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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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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Perry Como에서 넘어옴
페리 코모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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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암스트롱, 마할리아 잭슨
매리언 앤더슨, 밥 딜런, 존 레논, 줄리 스턴, 키티 웰스
보 디들리, 밀스 브라더스, 로이 오비슨, 폴 로브슨
밴 클라이번, 펑크 브라더스, 엘라 젠킨스, 소니 롤린스, 아티 쇼, 독 왓슨
에디 아놀드, 아트 블래키, 카터 패밀리, 모턴 굴드, 재니스 조플린, 레드 제플린, 제리 리 루이스, 젤리 롤 모턴, 파인톱 퍼킨스, 스태플 싱어즈
조안 바에즈, 부커 티 앤 엠지 에스, 마리아 칼라스, 오넷 콜맨, 도어즈, 그레이트풀 데드, 밥 윌스
버트 배커랙, 더 밴드, 캡 캘러웨이, 도리스 데이, 이작 펄만, 맥스 로치, 얼 스크럭스
진 오트리, 더 블라인드 보이즈 오브 알라바마, 포 탑스, 행크 존스, 브렌다 리, 딘 마틴, 톰 팩스톤
레너드 코헨, 바비 다린, 데이비드 "허니보이" 에드워즈, 마이클 잭슨, 로레타 린, 앙드레 프레빈, 클락 테리
줄리 앤드류스, 로이 헤인즈, 줄리아드 현악 콰르텟, 킹스턴 트리오, 돌리 파튼, 라몬즈, 조지 비벌리 시어
비틀즈, 클리프턴 체니어, 아이즐리 브라더스, 크라프트베르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아르만도 만사네로, 마우드 파웰
비 지스, 피에르 불레즈, 버디 가이, 조지 해리슨, 플라코 지메네즈, 루빈 브라더스, 웨인 쇼터
할 블레인, 닐 다이아몬드, 에밀루 해리스, 루이스 조던, 더 미터스, , 티나 터너
보니 레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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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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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번스타인, 제임스 캐그니, 애그니스 데밀, 린 폰탠, 리언타인 프라이스
카운트 베이시, 케리 그랜트, 제롬 로빈스, 헬렌 헤이스, 루돌프 세르킨
조지 애벗, 릴리안 기시, 베니 굿맨, 진 켈리, 유진 오르만디
레나 혼, 대니 케이, 잔카를로 메노티, 아서 밀러, 아이작 스턴
머스 커닝햄, 밥 호프, 아이린 던, 앨런 제이 러너, 프레더릭 로, 베벌리 실즈
루실 볼, 레이 찰스, 제시카 텐디, 험 크로닌, 예후디 메뉴힌, 앤서니 튜더
페리 코모,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베티 데이비스, 네이선 밀스타인, 알윈 니콜라이
앨빈 에일리, 조지 번즈, 마이어나 로이, 알렉산더 슈나이더, 로저 L. 스티븐스
해리 벨라폰테, 클로데트 콜베르,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메리 마틴, 윌리엄 슈만
디지 길레스피, 캐서린 헵번, 라이즈 스티븐스, 줄리 스턴, 빌리 와일더
베티 콤덴, 로이 에이커프, 아돌프 그린, 헤럴드 니콜라스, 로버트 쇼, 그레고리 펙
자니 카슨, 아서 미첼, 게오르그 솔티, 스티븐 손드하임, 매리언 윌리엄스
커크 더글러스, 아레사 프랭클린, 모튼 굴드, 해럴드 프린스, 피트 시거
자크 당부아즈, 메릴린 혼, 비비 킹, 시드니 푸아티에, 닐 사이먼
에드워드 올비, 베니 카터, 조니 캐쉬, 잭 레먼, 마리아 톨치프
로렌 바콜, 밥 딜런, 찰턴 헤스턴, 제시 노먼, 에드워드 빌렐라
빌 코스비, 프레드 엡, 존 칸더, 윌리 넬슨, 앙드레 프레빈, 셜리 템플
빅터 보르게, 숀 코너리, 주디스 재스민, 제이슨 로바즈, 스티비 원더
21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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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얼 존스, 제임스 리바인, 치타 리베라, 폴 사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워렌 비티, 오시 데이비스 & 루비 리, 엘튼 존, 조앤 서덜랜드, 존 윌리엄스
토니 베넷, 수잔 파렐, 줄리 해리스, 로버트 레드포드, 티나 터너
알 그린, 톰 행크스, 퍼트리샤 맥브라이드, 스팅, 릴리 톰린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글스, 알 파치노, 마비스 스태플스, 제임스 테일러
셰어, 필립 글래스, 레바 매킨타이어, 웨인 쇼터, 해밀턴 팀 (린 마누엘 미란다, 토마스 카일, 알렉스 라카뫄르, 앤디 블렝큰불러)
저스티노 디아즈, 베리 골디, 론 마이클스, 베트 미들러, 조니 미첼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 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Hollywood Walk of Fam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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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페리 코모
PERRY COMO
분야
입성날짜
1960년 2월 8일
위치
라디오: 1706 Vine Street. · 텔레비전: 6676 Hollywood Blvd. · 텔레비전: 6631 Hollywood Blvd.

페리 코모
Perry Como
Perry Como 1944....
본명
피에리노 라널드 코모
Pierino Ronald Como
출생
1912년 5월 1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캐넌즈버그
사망
2001년 5월 12일 (향년 88세)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 인렛 칼러니
직업
가수, 배우
장르
활동
1932년 ~ 1997년
신장
168cm
배우자
로젤 벌린 (1933년 ~ 1998년, 사별)
자녀
라니 코모
테리 코모
데이비드 코모
종교
서명
Perry Como signa...

1. 개요2. 상세

1. 개요[편집]

미국의 가수 겸 배우.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1940~50년대 당시의 많은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수 중에서도 제일 많은 인기를,[1] 아니 미국 음악계 자체에서 제일 인기있는 가수 중 하나였다.

2001년 5월 12일 89세 생일을 6일을 앞두고 사망하였다.

2. 상세[편집]

1950년대 초반 당시 미국 인기 가수의 순위를 보자면 빙 크로스비 > 에디 피셔 > 냇 킹 콜 > 페리 코모 > 프랭크 시나트러로 시나트러가 잠시 밀려 있고 크로스비는 절대적 상징으로 1위를 거머쥐었으며 에디 피셔는 나무위키 문서는 없지만 1928년생, 즉 20대 초반에 빌보트 차트 1위곡을 무려 3개[2]나 배출하여 시나트러가 갖고 있던 여성들의 인기를 상당수 가져왔다.[3] 그리고 냇 킹 콜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흑인에게는 백인과 동등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고 인종차별이 연방법으로도 용인되던 40년대 말 갑자기 신드롬적인 인기로, 프랭크 시나트러 류의 틴 아이돌적인 인기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 백인 기성세대를 매료해 버린 아주 특출난 케이스로 초대박을 거두었고[4] 페리 코모는 그 다음 순위였다. 무슨 말이냐면 크로스비는 비틀즈엘비스 프레슬리, 지미 헨드릭스 같은 상징적 1위[5]였고 냇 킹 콜은 1950년 Mona Lisa로 빌보드 연말 차트 2위[6], 1951년 Too Young으로 빌보드 연말 차트 1위[7]로 명실공히 상업적으로 제일 승승장구하던 가수였다. 코모는 그 다음으로, 크로스비와 콜의 아성은 넘지 못했으나 싱글 차트 1위, 히트곡들을 계속 내놓은 가수였다. 실제로 코모는 40년대 중후반에도 시나트러보다 더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가수이다.[8]

페리 코모의 또 다른 점은, 크로스비나 콜, 시나트러 류의 크루닝 창법 기반 트레디셔널 팝 가수가 아니라, Novelty Song[9]을 주로 불러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55년 발표된 Ko Ko Mo (I Love You So)는 로큰롤/리듬 앤 블루스 곡으로 코모는 빌 헤일리류의 로큰롤이 히트를 치자 마자 이러한 곡을 내놓아 빌보드 차트 5위에 오르며 성공했고 1956년 발표된 Hot Diggity[10]는 그냥 즐겁고 유쾌한 팝 트랙이다. 참고로 이때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온 해였고 프레슬리가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나 코모의 인기는 떨어지지 않았고[11] 1957년 Round and Round로, 1958년 Catch A Falling Star로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다만 이때는 빌보드 핫 100이 아니라 전체 차트를 판매량 차트, 주크박스 차트, 레이디오 디제이 차트로 나눠 했기에 좀 달랐다만 1955년에 개설된 핫 100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탑 100도 있었다. Round and Round는 세 차트 모두 1위를 기록하고 탑 100에서도 1위했지만 Catch A Falling Star는 세 차트 중 두 차트에서 1위 했으나 아쉽게도 탑 100에서는 2위를 했다. 핫 100은 1958년 여름에 개설된다.

1957~58년은 로큰롤이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대였지만 페리 코모는 아직 탑에 있었다. 코모가 원래부터 예술적이라기 보다는 상업적이고 친근한 노래[12]를 부르고 또 성격도 좋았기 때문에 계속 선방한 것이다. 이는 콜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코모도 1959년부터 한동안 침체기였다.

페리 코모 쇼라는 인기 쇼를 1956년부터 진행해서 인기를 끌고 있었으나 가수로선 한동안 침체기였다. 1962년 발매한 싱글이 핫 100에서 23위를 기록하긴 하지만 코모의 가수 경력을 정점으로 올리는 수준은 아니었던데다 1964년엔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음악계가 또한번 크게 바뀌며 음악계에서 코모가 설 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히피 문화가 빠르게 죽은 69년 말 이후 이지 리스닝 열풍으로 코모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1] 같은 이탈리아계인 프랭크 시나트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2] "Wish You Were Here"(1952), "I'm Walking Behind You"(1953), "I Need You Now"(1954)[3] 하지만 현재는 많이 잊혀졌는데 그 이유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의 불륜 때문이며, 불륜 그 자체보단 피셔의 수법이 팬들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불륜 당시의 아내인 <사랑은 비를 타고>의 여주인공 데비 레널즈, 딸인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 역 캐리 피셔 항목 참조. 2010년 사망했으며 1960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4] 냇 킹 콜 전엔 루이 암스트롱이 있었다. 암스트롱 역시 백인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 많은, 즉 미국에서 제일 인기 많은 가수 및 엔터테이너 중 하나였다. 대신 당대 미국 흑인들은 암스트롱을 위선자라고 비판하며 싫어했다. 자신들은 매일같이 차별받고 린치당하는데 최고급 스타의 위치에 올랐으니. 그러나 암스트롱이 미국 흑인에 대한 인식을 전보다 개선한 것은 확실하다. 콜도 그랬었고. 이 두 흑인 스타가 없었으면 백인들이 흑인들을 1910년대 • 20년대처럼 막 약탈하고 죽이고 린치하지 않았겠는가? 실제로 이 두 분이 흑인 인권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5] 50년대 들어 히트곡이 크게 줄었으니. 크로스비의 인기가 떨어졌다기보다도, 크로스비가 1950년대에는 활동을 전 시대에 해 널널하게 했다. 이미 히트곡이 백 개도 넘고 돈도 많고, 나이도 50인데 예전처럼 열심히 할 이유가 있지도 않았다.[6] 1950년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7] 1951년 최고의 히트곡.[8] 코모는 40년대 중후반부터 빌보드 차트 1위 곡을 많이 배출했다.[9] 진지한 노래가 아니고, 고전 미국 쇼의 영향을 받아 코믹하고 즐겁고 유쾌한 가사가 특징인 장르이다.[10] Fall Guys 런칭 예고편에 쓰였다.[11] 크로스비, 시나트러와 달리 코모는 전연령층에 팬들이 있었다. 콜 역시 전연령대에 팬이 있었기에 죽기 전까지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12] 위에서 말했던 Novelty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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