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건친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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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건친박연합 | |
약칭 | 친박연합 |
창당일 | |
당명 변경 | |
해산일 | |
당 색 | 진청 (#13007D) |
해산 전 대표 | |
해산 전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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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미래를준비하는당 | 선진한국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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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연합 | 국가재건친박연합 |
이후 선진한국당으로 개명하였으나,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는 불참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처음 만들때 참여한 이용휘가 복당하고[1], 박정희의 조카이자 김종필의 처남인 박준홍(전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영입하여 친박연합으로 개칭하였다.
이름 덕분에 광역 정당비례를 통해 대구에서는 14.30%, 경북에서는 10.14%를 득표하며 각각 제2당/제3당으로 비례 당선자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2] (그 외 영주시 제2선거구에서도 당선, 기초의원 12명 당선-부산 2명/대구 5명/경북 5명). 같은 친박 "연합" 계열인 미래연합보다 성과가 좋았다. 그러나 선거 직후 이용휘가 경질되고[3], 박준홍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정라곤[4]이 대표가 되었다.
2012년에는 국가재건친박연합으로 개칭했는데, 약칭은 친박연합이고,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선거용지에는 친박연합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이미 새누리당이 박근혜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5]에서 굳이 박근혜, 박정희와 연관된 정당에 투표할 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당명 스틸 한나라당, 국민생각 등에도 미치지 못하고, 기대했던 구미시 갑의 김석호 후보도 18%에 불과하면서 등록이 말소됐다.[6] 김석호 후보는 정당 해산과 함께 다시 새누리당으로 복당했다.
다만 김석호 후보는 '여론조사'가 실시되어 후보자 토론회에 나갔더라면 좀 더 선전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특히나 지난 5회 지선에서 친박연합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출마했을 당시 적극적인 홍보로 33%의 득표율을 기록할 만큼 인지도를 높인 구미시 갑 김석호 후보의 18%를 비롯하여 국가재건친박연합이 상당한 득표를 거둔 지역이 많지만, 새누리당이 이기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한 군데도 여론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여론조사만 했더라면 후보자 토론회에 나갈 수 있었는데 당을 알릴 수 있던 기회를 잃었던 것이다.
이름 덕분에 광역 정당비례를 통해 대구에서는 14.30%, 경북에서는 10.14%를 득표하며 각각 제2당/제3당으로 비례 당선자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2] (그 외 영주시 제2선거구에서도 당선, 기초의원 12명 당선-부산 2명/대구 5명/경북 5명). 같은 친박 "연합" 계열인 미래연합보다 성과가 좋았다. 그러나 선거 직후 이용휘가 경질되고[3], 박준홍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정라곤[4]이 대표가 되었다.
2012년에는 국가재건친박연합으로 개칭했는데, 약칭은 친박연합이고,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선거용지에는 친박연합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이미 새누리당이 박근혜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5]에서 굳이 박근혜, 박정희와 연관된 정당에 투표할 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당명 스틸 한나라당, 국민생각 등에도 미치지 못하고, 기대했던 구미시 갑의 김석호 후보도 18%에 불과하면서 등록이 말소됐다.[6] 김석호 후보는 정당 해산과 함께 다시 새누리당으로 복당했다.
다만 김석호 후보는 '여론조사'가 실시되어 후보자 토론회에 나갔더라면 좀 더 선전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특히나 지난 5회 지선에서 친박연합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출마했을 당시 적극적인 홍보로 33%의 득표율을 기록할 만큼 인지도를 높인 구미시 갑 김석호 후보의 18%를 비롯하여 국가재건친박연합이 상당한 득표를 거둔 지역이 많지만, 새누리당이 이기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한 군데도 여론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여론조사만 했더라면 후보자 토론회에 나갈 수 있었는데 당을 알릴 수 있던 기회를 잃었던 것이다.
[1] 이후 사실상 이용휘의 사당이 되었다고 무방하다.[2] 참고로 이 선거에 미래희망연대(구 친박연대)는 불참하였다.[3] 이후 이태희와 함께 한나라당(2012년)을 창당했다가 당내 계파갈등으로 분산되었고, 이후 희망한나라당을 창당하였다. 한편 희망한나라당은 여러 번 당명을 변경하다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선거에 참여하지 않아 해산되었다.[4] 봉화군 부군수를 지냈으며, 2006년 4회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영덕군수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다.[5] 이 무렵에 미래희망연대가 새누리당으로 최종 흡수되었다.[6] 2014년 헌법재판소가 득표율 미만 정당 해산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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