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율보속완
최근 수정 시각:
|
서요의 제2대 황제 야율이열이 일찍 사망하자, 그의 아들 야율직로고가 아직 어려서 고모인 야율보속완이 야율직로고를 대신하여 태후의 자리에 올라서 수렴청정을 하였다. 그러니까 기록이 남지 않아서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야율이열의 황후가 요절해서 야율보속완이 대신해서 태후로 추대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권신 소알리랄(蕭斡里剌)의 아들 소타로불(蕭朵魯不)과 혼인했으나, 그의 동생인 소박고지사리(蕭朴古只沙里)와 사통하고 남편을 살해했다. 이에 1177년, 아들의 죽음에 격분한 시아버지 소알리랄이 거병함으로써 소박고지사리와 함께 반란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시호는 승천태후이다.
한편 권신 소알리랄(蕭斡里剌)의 아들 소타로불(蕭朵魯不)과 혼인했으나, 그의 동생인 소박고지사리(蕭朴古只沙里)와 사통하고 남편을 살해했다. 이에 1177년, 아들의 죽음에 격분한 시아버지 소알리랄이 거병함으로써 소박고지사리와 함께 반란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시호는 승천태후이다.
아들이 어려서 임금의 유언으로써 누이동생 보속완이 나라를 권한했다. 칭제(稱制)하고 숭복으로 개원했으며 호는 승천태후이다. 태후는 부마 소타로불의 남동생 박고지사리와 함께 정을 통했고 부마를 내쫓아 동평왕으로 삼아서 없는 죄를 꾸며 만들어 그를 죽였다. 부마의 아버지 알리랄이 군사로 그 궁전을 둘러싸 보속완 및 박고지사리를 사살했다. 보속완은 14년동안 재위했다.
子幼,遺詔以妹普速完權國,稱制,改元崇福,號承天太后。後與駙馬蕭朵魯不弟朴古只沙里通,出駙馬為東平王,羅織殺之。駙馬父斡里剌以兵圍其宮,射殺普速完及朴古只沙里。普速完在位十四年。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