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군
최근 수정 시각:
대궁 제4대 궁주 | ||
조선 인조의 증손 의원군 | 義原君 | ||
의원군(義原君)[1] | ||
문정(文貞) | ||
혁(爀) | ||
매중(晦仲) | ||
근독당(謹獨堂) | ||
생부 | ||
생모 | 군부인 양천 허씨 (郡夫人 陽川 許氏) | |
부인 | 군부인 안동 권씨(郡夫人 安東 權氏) | |
자녀 | 3남 | |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 |
생몰 기간 | ||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문장에 매우 뛰어났고 예론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지만 천성이 탐욕스러워 강제로 백성의 재물을 빼앗은 죄로 대간의 청에 의하여 작위를 삭탈당하기도 하였다.
1680년 작은 아버지 복창군 이정(李楨)의 양자가 되었으나 나중에 부정부패와 탐욕으로 인하여 양자의 자격을 박탈하고 원래의 가문으로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이 해 경신환국이 일어나 이 사건과 깊게 관련있는 숙부들과 엮여 형 양원군 이환과 함께 유배갔다.
1688년 결성현감으로 재임 중 일때 정부의 보관용인 저치미[2]를 모두 가져다가 자신이 써버렸으므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결성현감의 작위를 삭탈당했으나 곧 다시 임명받았다. 1722년에는 남의 토지를 부정한 방법으로 빼앗았다가 탄핵을 받아 몰수당하고 다시 되돌려주었다. 인과응보였는지 말년에 몇 년 간 풍병으로 고생하다 사망했다. 사후 고종 때 가서 의정부영의정 김병학의 상소로 의정부영의정 판종정경에 특별 증직되었다.
조선 고종의 실제 혈통 상 직계 6대조로, 조선 말기의 왕실 혈통을 잇는 데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1680년 작은 아버지 복창군 이정(李楨)의 양자가 되었으나 나중에 부정부패와 탐욕으로 인하여 양자의 자격을 박탈하고 원래의 가문으로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이 해 경신환국이 일어나 이 사건과 깊게 관련있는 숙부들과 엮여 형 양원군 이환과 함께 유배갔다.
1688년 결성현감으로 재임 중 일때 정부의 보관용인 저치미[2]를 모두 가져다가 자신이 써버렸으므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결성현감의 작위를 삭탈당했으나 곧 다시 임명받았다. 1722년에는 남의 토지를 부정한 방법으로 빼앗았다가 탄핵을 받아 몰수당하고 다시 되돌려주었다. 인과응보였는지 말년에 몇 년 간 풍병으로 고생하다 사망했다. 사후 고종 때 가서 의정부영의정 김병학의 상소로 의정부영의정 판종정경에 특별 증직되었다.
조선 고종의 실제 혈통 상 직계 6대조로, 조선 말기의 왕실 혈통을 잇는 데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