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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마리 세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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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역사
에바 마리 세인트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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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logo
제26회
(1954년)
제27회
(1955년)
제28회
(1956년)
다너 리드
(지상에서 영원으로)
에바 마리 세인트
(워터프론트)
조 밴플리트
(에덴의 동쪽)

에바 마리 세인트
Eva Marie Saint
eva saint
출생
국적
신장
163cm
학력
직업
영화 데뷔
1955년, <워터프론트>
활동 기간
배우자
제프리 헤이든(1951년~2016년 사별)
자녀
아들 대럴 헤이든(1955년생)
딸 로렛 헤이든(1958년생)

1. 개요2. 생애
2.1. 사후
3. 주요 출연 작품4. 수상 내역5.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의 배우.

데뷔작 <워터프론트>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름의 실제 발음은 이버 머리 세인트이다.

출연작이 많지 않으나 복잡한 내면을 지닌 배역들을 인상적으로 연기해 활동량에 높은 대중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

2. 생애[편집]

세인트는 1924년 7월 4일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퀘이커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존 멜레 생(John Merle Saint)이고 어머니는 에바 마리(Eva Marie, 성 라이스) 생(Saint)이다.

그녀는 올버니 근처의 뉴욕 델마에 있는 베들레헴 센트럴 고등학교에 다녔고 1942년에 졸업했다.

그녀는 2006년에 고등학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그녀는 볼링 그린 주립 대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했고, 델타 감마 대학에 들어갔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개인적인 모습의 제작에서 주연을 맡았다.

볼링 그린의 캠퍼스에 있는 한 극장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녀는 연극 명예 친목회인 세타 알파 파이에서 활동했고 1944년 학생회의 기록 보관자로 일했다.

1940년대엔 라디오극과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53년으로, 그해 NBC에서 방영되기도 한 브로드웨이 연극 "The Trip to Bountiful"에서 대배우 릴리언 기쉬 상대로 나와 호평을 받으며 다수의 상에 후보로 올랐다. 1954년 NBC "Philco TV Playhouse"(1948-1955)의 "Middle of the Night"편으론 에미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TV계의 헬런 헤이즈"라는 칭송을 받으며 일리어 커잰의 영화 <워터프론트>(1954)에 출연하게 됐다. 이 첫 영화 데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일견 연약하고 차분해보이나 내면엔 열정이 고요히 들끓는 비슷한 역할들이 더 들어왔다. 1955년 NBC "Producers' Showcase"(1954-57)에선 폴 뉴먼, 프랭크 시나트러와 손튼 와일더 원작의 "우리 읍내(Our Town)"편에 나와 에멀리 웹(Emily Webb)을 연기했다. <빗물 가득>(1957)으로는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올랐고, 남북전쟁 배경의 <레인트리 카운티>(1957)에선 연인 역의 몽고메리 클리프트에게 실연 당한 여성을 설득력 있게 소화해내 찬사를 받았다. <빗물 가득>(1957)을 인상적으로 본 앨프리드 히치콕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에 발탁했다.

1960년부터는 가정생활에 집중하면서 TV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영화 쪽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어서 오토 프레밍어의 <영광의 탈출>(1960) 등에 출연하며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2009년 2월 23일 할리우드에 있는 코닥·시어터에서 개최된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조연상의 프리젠터로서 무대에 등장했다.

2014년 이후로는 배우로는 거의 은퇴했지만[1] 정정한 편인지 2021년에도 팟캐스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황금기[2]에 활동한 이제 몇 안되는 장수 배우 중 1명이다.

2024년 7월 4일, 100번째 생일을 맞게 되었다.
세인트는 1951년 10월 28일 프로듀서이자 감독인 제프리 헤이든과 결혼했는데 그들은 두 아이를 낳았다.

아들 대럴 헤이든과 딸 로렛 헤이든이고 그들의 첫 아이인 Darrell은 On the Waterfront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지 이틀 만에 태어났다.

그녀는 "내가 바로 여기에 아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로 수상 연설을 시작했다.

세인트와 헤이든은 또한 4명의 손자가 있고, 2016년 12월 24일 헤이든이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6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다.

3. 주요 출연 작품[편집]

  •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 1954
  • 레인트리 카운티(Raintree County), 1957
  • 빗물 가득(A Hatful of Rain)[3], 1957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4], 1959
  • 영광의 탈출(Exodus)[5], 1960
  • 36시간(36 Hours), 1964
  • Fatal Vision, 1984
  • 광고 대전략(Nothing in Common), 1986
  • 피플 라이크 어스(People Like Us), 1990
  • 아킬레호의 테러(Voyage Of Terror : The Achille Lauro Affair), 1990
  •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 2005
  • 슈퍼맨 리턴즈(Superman Returns), 2006

4. 수상 내역[편집]

  • 아카데미상
    • 수상 1955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 《워터프론트》
  • 영국 아카데미상
    • 노미네이트
      • 1955년 신인상 : 《워터프론트》
      • 1958년 최우수 외국 여배우상 : 〈빗물 가득〉
  • 골든 로브상
    • 노미네이트
      • 1958년 여우주연상 (드라마부문) : 〈빗물 가득〉

5. 여담[편집]

  • 모교에 이름을 딴 캠퍼스 극장이 생겼다.

[1] 코라의 전설카타라 성우 연기가 네임드 배역 연기로는 마지막이다.[2] Hollywood Golden age. 1920년대~50년대. 이후는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로 통한다. 에바 마리 세인트는 말런 브랜도처럼 비트 세대에 속하는 배우라, 황금기에서도 말기에 속한다.[3] 빗물 가득은 영화의 영미권으로 어 햇풀 오브 레인이라고 쓰인다.[4]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영화의 영미권으로 노스 바이 노스웨스트라고 쓰인다.[5] 영광의 탈출은 영화의 영미권으로 엑소더스라고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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