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라 조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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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역사는 러시아 제국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12년 표트르 1세가 설립한 것이 시초로, 러시아 제국군의 무기들을 제조했다. 1720년에는 22,000정의 경보병/용기병 소총 및 플린트락 권총을 제작했고, 1749년부터는 냉병기까지 제작하기 시작했다. 툴라 조병창은 러시아 무기 제작의 표준을 정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 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무기 공장이 되었다. 1870년에는 베르단 생산을 시작했고, 1891년에는 모신나강을 생산하기 시작한 최초의 공장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20세기 이후에는 맥심 기관총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구경의 사냥용 엽총들도 만들었다. 소련이 들어서고 SVT-40 등의 보병 무기를 생산하는 공장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기에는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일군이 툴라 코앞까지 진격해 왔기에 공장 인력들이 피신했으며, 때문에 이젭스크 조병창 등의 다른 무기 공장에 비해 생산량이 적었다. 2차 대전기 툴라 조병창제 무기들은 그 희소성 때문에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 전선이 어느 정도 소련에게 유리해진 1941년 이후로는 모신나강, SVT 외에도 ShVAK, 나강 M1895 등을 생산했다.
2차 대전 종전 후 냉전기에 다다르면서 툴라 조병창은 소련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해졌는데, 무기 생산에 필요한 광산이 지근거리에 있었고 철도 등의 운송 수단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툴라 조병창은 사냥용 소총, SKS, AK 소총뿐만 아니라 대전차미사일까지 생산했다.
20세기 이후에는 맥심 기관총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구경의 사냥용 엽총들도 만들었다. 소련이 들어서고 SVT-40 등의 보병 무기를 생산하는 공장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기에는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일군이 툴라 코앞까지 진격해 왔기에 공장 인력들이 피신했으며, 때문에 이젭스크 조병창 등의 다른 무기 공장에 비해 생산량이 적었다. 2차 대전기 툴라 조병창제 무기들은 그 희소성 때문에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 전선이 어느 정도 소련에게 유리해진 1941년 이후로는 모신나강, SVT 외에도 ShVAK, 나강 M1895 등을 생산했다.
2차 대전 종전 후 냉전기에 다다르면서 툴라 조병창은 소련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해졌는데, 무기 생산에 필요한 광산이 지근거리에 있었고 철도 등의 운송 수단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툴라 조병창은 사냥용 소총, SKS, AK 소총뿐만 아니라 대전차미사일까지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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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밀기계공학연구소와 협업하여 무기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1] 일명 나강 리볼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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