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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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대한민국의 농구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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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록 申提祿 | ||
출생 | ||
국적 | ||
신체 | ||
직업 | 농구선수(슈팅 가드 / 은퇴) | |
학력 | ||
프로 입단 | 2007년 드래프트 (2라운드 2순위, 서울 삼성) | |
병역 | ||
소속 | 선수 | |
가족 관계 |
초등학교 5학년 때 체육대회에서 100m 달리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1등을 거머쥔 후 농구를 시작했으며 휘문중학교를 거쳐 휘문고등학교로 진학해 에이스 역할을 똑똑히 해내며 제39회 춘계연맹전에서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맡으며 최우수선수상에 뽑혔고, 이를 계기로 제17회 아시아남자청소년농구선수권대회에도 발탁되었다.
이후 고려대학교로 진학해 주장도 맡았으며 졸업 후, 2007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되었다가 안양 KT&G 카이츠로 트레이드되었다.
이후 고려대학교로 진학해 주장도 맡았으며 졸업 후, 2007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되었다가 안양 KT&G 카이츠로 트레이드되었다.
데뷔 초부터 황진원과 은희석 등의 뒤를 받혀주는 식스맨으로 주로 경기에 나섰고 이후 2008-09 시즌 종료 후 양희종 등과 함께 상무에 합격해서 입대를 했지만, 훈련소에서 허리디스크가 발병하면서 상무에 입단하지 못하고 의병 제대를 했고 결국 그 여파로 5급이 나오면서 전시근로역에 편입했으며 KT&G에서는 더 이상 재기를 하지 못하면서 2011년에 웨이버가 되었다.
이후 김진 감독의 부름을 받고 드래프트 동기였던 김영환의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1년을 활약했으나, 끝내 허리디스크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를 하게 되었다. 하위 라운더였음에도 식스맨으로 그럭저럭 경쟁력을 보여줬음에도 허리디스크라는, 농구선수로는 커리어에 치명적인 부상이 발목을 잡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이후 김진 감독의 부름을 받고 드래프트 동기였던 김영환의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1년을 활약했으나, 끝내 허리디스크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를 하게 되었다. 하위 라운더였음에도 식스맨으로 그럭저럭 경쟁력을 보여줬음에도 허리디스크라는, 농구선수로는 커리어에 치명적인 부상이 발목을 잡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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