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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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년, 강도(江都)에서 우문화급이 정변을 일으켜 양제를 시해하고 이때 양간의 두 아들도 아버지와 함께 우문화급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당했다.
619년, 양정도는 조모인 양민황후와 함께 두건덕에게 달아났고 두건덕은 그를 운국공(鄖國公)으로 봉했다.
620년, 동돌궐의 처라가한이 사람을 보내 양민황후와 양정도를 영접했고 양정도를 수왕(隋王)으로 봉했다. 처라가한은 같은 해 병주(幷州)를 빼앗아 그곳에 양정도를 머물게 하려고 했으나 신하들의 반발을 받았다. 이때 처라가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619년, 양정도는 조모인 양민황후와 함께 두건덕에게 달아났고 두건덕은 그를 운국공(鄖國公)으로 봉했다.
620년, 동돌궐의 처라가한이 사람을 보내 양민황후와 양정도를 영접했고 양정도를 수왕(隋王)으로 봉했다. 처라가한은 같은 해 병주(幷州)를 빼앗아 그곳에 양정도를 머물게 하려고 했으나 신하들의 반발을 받았다. 이때 처라가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라를 잃었던 선친께서 수나라의 도움에 힘입어 가한으로 즉위하실 수 있었는데 이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我父失國 賴隋得立 此恩不可忘!)자치통감 권188 당기(唐紀) 4
양정도가 입조했던 630년, 태종이 소경에게 질문을 했다. 다음은 두 사람의 문답에 대한 내용이다.
태종: 그대(소경)는 수나라에 있을 때 황후를 몇 번이나 보았소?(卿在隋世數見皇后乎?)
소경: 그들 모녀 사이도 자주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누군데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彼兒女且不得見 臣何人 得見之?)자치통감 권193 당기(唐紀) 9
그러자 곁에 있던 위징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이 듣기로 양제는 제왕을 믿지 않아서 항상 중사(中使)를 보내 제왕의 동정을 살피게 했는데, 제왕이 연회를 베풀고 술을 마시고 있다고 보고하면 '그가 무슨 일을 해냈기에 기뻐하는가!'라고 말했고, 제왕이 근심하고 있다고 보고하면 '그가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자 사이도 오히려 이러한데 하물며 다른 사람도 그러겠습니까!
(臣聞煬帝不信齊王 恆有中使察之 聞其宴飮 則曰'彼營何事得遂而喜!' 聞其憂悴 則曰'彼有他念故爾.' 父子之間且猶如是 況他人乎!)자치통감 권193 당기(唐紀) 9
태종은 위징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이 지금 양정도를 대하는 것은 양제가 제왕을 대한 것보다 훨씬 낫다는 뜻이다.
(朕今視楊政道 勝煬帝之於齊王遠矣.)자치통감 권193 당기(唐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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