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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베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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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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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체코의 국영방송 체코 텔레비전 방송공사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위대한 체코인 100명을 선정했다.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6위
7위
8위
9위
10위
얀 베리흐
11위~10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카렐 고트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토마시 바타
오토 비흐테흘레
즈데네크 스베라크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카렐 크릴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블라스타 부리안
로만 셰브렐레
이반 흘린카
다니엘 란다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블라디미르 멘식
얀 에반겔리스타 푸르키녜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얀 얀스키
프란티셰크 크리지크
얀 젤레즈니
얀 팔라흐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베라 차슬라프스카
알로이스 이라세크
야로미르 노하비차
얀 마사리크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보후밀 흐라발
얀 네루다
요세프 융만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프란티셰크 토마셰크
스바티 보이테흐
요세프 카예탄 틸
루시에 빌라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카렐 히네크 마하
스바타 루드밀라
볼레슬라프 볼리프카
요세프 도브로프스키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요세프 라다
루돌프 흐루신스키
마들렌느 올브라이트
아네타 랑게로바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
스바타 즈디슬라바
야로슬라프 포글라르
라디슬라프 스몰랴크
올가 하브로바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헬레나 루치지코바
파벨 티그리드
엘리슈카 프르제미슬로브나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블라디미르 레메크
마그달레나 도브로밀라 레티고바
미콜라시 알레시
에밀 홀룹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프란티셰크 파이틀
클레멘트 고트발트
즈데넥 마테
조지 보스코벡
마르타 쿠비소바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이르지나 보흐달로바
밀로슬라프 지메크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제2대, 4대 대통령
에드바르트 베네시
Edvard Beneš
Edvard Beneš
출생
사망
1948년 9월 3일 (향년 64세)
서명
에드바르트 베네시 서명
정당
1. 개요

1. 개요[편집]

체코슬로바키아의 제2대, 4대 대통령. 1884년 5월 28일 체코(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헤미아 왕국 코즐라니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체코에서 오헝제국에 대항한 레지스탕스 조직인 '마피아(Maffia)'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1915년 파리에 망명해 있는 동안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인정받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후 파리 강화 회의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로 참석했으며, 생제르맹 조약으로 오헝 제국이 해체되고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해 체코슬로바키아가 세워진 후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가 평의회 비서와 외무장관을 맡았다. 베네시는 국제 연맹의 회원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1935년 12월 18일 체코슬로바키아의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민족자결주의를 구실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침공하자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의 중재로 뮌헨 협정이 열렸다. 베네시는 나치의 주데텐란트 합병을 반대했지만 그의 의사는 뮌헨 협정에 반영되지 못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평화를 대가로 나치 독일의 주데덴란트 합병을 묵인하기로 결정했다. 뮌헨 협정이 체결된 후 베네시는 대통령직을 사임하고[1] 런던으로 망명하였다. 1939년 체코가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이 되고 슬로바키아가 괴뢰국으로 전락한 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를 수립했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그는 점령지의 독일 장교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암살을 계획하는 등 독일에 저항하는 한편, 소련과 친선을 맺었다.[2]

1945년 봄에 귀국한 베네시는 제3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베네시 법령(대통령령에 의한 긴급명령의 포고)을 잇따라 포고해 체코슬로바키아 국내의 독일인들과 헝가리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한편으로[3] 공산주의자인 클레멘트 고트발트를 총리로 임명하여 연합정부인 국가전선을 수립했다.처음에는 그런대로 굴러가는듯했지만 1947년 체코슬로바키아가 미국마셜 플랜 지원을 받으려다 소련의 압박으로 거부하여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지지율이 하락일로를 다니자 마셜 플랜을 수락하려 한 베네시의 체코슬로바키아 독자화의 행보와 차기 총선에서 공산당이 패배할 것을 우려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소련의 사주를 받아 1948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 결국 많은 비공산주의 정치인들이 사임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인민민주주의 헌법에 바탕한 제4공화국을 수립했다. 인민민주주의 헌법의 비준을 거부한 베네시는 1948년 6월 27일에 공산당의 압력으로 사임했고, 고트발트가 차기 대통령이 되었다. 건강이 나빠진 그는 1948년 9월 3일에 자연사했다.

[1] 대통령직은 에밀 하하가 물려받았다.[2] 이해관계에 따라 맺은 것으로, 베네시가 공산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3] 이 포고령으로 인해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에 소유하고 있던 리히텐슈타인 본토의 10배가 넘는 1,600평방킬로의 영지가 몰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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