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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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2월 5일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 관동리#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빈곤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서당에 다니다가 논산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했으며, 1927년 강경공립상업학교에 진학했으나 1931년 학비 조달이 어려워 중퇴했다.
1932년 극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지만 많은 습작으로 실력을 쌓아왔던터라 얼마 안가 중요 극작가로 올라서게 된다. 이듬해에 배우 문예봉과 결혼하였다.
1936년에 집필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크게 흥행하자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올라서게 된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아내 문예봉과 함께 연극분야에서 전쟁 수행에 협력하였으며, 이 시기의 내놓은 작품들이 일본 제국을 미화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1932년 극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지만 많은 습작으로 실력을 쌓아왔던터라 얼마 안가 중요 극작가로 올라서게 된다. 이듬해에 배우 문예봉과 결혼하였다.
1936년에 집필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크게 흥행하자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올라서게 된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아내 문예봉과 함께 연극분야에서 전쟁 수행에 협력하였으며, 이 시기의 내놓은 작품들이 일본 제국을 미화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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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에도 등장하였으나 단역보다도 비중이 떨어지는 보조출연자 수준이다. 담당 배우는 불명. 담당 배우부터가 불명이고, 심지어 같은 단역인 아내 문예봉, 동료 황철과 달리 대사가 전혀 없는 탓에 외부소스를 쓰는 것도 잘 되질 않다보니 야인시대/합성물에서도 지나가는 배경 단역으로 쓰는 정도로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의사양반 옆의 간호사와 동급이라 할 수 있다. 워낙 비중이 없는 탓이 아내인 무뇌봉이 심영이나 황철 애인으로 뺏기는 상황도 자주 나온다.
이후 심영물이 별의별 인물들이 굴려지는 와중에도 임선규는 대사가 없어 활용도가 한정되어 있다. 이 점이 오히려 특징이 되어 마피아로 몰려 사형되는 와중에도 말을 못해 그대로 퇴장한다든지, 표정으로 심영을 욕하는 정도. 대부분 눈으로 대답한다는 설정(...)으로 어떻게든 이어나간다. 그나마 다른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빼앗는 합성물도 나오긴 한다. 이 합성물 이후로 '노대사' 라는 별명이 있다.
원로 배우 고설봉의 예명을 직접 지어줬다고 한다.
[1] 일부에서는 1910년생 또는 1914년생을 주장하기도 하고 기록 자체도 얼마 없어서 정확한 생년이 아닐 수 있다.[2] 19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 주측 기록이 있다.[3] 이름만 바꾼 거지 성은 그대로 놔뒀다. 林씨는 일본에도 있어서 저 성을 가진 조선인들이 한자는 유지해도 읽는 법을 하야시로 바꾸면 넘어가줬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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