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관구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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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管區司令部 military district command |
1954년, 제2야전군이 창설되어, 후방에 관한 업무를 분장하기 위해, 5개의 관구사령부가 창설 되었는데,[1] 각각의 사령부는 당해 소관구역내의 육군 제부대에 대한 군수,[2] 군행정의 지원, 관할지역내의 정부 재산과 군시설보호 유지 관리, 그리고 군관구위수사령부로서 지역내의 위수업무, 예배속부대에 대한 교육훈련의 지휘 및 감독의 제임무를 수행했다.
부대 규모는 군단과 사단의 중간 수준이며 사령관은 대부분 전방 사단장 보직을 마친 소장이 맡았다. 보직 계급은 사단장이 준장이었고 군관구사령관이 소장이었으며 보직 루트가 사단장(준장) → 부군단장(준장) → 군관구사령관(소장) → 군단장(중장)이었으나 군관구사령부가 폐지되고 사단 바로 위가 군단으로 개편되자 사단장의 보직 계급이 소장으로 오르고 보직 루트도 사단장(소장) → 소장급 참모 → 군단장(중장)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해체되면서 일부 군관구사령부는 군수지원 기능만 남아 야전군 휘하의 군수지원사령부로 이어졌다.
부대 규모는 군단과 사단의 중간 수준이며 사령관은 대부분 전방 사단장 보직을 마친 소장이 맡았다. 보직 계급은 사단장이 준장이었고 군관구사령관이 소장이었으며 보직 루트가 사단장(준장) → 부군단장(준장) → 군관구사령관(소장) → 군단장(중장)이었으나 군관구사령부가 폐지되고 사단 바로 위가 군단으로 개편되자 사단장의 보직 계급이 소장으로 오르고 보직 루트도 사단장(소장) → 소장급 참모 → 군단장(중장)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해체되면서 일부 군관구사령부는 군수지원 기능만 남아 야전군 휘하의 군수지원사령부로 이어졌다.
50년대에 창설되어, 80년대 초반에 해체되었기 때문에, 나이 좀 많은 사람들말고는 아는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노인들이 X관구사령부에 근무했다고 말하면 어리둥절한 경우가 많다.
[1] 동시에 창설된건 아니고, 몇년동안 차례로 창설되었다.[2] 지금의 각 군수지원사령부 역할도 겸했다는 얘기다.[3] 당시 전주 주둔. 2013년에 임실로 이전.[4] 당시 창원 주둔. 2015년에 함안으로 이전.[5] 당시 조치원(현 세종시 조치원읍) 주둔. 이후 기계화사단으로 전방 재배치되었다가 향토사단 환원으로 지금의 둔산신도시 일대에 주둔하다가 현 위치(세종시)로 이전.[6] 지금의 안동 구70사단 부지에 주둔.[7] 지금의 36사단 관할구역인 강원도 남부내륙을 담당[8] 당시 대구 용산동 주둔.[9] 지금의 문래공원 자리. 그래서 문래공원 안에는 일명 "박정희 벙커"가 남아있다.[10] 즉 30사단과 33사단 관할 지역. 전방군단 지역인 경기북부 대부분이 빠졌다고 보면 된다.[11] 지금의 수도군단 예하 51, 55사단과 수방사 예하 52, 56사단이 창설(사단 증편)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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