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 BACK << -|- >> HOME <<)

수도방위사령관

최근 수정 시각:
7
편집
현재 사용중인 아이피가 ACL그룹 IDC #12915에 있기 때문에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수방사령관에서 넘어옴
관련 문서 아이콘   관련 문서: 수도방위사령부
,
,
,
,
,
다른 뜻 아이콘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별명이 진해수도방위사령관인 야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진해수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육군 및 해병대 중장
초대
김진위
※ 초대~10대 : 수도경비사령관(소장) / 11대~현재 : 수도방위사령관(중장)
수도방위사령부 부대마크
수도방위사령관
首都防衛司令官
Commanding General Capital Defense Command
이진우 중장
현직
이진우 (제37대)
취임일
임관

1. 개요2. 권한과 역할3. 역대 수도방위사령관4. 관련문서

1. 개요[편집]

수도방위사령부령
제4조(사령관등의 임명)사령부사령관부사령관참모장을 둔다. ②사령관ㆍ부사령관 및 참모장은 육군의 장성급(將星級)장교로 보한다.
대한민국 육군의 수도방위사령관은 육군의 중장이 보임된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정권이 역쿠데타를 막기 위해 제30향토사단과 제33향토사단에서 1개 대대를 차출하여 제30경비단과 제33경비단을 창설한 것을 시초로, 이후 이 부대가 계속 확장되어 수도(서울)을 방위하는 사단급 기능사령부로 개편된 것이 수도경비사령부이다. 1984년 육군특수전사령부와 함께 군단급으로 증편되면서 중장 보직이 되었다.

2. 권한과 역할[편집]

대통령실(구.청와대)과 서울을 지킨다는 상징성 때문에 과거 수도경비사령관직은 하나같이 군에서 인정받은 사람이 차지한 직책이었다. 특히 하나회가 득세하던 군사정권 시절에는 하나회 출신만이 맡을 수 있던 자리였고, 정권의 친위대 역을 하며 각종 시위 진압에도 투입되던 수도권에 공수여단들을 둔 특전사령관과 더불어 군 최고의 요직으로 손꼽혔다. 실제로 예하에 다수의 전투부대를 거느린 제1야전군 및 제3야전군사령부 산하에 여러 부대가 있었지만, 특히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소속의 수도권 부대들은 충정부대라 불리며 정권의 수호자 역할을 맡아왔다. 당장 전두환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후 가장 먼저 수도경비사령관에 앉힌게 바로 핵심 측근 중의 측근이자 동지였던 노태우였다.

역사적으로 어떤 나라 어느 정권이건, 수도방위를 책임지는 부대는 당연히 있었고 이 부대들의 실질적인 창설목적은 대부분 쿠데타 대비였다. 즉, 이런 성격의 부대는 기본적으로 최고 권력자의 친위대 성격이 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고 하 별반 다르지 않아서, 수방사는 꽤 오랫동안 사실상 대통령 친위대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과거 수방사 사령관은 대통령이 가장 신임할 수 있는 육군 인사를 임명하고, 그래서 최고 요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점차 발전하여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극도로 낮은 현대엔 수방사 사령관이 과거와는 달리 최고 요직까진 아니게 됐다. 이는 다음 3문단에서 역대 수방사 사령관의 대장 진급률을 시대별로 비교해 보면 더욱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러나 예전같지 않다곤 해도, 수방사 사령관은 엄연히 군단장급 보직이다. 군단장급 보직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다만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따름일 뿐. 특히나 수도를 지킨다는 상징성은 당연히 변함없다. 7대 사령관인 장태완 소장을 제외하면 1961년 창설 이래로 전원 육군사관학교 출신들만 사령관에 임명된것만 봐도 여전히 수방사령관 자리는 요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3. 역대 수도방위사령관[편집]

무게감이 과거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그래도 중장 지휘관 직위인만큼 위상은 높은 편. 2000년대 이전까지는 본인 내지 부하가 사고를 쳤다든지(박남수 등), 관운이 없었거나(신원식), 인사적체 해소를 명목으로 전역당했거나 자력이 꼬인(김용현, 구홍모 등) 원래 전역하고 싶어했던(김선호) 케이스를 빼면 거의 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철책선으로부터의 거리가 중시되는 추세라 전통의 진급 보증수표 제1군단장과 제5군단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진급률이 낮고, 심지어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제3군단[1] 출신에도 밀리고 있다.

거의 10년 동안 대장 진급자가 나오지 않다가[2] 2020년 9월 인사에서 김정수(육사 42기) 장군이 진급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사령관들도 모두 대장 진급에 실패했다.
역대 수도방위사령관
대수
사진
이름
계급
임관
재임기간
비고
1
김진위
예) 소장
육사 3기
前 육군훈련소장
2
최우근 장군
예) 중장
육사 3기
3
윤필용
예) 소장
육사 8기
4
진종채 장군
예) 대장
육사 8기
5
2537654B53049042...
예) 대장
육사 8기
6
전성각
예) 중장
육사 8기
7
attachment/jtw11
예) 소장
육종 11기
8
attachment/ntw11
예) 대장
육사 11기
9
박세직
예)소장
육사 12기
10
최세창1
예) 대장
육사 13기
11
이종구 장군
예) 대장
육사 14기
12
attachment/국군기무사...
예) 대장
육사 15기
13
권병식1
예)중장
육사 15기
14
20130423023512 2
예) 대장
육사 17기
15
구창회
예)대장
육사 18기
16
김진선
예) 대장
육사 19기
17
안병호 장군
예)중장
육사 20기
18
doilkyu
예) 대장
육사 20기
19
한승의
예)중장
육사 22기
20
김인종1
예) 대장
육사 24기
21
남재준1
예) 대장
육사 25기
22
김창호1
예)중장
육사 26기
23
이상태
예)중장
육사 27기
24
김태영
예) 대장
육사 29기
25
이영계
예)중장
육사 30기
前 교육사령관
26
한민구
예) 대장
육사 31기
27
attachment/gener...
예) 대장
육사 32기
28
권혁순
예) 대장
육사 34기
29
박남수
예) 중장
육사 35기
30
신원식 군복
예) 중장
육사 37기
31
김용현장군
예) 중장
육사 38기
32
구홍모중장
예) 중장
육사 40기
33
김정수중장42기
예) 대장
육사 42기
34
차관김선호
예) 중장
육사 43기
現 국방부 차관
35
김도균 중장
예) 중장
육사 44기
36
김규하삼정검
육사 47기
36
이진우 중장
육사 48기

4. 관련문서[편집]

[1] 특히 2022년 윤석열 정부의 첫 대장인사에서 합참의장에 임명된 김승겸 대장에 이어, 제3군단장 출신이 2명이나 대장에 임명됨에 따라 중장보직의 새로운 요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2] 이때 대장 진급을 물먹은 사령관 4명(박남수, 신원식, 김용현, 구홍모) 전부 합참 작전라인의 초엘리트였는데, 사건사고에 휘말리거나 정권 교체 이후 밀려났다.[3] 1973년 윤필용 사건으로 강제예편 당하였다.[4] 준장 시절에는 이 부대의 참모장을 거쳤으며, 12.12 군사반란으로 인하여 강제예편 당하였다. 사령관에 부임한지 4주도 못되어 물러났다.[5] 전두환 前 대통령이 맡던 보안사령관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고 대장까지 진급했다.[6] 박희도, 박준병과 함께 '쓰리 박'으로 통하였다.[7] 이 때부터 부대 명칭이 수도방위사령부로 바뀌었다.[8] 12.12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상황실장으로 일하며 장태완 사령관 체포에 일조한 바 있다. 이런 행보로 인해 하나회 회원이라는 의혹이 있으나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9] 대장까지 진급하여 육군참모총장을 역임 중 그 유명한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제정하였다.[10] 대장까지 진급하여 1야전군사령관과 합동참모의장을 마치고 예편, 국방부장관까지 올랐다. 참고로 역대 수도방위사령관 중 그리 많지는 않은 서울 출신이다.[11] 대장까지 진급하여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참모의장을 거친 뒤에 군을 떠났다. 2014년 6월 1일자로 국방장관에 지명되었다.[12] 2008.04.03 ~ 2009.11.05[13] 합동참모본부 전력발전본부장(중장) 시절 천안함 피격 사건 민·군 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을 맡아 사건 규명 과정에서 북한의 어뢰 추진기를 수거한 공로 등이 인정되어 대장으로 진급했다. 前 제1야전군사령관(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의 '군번줄 발언'에서 군번줄이 있다고 손을 든 몇 안되는 장성으로도 유명)[14] 2009.11.05 ~ 2011.11.04[15] 이후 합동참모본부 군사지원본부장(舊 전력발전본부장)을 거쳐 2012년 10월 대장으로 진급, 제3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16] 2011.11.04 ~ 2012.11.06[17] 육군사관학교장 역임. 육군사관학교 성폭행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전역까지 했다.[18] 2012.11.06 ~ 2013.10.25[19] 다만 임기를 1년도 채우지 않고 합동참모본부로 자리를 옮겼다.[20] 2013.10.25~2015.10.27[21] 빠른 중장 진급과 일찍 이임한 신원식 전 사령관 덕에 2년 역임했다. 이임 이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으로 전역. 3기수 연속 대장 진급에 실패한 수방사령관.[22] 2015.10.27~2017.09.26[23] 2017.09.26~2019.05.07[24] 육군특수전사령관 김정수[25]와는 동명이인[25] 육사 43기, 경상북도 영주 출신.[26] 2019.05.07~2020.05.08[27] 2020.05.08~2022.06.08[28] 사단장 경력 없음.[29] 2022.06.09~2023.11.06[30] 2023.11.06~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  
  •  
  •  
  •  
  •  
  •  
  •  
  •  
  •  
  •  
  •  
  •  
  •  
  •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