
7.13 | 오비히로 | 서러브레드계 3세 | 더트 900m | 2착 | 이토 타카시 | 산와시 쇼리 | |||
7.27 | 오비히로 | 서러브레드계 3세 | 더트 900m | 1착 | (이사베이) | ||||
8.1 | 이와미 | 3세 | 더트 1400m | 1착 | 사사키 카즈오 | (코스모 리더) | |||
8.18 | 칼비 특별 | 더트 1200m | 1착 | (코스모 하티) | |||||
8.3 | 삿포로 | 홋카이도 3세 유슌[A] | 중상 | 더트 1200m | 1착[R1] | (코스모 하티) | |||
1988년 (3세, 현 2세, JRA) | |||||||||
11.13 | GII | 잔디 1400m | 3.3 | 2 | 1착 | (스즈 폴라) | |||
1989년 (4세, 현 3세) | |||||||||
3.26 | GII | 잔디 1800m | 4.4 | 2 | 3착 | 마토바 히토시 | 나르시스 누아르 | ||
4.16 | 나카야마 | GI | 잔디 2000m | 7.9 | 3 | 1착 | (위너즈 서클) | ||
5.28 | 도쿄 | 도쿄 우준 (일본 더비) | GI | 잔디 2400m | 8.7 | 4 | 14착 | 위너즈 서클 | |
11.12 | 도쿄 | OP | 잔디 1800m | 3.9 | 2 | 9착 | 스기우라 히로아키 | 오라클 아스카 | |
12.3 | GII | 잔디 2500m | 13.2 | 8 | 6착 | 마토바 히토시 | 미스터 시클레논 | ||
12.24 | 나카야마 | GI | 잔디 2500m | 59.4 | 13 | 14착 | |||
1990년 (5세, 현 4세) | |||||||||
3.4 | GIII | 잔디 1800m | 4.3 | 3 | 9착 | 마토바 히토시 | 도칸조 | ||
4.11 | 중상 | 더트 2000m | - | 4 | 8착 | 오사이치 브레이비스트 | |||
9.16 | 나카야마 | GIII | 잔디 2200m | 7.9 | 4 | 6착 | 라켓볼 | ||
10.28 | 도쿄 | GI | 잔디 2000m | 27.7 | 8 | 12착 | |||
12.8 | 나카야마 | GIII | 잔디 3600m | 7.4 | 3 | 1착[R2] | (미스터 애덤스) |
(GII) 우승마
|
(GIII) 우승마
|
[A] 1.1 1.2 이후 홋카이도 2세 유슌으로 명칭을 바꿨다가 JBC 2세 유슌으로 대체되며 폐지.[2] 실제로 하와이안 이미지란 말이 비슷한 상태에서 승리하며 "유리한 3가지 조건이 없었다면 절대 승리하지 못했다"라고 진영측에서 자인할 정도로 뽀록승을 올린적이 있는데 닥터 스퍼트의 경우가 그와 비슷했다.[3] 사실 일본 경마를 벗어나 해외 경마쪽으로 가면 이런 변태적인 기록을 세운 말들이 과거 서구권 경마계에선 몇 있는 편이다.[4] 훗날 나리타 브라이언이 비슷하게 거리 1200m인 타카나츠노미야 기념에 출전한 일이 있지만, 이는 근량 부담이 최대한 적은 G1급 레이스에 어쩔 수 없이 참가한 것이고, 관계자들도 갓 G1으로 승격된 대회를 알리는 홍보 담당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으며 예상대로 4착으로 마무리했다.[5] 1600m~3200m. 거리가 좀 되는 신마전부터 주요 트라이얼 경기, 3관 경기와 고마 주요경기 중 최장거리인 천황상 봄의 3200m까지를 커버할 수 있는 거리다. 사실 천황상 봄을 제외하면 3000m 넘어가는 경기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닌지라 그 이상 필요 없기도 하기에 보통은 1600~3000m 정도면 충분하다.[R1] 1:11.8[R2] 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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