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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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돈 李永敦 | Lee Young-d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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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본관 | 단양 이씨 (丹陽 李氏) |
신체 | 171cm, 72kg |
가족 | 배우자 |
학력 | |
경력 |
대한민국의 前 방송인, PD 출신이자 더콘텐츠메이커 대표.
소비자 고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등 사회 고발 성격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자신의 이름을 직접 걸고 연출함으로써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히 얼굴과 이름을 알린 몇 안 되는 PD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고한 수많은 사람에게 크나큰 피해를 끼치는 등, 온갖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서 결국 크게 몰락한 데다 그 피해자 중에는 김영애도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김영애가 결국 암이 재발해 사망하여 논란이 커졌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부정과 자기도 피해자라는 식의 같잖지도 않은 동정 유발과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고 있어 아직까지도 비난을 받고 있지만 정신을 못 차리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 고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등 사회 고발 성격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자신의 이름을 직접 걸고 연출함으로써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히 얼굴과 이름을 알린 몇 안 되는 PD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고한 수많은 사람에게 크나큰 피해를 끼치는 등, 온갖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서 결국 크게 몰락한 데다 그 피해자 중에는 김영애도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김영애가 결국 암이 재발해 사망하여 논란이 커졌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부정과 자기도 피해자라는 식의 같잖지도 않은 동정 유발과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고 있어 아직까지도 비난을 받고 있지만 정신을 못 차리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KBS에 PD로 입사하면서 방송 제작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입사 10년 뒤, KBS를 나와 SBS에 입사하여 그것이 알고싶다, 주병진쇼 등을 연출하였고, 이후 KBS에 다시 입사하여 일요스페셜, 추적 60분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았고 추척 60분은 직접 진행까지 했다.
2007년에서 2010년까지 자신의 이름을 직접 내건 소비자 고발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유명세를 탔다. 이후 개편에서 하차했으나 다시 소비자 고발과 추적 60분의 시간대가 원상 복구되자 다시 돌아와서 진행을 맡았다. 그러다가 말하지 못할 사고를 치고 하차함과 동시에 국장 자리에서 경질되어 한직인 방송문화연구소로 이동했고 퇴사 때까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1년에는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개국을 준비하자 KBS를 퇴사하고 채널A로 들어가 제작본부장이 되었는데[4] , 지금 해결해 드립니다의 진행을 맡았고,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와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의 진행을 맡았다. 당시 채널A에서 어느 정도 시청률이 나와 주던(1~2%대 정도) 프로그램의 진행을 두 개나 맡은 셈이다.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는 2012년 11월 5일에 1기가 종영되고 2013년 5월부터 2기가 시작되었다. 이후 2014년 4월 30일 채널A에 사의를 표명하고 5월 30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먹거리 X파일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7월 31일에 사표를 제출하고 퇴사했다.
이후 기획 제작사 '이영돈 피디와 함께'를 만들었다. 그리고 1년간 JTBC에 프로그램을 독점 공급하기로 계약했었다. 첫 프로그램은 '에브리바디', 공동 MC로 참여했다. 최종 목표는 자기 프로그램으로 된 채널을 만드는 것이라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2015년 그릭 요거트 사건이 크게 터지게 되어 '이영돈 PD가 간다'를 비롯하여 JTBC에서 진행하던 모든 프로그램이 방영 중지가 되며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2016년 더콘텐츠메이커 제작사를 설립하여 이영돈TV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본인이 직접 취재하고 비정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다만 이영돈/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에 나온 이유 때문에 반응은 좋지 못하다.
TV조선에서 2017년 8월 30일부터 시작한 '탐사보도 세븐'의 책임 프로듀서에 이영돈이라는 이름이 올라가 있고, 8회 "서해순 고백하다!"편에서 본인이 직접 서해순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물러났다. 2019년 한겨레와 진행한 인터뷰에 의하면 더콘텐츠메이커라는 회사를 새로 세워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영돈 PD “고 김영애에 사과…나도 오래 괴로웠다(한겨레)
이후 방송에 나와 다시 인터뷰를 했는데, 이래저래 부정적인 반응이 크다.
2007년에서 2010년까지 자신의 이름을 직접 내건 소비자 고발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유명세를 탔다. 이후 개편에서 하차했으나 다시 소비자 고발과 추적 60분의 시간대가 원상 복구되자 다시 돌아와서 진행을 맡았다. 그러다가 말하지 못할 사고를 치고 하차함과 동시에 국장 자리에서 경질되어 한직인 방송문화연구소로 이동했고 퇴사 때까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1년에는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개국을 준비하자 KBS를 퇴사하고 채널A로 들어가 제작본부장이 되었는데[4] , 지금 해결해 드립니다의 진행을 맡았고,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와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의 진행을 맡았다. 당시 채널A에서 어느 정도 시청률이 나와 주던(1~2%대 정도) 프로그램의 진행을 두 개나 맡은 셈이다.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는 2012년 11월 5일에 1기가 종영되고 2013년 5월부터 2기가 시작되었다. 이후 2014년 4월 30일 채널A에 사의를 표명하고 5월 30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먹거리 X파일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7월 31일에 사표를 제출하고 퇴사했다.
이후 기획 제작사 '이영돈 피디와 함께'를 만들었다. 그리고 1년간 JTBC에 프로그램을 독점 공급하기로 계약했었다. 첫 프로그램은 '에브리바디', 공동 MC로 참여했다. 최종 목표는 자기 프로그램으로 된 채널을 만드는 것이라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2015년 그릭 요거트 사건이 크게 터지게 되어 '이영돈 PD가 간다'를 비롯하여 JTBC에서 진행하던 모든 프로그램이 방영 중지가 되며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2016년 더콘텐츠메이커 제작사를 설립하여 이영돈TV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본인이 직접 취재하고 비정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다만 이영돈/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에 나온 이유 때문에 반응은 좋지 못하다.
TV조선에서 2017년 8월 30일부터 시작한 '탐사보도 세븐'의 책임 프로듀서에 이영돈이라는 이름이 올라가 있고, 8회 "서해순 고백하다!"편에서 본인이 직접 서해순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물러났다. 2019년 한겨레와 진행한 인터뷰에 의하면 더콘텐츠메이커라는 회사를 새로 세워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영돈 PD “고 김영애에 사과…나도 오래 괴로웠다(한겨레)
이후 방송에 나와 다시 인터뷰를 했는데, 이래저래 부정적인 반응이 크다.
- 1992년 ~ 1994년 그것이 알고싶다 연출
- 1993년 주병진쇼 연출
- 1999년 KBS 일요스페셜 - 6부작 '술, 담배, 스트레스에 관한 첨단보고서' 취재, 연출
- 2002년 ~ 2005년 추적 60분 책임 프로듀서, MC
- 2007년 ~ 2008년 이영돈 PD의 소비자고발 책임 프로듀서, MC
- 2009년 ~ 2010년 소비자 고발 책임 프로듀서, MC
- 2012년 지금 해결해 드립니다
- 2012년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 2012년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
- 2013년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 2
- 2013년 채널A 이영돈·신동엽 젠틀맨
- 2014년 JTBC 에브리바디
- 2015년 JTBC 이영돈 PD가 간다
- 한국언론상
- 한국방송프로듀서상
- 백상예술대상
- 한국방송대상
- 삼성언론상
- 가톨릭 방송대상
- 방송위원회 대상
- 2010 장한 고대 언론인상
- 교양 PD로서는 드물게 프로그램의 전면에 많이 나선 PD이다.
- 귀신이나 영혼의 존재는 믿지만 귀신 들림이나 영매 같은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듯하다.#
-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히트시켰지만 박중훈쇼를 밀어붙여 말아먹은 사례가 있다.
-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캠프에 입성을 시도하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강경한 비판과 반발로 불발되었다.
[1] 포털 사이트 프로필에서는 부산광역시 출생으로 나온다. 아마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부산으로 이사를 간 듯하다.[2] 석사학위논문: 방송제작과정에서 이익집단의 개입이 프로그램 내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3] 박사학위논문: 미디어가 정책입안과정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관한 연구: 한국 탐사보도프로그램의 정책의제형성효과를 중심으로[4] 비록 이영돈이 사고를 치긴 했어도 이 당시만 해도 황색 언론인이 아닌 흥행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정의로운 시사 교양 PD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종편에서 이사(본부장급)으로 급을 높여서 영입한 것이다. 이영돈 입장에서는 이미 위에서 찍힌 이상 KBS에서 더 있어 봐야 갈 수 있는 자리도 더 이상 없는 데다가 더 좋은 대우로 모셔 주니 간 것이고 신생 채널인 채널A도 이영돈을 영입하면서 인지도가 상승하니 서로 윈윈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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