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구치 이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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樋口 一葉 | |
성명 | 히구치 이치요 |
출생 | |
사망 | |
국적 | |
직업 | 소설가 |
본명 | 히구치 나쓰코(樋口夏子) |
호적 등록명 | 히구치 나쓰(樋口奈津) |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 작가 중 첫 번째 여성 작가. 24년의 생애 중 숨을 거두기 전 1년 2개월 동안 일본의 근대 문학사에 남는 작품을 남겼다.
이치요는 필명이며 본명은 히구치 나쓰코(樋口夏子)이다. 호적상 이름은 히구치 나쓰(樋口奈津).
이치요는 필명이며 본명은 히구치 나쓰코(樋口夏子)이다. 호적상 이름은 히구치 나쓰(樋口奈津).
1872년 5월 2일에 현재의 도쿄도 치요다구[1] 우치사이와이정(内幸町)에서 태어났다. 사족(士族)[2]이었던 아버지 노리요시의 2남 3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1883년 세이카이 소학교 고등과 제4급[3]을 수석으로 졸업하는등 매우 영특한 아이였지만 여자에게 더 이상의 교육은 필요없다는 어머니의 반대로 더 이상 학업을 잇지는 못했다. 가난했던 집안에 10대 무렵부터 큰오빠와 아버지를 잃고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삯바느질과 세탁 등 허드렛일로 돈을 벌었고 19세 때 소설을 배우기 시작하여 등단했으나 가난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1896년 11월, 24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도쿄를 단 한번도 떠난 적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키재기’, ‘13야’ 등 14편의 주옥 같은 단편소설들을 남겼다.
1896년 11월, 24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도쿄를 단 한번도 떠난 적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키재기’, ‘13야’ 등 14편의 주옥 같은 단편소설들을 남겼다.
군의관 겸 소설가 모리 오가이가 "처녀가 가지기 어려운 경험과 관찰을 지녔다"고 극찬하였고, 자신이 몸담은 작가 모임에 이치요를 합류시키고 싶어하는 등 작가로서의 지속적인 교류를 나누기를 원하였다. 이치요가 병에 걸려 쓰러졌을 때에는 오가이가 의사를 보내 주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여성 작가의 활약이 드물었는데도 오가이는 이에 얽매이지 않았다.
후술한 대로 5000엔 지폐의 인물이 된후 그녀의 작품들이 재평가되기도 했다.
후술한 대로 5000엔 지폐의 인물이 된후 그녀의 작품들이 재평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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