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투스 마그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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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기간 | 제30대 레겐스부르크교구장 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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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1200년 경 독일 슈바벤의 라우잉엔에서 태어났다. 1223년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인문학과 학생으로 입학했다. 이후 독일로 돌아와서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했다. 1240년 초반에 유학을 목적으로 프랑스 파리에 파견되었고 이곳에서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접한다. 1245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도미니코회 외국인 수도자들을 위해 마련된 학과 수업을 3년간 맡아서 진행했다. 이 시기에 《명제집 주해》와 《창조물 대전》을 집필한다. 1248년에 쾰른으로 이주한 알베르투스는 이곳에 독일 최초의 고등 교육기관인 '일반학교(Studium Generale)'[3]을 설립했다. 이 당시 제자로 있었던 인물이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1250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스마스 윤리학』을 교재로 쾰른에서 강의를 시작했는데, 이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의상학』에 대한 주해를 집필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깊게 빠지게 된다.
알베르투스는 1254년부터 3년간 도미니코회 독일관구구장을 역임했고, 1260년에는 레겐스부르크의 주교에 임명되었다. 2년 후 주교직에서 물러나 독일의 지역사회를 여행하며 순회설교를 마친 뒤 1264년 뷔르츠부르크에 정착한다. 이맘쯤 그는 성서 주해서 대부분을 완성했다. 1269년에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서 『원인에 관한 책』에 대한 해설을 남겼고 1270년부터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쾰른에 머물면서 마지막 저서인 『하느님의 놀라운 지식에 관하여』 집필에 전념했다. 1278년 건강이 악화된 후 그는 1280년 11월 15일 독일 쾰른의 도미니코회 수녀원에서 사망했다.
알베르투스는 1254년부터 3년간 도미니코회 독일관구구장을 역임했고, 1260년에는 레겐스부르크의 주교에 임명되었다. 2년 후 주교직에서 물러나 독일의 지역사회를 여행하며 순회설교를 마친 뒤 1264년 뷔르츠부르크에 정착한다. 이맘쯤 그는 성서 주해서 대부분을 완성했다. 1269년에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서 『원인에 관한 책』에 대한 해설을 남겼고 1270년부터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쾰른에 머물면서 마지막 저서인 『하느님의 놀라운 지식에 관하여』 집필에 전념했다. 1278년 건강이 악화된 후 그는 1280년 11월 15일 독일 쾰른의 도미니코회 수녀원에서 사망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학문적인 탐구에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고 보았다. 과학적 추론을 근거로 하는 철학은 성경의 '계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신이 세상사에 자유롭게 개입하기 때문에 필연성에서 예외가 발생하고 이런 예외 상황이 곧 철학적 이성과 신학적 이성 간의 대립을 낳는다고 확신했다. 이는 신학의 계시를 진리의 마지막 단계로 인정하면서도 신학이 자부하는 철학적 기능은 사실상 인정하지 않은 셈이었고, 결국 세속 신학을 총체적으로 합리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알베르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 관심이 많아 이에 대한 연구도 깊게 파고들었다. 그에 따르면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별들의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자연의 법칙이었다. 이처럼 그의 사상을 뒷받침하는 것은 견고하고 체계화된 자연철학이었고, 이는 당시 인문학과 교수들의 전통적 상징주의 해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지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사상 일부는 토마스 아퀴나스로 이어진다.
그는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지성을 겸비한 것이며 인간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성을 활용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지성이 그 자체로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며,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란 다름 아닌 이러한 지성의 신성한 기원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또한 알베르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 관심이 많아 이에 대한 연구도 깊게 파고들었다. 그에 따르면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별들의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자연의 법칙이었다. 이처럼 그의 사상을 뒷받침하는 것은 견고하고 체계화된 자연철학이었고, 이는 당시 인문학과 교수들의 전통적 상징주의 해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지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사상 일부는 토마스 아퀴나스로 이어진다.
그는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지성을 겸비한 것이며 인간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성을 활용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지성이 그 자체로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며,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란 다름 아닌 이러한 지성의 신성한 기원을 발견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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