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테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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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3세의 동방 원정에 종군해 페제타이로이의 탁시아르코스[1]를 지내 파르메니온의 직속 부하로 마케도니아의 우익에서 부지휘관을 맡았으며, 헤파이스티온과 자주 다투었고 필로타스를 싫어했다. 기원전 334년의 그라니코스 전투, 기원전 333년의 이소스 전투, 기원전 331년의 가우가멜라 전투 등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아리오바르자네스가 이끄는 페르시아군과 싸울 때 알렉산드로스 3세가 병력을 둘로 나누어 배후의 산맥으로 이동할 때 남겨져 이동이 지연되는 것처럼 가장해 적의 주의를 끌었으며, 이로 인해 알렉산드로스 3세가 아리오바르자네스를 포위하는 것에 성공해 페르시아군을 격파했다. 뛰어난 전술적 능력과 병사들의 인기를 겸비해 보병대의 최선임 대대장으로서 중장보병을 지휘해 전설적인 전공을 세웠다.
인도 원정 때 헤파이스티온의 승진 문제로 헤파이스티온과 충돌해 서로 주먹을 날렸으며, 히다스페스 전투에서는 중장보병을 지휘했다. 볼란 협로를 지날 때 반란군을 체포해 압송했고 기원전 324년에 안티파트로스의 마케도니아 섭정 지위를 대체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알렉산드로스 3세가 사망해 효력을 잃었는데,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연합하여 헬레닉 동맹을 결성해 봉기하면서 라미아 전쟁이 일어나자 헬레닉 동맹들과 싸웠다.
대왕의 사후 안티파트로스와 함께 마케도니아 본토를 공동 통치한다.[2]
제1차 디아도코이 전쟁 때 헬레스폰토스에서 에우메네스와 전투를 치르다가 트라키아 기병의 창에 찔려 낙마했고, 그대로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사망했다.
마케도니아 내에서 인망이 가장 높은 장수였기에 에우메네스 측의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전향할 것을 기대했다.[3] 그러나 에우메네스는 휘하 마케도니아 병사들에게 적이 크라테로스라는 것을 숨기고, 배신자 네오프톨레모스와 피그레스라는 이름의 이방인 장군과 싸우러 간다면서 마케도니아 출신이 아닌 페르시아 출신 기병들을 동원하여 공격, 결국 그를 전사시켰다.
거물급 군부 인사로서 안티파트로스와 더불어 알렉산드로스 사후 정국을 장악할 수도 있었던 인물이었으나, 문관인 에우메네스의 기민한 공격에 허무하게 최후를 맞아버렸다. 그러나 고참급 군인을 패사시킨 에우메네스도 이로 인해 큰 정치적 고립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는 간접적으로 그의 입지의 축소와 최후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아리오바르자네스가 이끄는 페르시아군과 싸울 때 알렉산드로스 3세가 병력을 둘로 나누어 배후의 산맥으로 이동할 때 남겨져 이동이 지연되는 것처럼 가장해 적의 주의를 끌었으며, 이로 인해 알렉산드로스 3세가 아리오바르자네스를 포위하는 것에 성공해 페르시아군을 격파했다. 뛰어난 전술적 능력과 병사들의 인기를 겸비해 보병대의 최선임 대대장으로서 중장보병을 지휘해 전설적인 전공을 세웠다.
인도 원정 때 헤파이스티온의 승진 문제로 헤파이스티온과 충돌해 서로 주먹을 날렸으며, 히다스페스 전투에서는 중장보병을 지휘했다. 볼란 협로를 지날 때 반란군을 체포해 압송했고 기원전 324년에 안티파트로스의 마케도니아 섭정 지위를 대체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알렉산드로스 3세가 사망해 효력을 잃었는데,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연합하여 헬레닉 동맹을 결성해 봉기하면서 라미아 전쟁이 일어나자 헬레닉 동맹들과 싸웠다.
대왕의 사후 안티파트로스와 함께 마케도니아 본토를 공동 통치한다.[2]
제1차 디아도코이 전쟁 때 헬레스폰토스에서 에우메네스와 전투를 치르다가 트라키아 기병의 창에 찔려 낙마했고, 그대로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사망했다.
마케도니아 내에서 인망이 가장 높은 장수였기에 에우메네스 측의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전향할 것을 기대했다.[3] 그러나 에우메네스는 휘하 마케도니아 병사들에게 적이 크라테로스라는 것을 숨기고, 배신자 네오프톨레모스와 피그레스라는 이름의 이방인 장군과 싸우러 간다면서 마케도니아 출신이 아닌 페르시아 출신 기병들을 동원하여 공격, 결국 그를 전사시켰다.
거물급 군부 인사로서 안티파트로스와 더불어 알렉산드로스 사후 정국을 장악할 수도 있었던 인물이었으나, 문관인 에우메네스의 기민한 공격에 허무하게 최후를 맞아버렸다. 그러나 고참급 군인을 패사시킨 에우메네스도 이로 인해 큰 정치적 고립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는 간접적으로 그의 입지의 축소와 최후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 영화 알렉산더에서도 등장하며, 병사들에게 신망이 높은 군인으로서 알렉산드로스에게 인도 원정을 중지하고 돌아갈 것을 탄원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최후를 맞으며 횡설수설할 때 사람들이 "크라테로스에게 후임을 맡긴다"고 알아듣는 듯한 묘사가 있으며, 이는 알렉산드로스의 유언이라고 알려져 있는 "가장 강한 자에게"가 사실은 크라테로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역사적 시각이 반영된 부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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