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도밍게스(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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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루이스 알폰소 도밍게스 기녜스 (Luis Alfonso Domínguez Guíñez)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
포지션 | 포워드 |
신체조건 | 177cm |
소속팀 | 탈카 나티오날 (1935-1936) 바드민톤 FC (1937) 우니온 에스파뇰라 (1937-1938) 콜로-콜로 (1939-1943)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943 / 임대) 콜로-콜로 (1944-1947)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949) |
국가대표 | 12경기 3골 (1939-1942) |
칠레의 전 축구 선수
도밍게스는 그의 형제 3명과 함께 고향팀 탈카 나티오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바드민톤 FC(Badminton FC)와 우니온 에스파뇰라(Unión Española)를 거쳐 1939년 콜로-콜로에 입단했다. 당시 도밍게스의 이적에 쓰인 2만 페소는 꽤 큰 돈이었다.
도밍게스는 콜로-콜로에서 활약하는 기간에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4차례 우승을 했고 2차례 득점왕에 올랐다.
1943년에 도밍게스는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 잠시 임대를 갔지만 득점을 올리지 못했고 1944년에 다시 콜로-콜로에 돌아왔다. 1947년에 도밍게스는 콜로-콜로를 떠났다가 1949년에 우니베르시다드에 잠시 복귀했지만 출전은 거의 없었다.
도밍게스는 콜로-콜로에서 활약하는 기간에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4차례 우승을 했고 2차례 득점왕에 올랐다.
1943년에 도밍게스는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 잠시 임대를 갔지만 득점을 올리지 못했고 1944년에 다시 콜로-콜로에 돌아왔다. 1947년에 도밍게스는 콜로-콜로를 떠났다가 1949년에 우니베르시다드에 잠시 복귀했지만 출전은 거의 없었다.
도밍게스는 193 년, 1941년, 1942년으로 세 번의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하지만 칠레 대표팀은 4위, 3위, 6위의 성적을 거뒀고 도밍게스는 12경기에 출전해서 3골을 넣었다.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4회: 1939, 1941, 1944, 1947(콜로-콜로)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2회: 1939, 1944(콜로-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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