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

대한민국의 배우.

연극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해 영화, TV 단막극을 거쳐 2012년 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천재용 점장 역을 통해 유명세를 얻었다. 당시에 이미 데뷔 13년 차였지만 무명 시절이 길어 신인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배우들이 어린 시절부터 무대를 꿈꾸는 것과 달리, 이희준은 학창시절에는 연기에 전혀 뜻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3]가 "니 티코 탈래, 그랜저 탈래? 의대 가면 그랜저 탄다"고 말해 이과생이 되었고,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연기와는 연관없는 생활을 계속하게 되는데, 1년에 20명의 여인과 연애를 하는가 하면[4] 기타 동아리 회장을 맡아 학사경고를 받기도 하고 자유스런 대학생활을 만끽한다.

이랬던 이희준의 인생을 180도 바꿔 놓은 사건은 군입대를 2~3주 앞두고 일어났다. 환송회를 위해 선배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목이 꺾여 갑상선 한쪽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은 것이다. 이 일로 병역면제를 받은 이희준은 우연히 지역 아동극 극단의 단원 모집 공고를 발견, 복학하는 대신 오디션에 지원하게 된다. 동화 신데렐라의 왕자 역할 등을 맡으며 연기의 무한한 재미를 느낀 이희준은, 이때 본격적으로 전문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영남대학교를 중퇴한 이희준은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해 1년간 밀양 연극촌에서 생활하게 된다. 밀양연극제 2회 개막작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 왕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좀 더 체계적으로 연기 교습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지원하지만 떨어진다. 결국 재수를 거쳐서 24살(03학번)의 나이에 당당히 입학. 공대생 시절 이론 수업에 지쳐있던 그에게 실기 위주의 한예종 생활은 천국과 같았다. 본인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학교가 너무 좋았어요." 얼마나 좋았으면 8학기 내내 장학생으로 다녔고, 그 중 3학기는 전액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김성수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흔하지 않은 말투와 표정, 특이한 연기패턴이 인상적이어서 한예종 영화과 교수들 몇몇이 이희준을 상당히 좋게 봤다고. 또한 재학당시에는 진선규, 민준호와 함께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를 만들어 창작극을 올리기도 했다.

학교 졸업 이후에는 유오성, 송강호 등 걸출한 배우들을 배출한 극단 차이무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동시에 <화차>, <부당거래> 등 다양한 영화에도 씬스틸러로서 출연한다.[5]

한예종 당시 MBC 드라마 《케세라세라》에 형사 역할로 단역을 한 것 빼고는 TV 활동은 전무하다가, 극단 차이무의 연극 <B언소>를 보러 왔던 KBS 드라마스페셜의 책임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TV 출연의 발판을 만들게 된다. TV 단막극인 드라마스페셜 《텍사스 안타》, 《완벽한 스파이》, 《큐피드 팩토리》, 《동일범》에 4연타로 출연하면서 스태프들의 예쁨을 받음과 동시에 시청자들에게도 눈도장을 찍게 된다.

이러한 단막극의 인연은, 결국 이희준을 대중적인 배우로 끌어올리는 바탕이 된다. KBS2 《큐피드 팩토리》의 연출을 맡았던 김형석 PD가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만들면서 조윤희와 러브라인을 이루는 천재용 역에 이희준을 캐스팅한 것.[6] 이 캐스팅은 이희준 본인도 얼떨떨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고 한다. 경력과 이름에 비해 큰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내조의 여왕》 박지은 작가가 쓴 이 드라마는 결국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히트를 하게 되고, 동시에 이희준도 '천방커플[7]'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등 인기를 얻었다. 이를 방증하듯 조윤희와 커플 CF[8]를 따내기도 하였으며, 출연 분량을 늘려달라는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비중이 점점 높아져, 1주일에 1번 촬영하던 것이 막판에는 매일 촬영으로까지 늘어났다.

이후 KBS2 수목드라마 퓨전사극 《전우치》에서 악역으로 출연[9]했지만, 초반엔 어설픈 사극 억양으로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차츰 나아졌다. 종영 후 뮤지컬 《거울공주와 평강 이야기》를 3월에 공연했고, 이어서 KBS2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에 무정한 역으로 출연했다. 조연 중 하나였던 넝쿨째 굴러온 당신 때와는 달리, 이번엔 무려 '서브남주'이다. 실제로 있었으면 싶을 정도로 사람 좋고 착한 무 팀장 역을 잘 소화해내면서, '남자 주인공을 무정한으로 바꿔라!'는 시청자들의 성화가 일 정도.

이희준 본인은 스스로를 일컬어 '후천적 배우'라고 한다. 설명하기를, "나는 타고나지 못해서 노력과 연습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자연스런 그의 애드립을 보고 있자면 믿기지 않는 말이다. 아무튼 지독한 연습벌레인 것만은, 여러 인터뷰나 지인들의 증언으로 보자면 확실하다.

배우 손현주를 멘토로 두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손현주처럼 생활연기에 무척 뛰어나다. 진짜로 찾아보면 옆집에 저런 형이나 오빠가 있을 것 같은 손현주는 멘토답게 이희준에게 "초심 잃지 말고, 그리고 성형하지 마라"는 충고를 해줬다고 한다. 날카로운 인상과 건장한 체격 때문에 형사 역할을 유독 자주했다. 동시에 사이코패스 역할도 해본 건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TV로 오면서 멜로 연기에도 적합한 광역계 배우임을 몸소 입증하고 있으며 본인도 멜로에 맞는 연기자라고 생각한다.

한 때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영향으로 멜로 외 장르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고, 특히 전우치에서의 마강림 역이 혹평을 받으면서 사극이나 정극 연기에 취약하다는 평가도 존재했다.[10] 그러나 한국 현대사를 다룬 작품인 1987, 남산의 부장들에서 서로 정반대 포지션의 역할로 출연해 호연을 보여주면서 연기 스펙트럼에 대한 평가가 올랐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조윤희의 연기에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어린 시절부터 중견 연기자들에게 정통 드라마를 배운 조윤희가 대본에 쓰여있는 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대사를 치는 게 놀랍다는 것이다. 이희준은 비교적 자유로운 스타일로 연기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본인에 맞도록 대사를 조금씩 고쳐야 편하다고 하며 해당 씬의 상황 정도만 외워가기도 한단다. 반대로 조윤희는 또 인터뷰에서 "이희준의 애드립 때문에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이젠 익숙해져서, 오히려 연기가 늘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고 했다.

"앞으로 겉멋 들지 않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라고 한다. 겸양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듯한 뉘앙스가 여기저기서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