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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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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역사
270년대에서 넘어옴
분류

1. 개요2. 역사
2.1. 동아시아2.2. 지중해 세계(로마 제국)2.3. 중동
3. 주요 사건4.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5. 연도 목록

1. 개요[편집]

3세기는 서력으로 201년부터 300년까지이다.

유럽과 동아시아를 막론하고 지난 세기의 평화가 끝나고 분열의 헬게이트가 열린 세기이다.

2. 역사[편집]

2.1. 동아시아[편집]

이 시대 동아시아는 껍데기만 남은 후한이 완전히 망하고 삼국시대가 개막했다. 삼국지연의 덕분에 한국인들이 다른 어떤 세기보다도, 심지어 20세기보다도 더 잘 아는 중국의 한 세기일 듯하다. 한국 역시 고구려관구검의 침입 등 이런 중국의 혼란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1세기에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는 백제와 신라의 실질적 등장 시기는 3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고이왕의 즉위부터를 실질적으로 국가의 구실을 하게 된 것으로 본다. 신라 역시 포상팔국의 난 등을 거치며 작은 소국들을 제압하고 삼국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삼한 세력은 존재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가 시작된 시기로 보고 있으며, 야마토 왕권의 전신으로 추정되는 야마타이국히미코 여왕이 238년 중국 위 왕조로부터 친위왜왕의 칭호를 받은 기록이 있다. 일본의 일부 세력은 진구 황후라는 인물의 존재를 내세우며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진구 황후는 히미코를 대체하여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미화, 창작된 인물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2.2. 지중해 세계(로마 제국)[편집]

유럽에서는 고대 로마의 전성기, 팍스 로마나가 끝나고 세베루스 왕조군인 황제 시대의 혼란기로 '위기의 3세기'라고도 불린다.

로마의 3세기의 위기는 콤모두스 이후 잇따른 내전, 게르만족의 점진적인 로마 영내 유입, 신흥 강자인 사산 제국과의 갈등, 이러한 내외 전쟁으로 인한 토지 생산성의 약화와 무역 감소, 화폐 정책의 실패로 인한 화폐가치의 급락 등이 원인이 되었다.

3세기 후반에는 후한처럼 갈리아 제국, 원조 로마 제국, 팔미라 제국으로 분열되어 로마판 삼국지를 찍기도 했으나, 갈리아와 팔미라가 10년 만에 로마에 항복해버려서 중국과 달리 로마 삼국은 별 관심을 못 받고 묻혀버렸다.

모든 혼란을 제압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제국이 통치하기에 너무 거대하다고 판단, 서방과 동방, 정황제(AVGVSTVS)와 부황제(CAESAR)로 나누어 4분할 통치(TETRARCHIA)를 개시했다.
기존의 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고 사산 왕조가 급부상해 로마 제국과 양대 대제국을 이룬다. 로마가 3세기의 위기를 맞이하는 동안 사산 왕조는 맹렬하게 로마를 압박했다.

3. 주요 사건[편집]

4.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편집]

5. 연도 목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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