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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고시 기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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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Fugakoshi gichin
출생
사망
국적
본명
후나고시 요시토시[1]
직업
무도가
무술 스타일
쇼레이류 공수도, 쇼린류 공수도, 송도관 공수도(창시)
스승
아사코 안코, 이토스 안코, 소콘 마츠무라, 세이쇼 아라카키
단수
5단, 10단(사후)
제자
후나고시 기고(아들)[2], 오오츠카 히로노리[3], 오바타 이사오, 나카야마 마사토시, 기마 마코토, 데가미 신게루, 오카노 토모사부로, 오카자키 텐루유키, 아사이 테츠히코, 코니시 야스히로, 니시야마 히데타카, 오시마 츠토무, 카세 타이지, 하라다 미츠스케, 카나자와 히로카즈, 이원국[태권도], 노병직[태권도], 에노에다 케이노스케

1. 개요

1. 개요[편집]

송도관 공수도의 창시자이다.

가라테의 중흥조인 이토스 안코[6]의 제자 중 한 명으로서, 이토스의 술기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만의 독특한 무술 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 탓에 사형인 토야마 간켄에게 동문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건 후나코시 기친 본인 실력이 떨어진 탓도 있으며 일본에서 가라테로 사업적으로 성공했다는 소문을 듣고 도장 깨기를 하러온 오키나와 왕족 출신 모토부 쵸키[7]한테도 여러 번 깨진적도 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이단아적인 일면이 오히려 가라테 입장에선 긍정적으로 작용했는데, 결과적으로 가라테 유파 중 가장 인지도가 큰 것이 쇼토칸인 것이 이를 보여 준다. 그가 아니었으면 공수도는 오늘날처럼 커다란 세를 형성하지 못하고 오키나와의 토착 무술로써 명맥만 이어가는 수준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승으로선 매우 훌륭한 인물이었다. 자신이 설립한 송도관 공수도는 물론 그곳에서 수련한 제자들이 창시한 무술인 태권도극진공수도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강한 무술로 성장했을 정도.
[1] 船越 義珍에서 義珍을 훈독하면 '요시토시(よしとし)'가 되고, 음독하면 '기친(ぎちん)'이 된다.[2] 일본식 이름은 후나코시 요시타카, 1945년 39세에 폐결핵으로 사망했으며 일본 입성 후 실질적으로 쇼토칸 스타일을 창시한 인물이다. 실력이 형편없었다는 아버지에 비해 센스가 뛰어났는지 가라테 천재라 불리기도 했다.[3] 화도류 창시자[태권도] 4.1 4.2 창시 원로 중 한 명이자 최홍희의 스승.[6] 택견으로 치면 송덕기 포지션이라 할 수 있는, 가히 당대 최후의 공수도인이었다.[7] 서양인 복서와의 대결에서도 승리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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