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
최근 수정 시각:
선조소경대왕수정실록 | |
분량 | 42권 8책 |
조선의 제 14대 왕 선조의 재위 기간 역사를 기록한 『선조실록』을 수정한 인쇄본 책이다. 다른 왕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국가기록원에 소속된 역사기록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국가기록원에 소속된 역사기록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총 42권 8책으로 이루어졌다.
이수광(李睟光)이 아뢰기를, "선조조(宣祖朝)의 실록(實錄)은 적신의 괴수에 의하여 편찬되어 부끄럽고 욕됨이 심하니 당연히 고쳐 찬술하도록 해야 합니다. 폐조의 《일기(日記)》도 속히 편찬해야 합니다."
하고, 정구가 아뢰기를, "《선조실록》은 이항복(李恒福)이 총재(摠裁)가 되고 신이 문형(文衡)으로서 제학 신흠(申欽)과 함께 찬수하다가 계축년 옥사로 죄를 입어 쫓겨났습니다. 그러다가 이이첨(李爾瞻)이 정권을 잡게 되자 그 초고를 모두 깎아 없애 볼 수 없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싫어하는 말을 제거한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은 선조(先祖) 때의 일이라서 가볍게 의논할 수 없으니, 대신에게 의논하여 처치하라."
ㅡ《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1년 8월 18일(병자) 2번째 기사. 기사
인조반정 이후 정권 주도 세력이 변한 것이 결정적 계기이다. 북인, 정확하게는 이이첨을 비롯한 대북의 시각으로 쓰여진 『선조실록』을 서인과 남인의 시각으로 수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주요 수정 내용은 사관의 생각을 적은 사론, 그리고 인물평이다.
다만 선조수정실록을 처음 주관한 인물은 이식인데 이 인물은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상 무당파적 인물이다. 1623년 인조반정 당시 이수광이 선조실록의 수정을 청했지만 계속 미뤄지다가 1641년 대제학이 된 이식이 선조수정실록의 수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식이 죽으면서 선조수정실록 작업이 중단되었다. 이후 효종 시기 김육이 주관해서 수정실록을 완성했다.# 선조수정실록은 서인과 남인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는데, 이식의 시각보다는 이식이 같이 일하고 있는 인물들인 서인과 남인의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선조수정실록을 처음 주관한 인물은 이식인데 이 인물은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상 무당파적 인물이다. 1623년 인조반정 당시 이수광이 선조실록의 수정을 청했지만 계속 미뤄지다가 1641년 대제학이 된 이식이 선조수정실록의 수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식이 죽으면서 선조수정실록 작업이 중단되었다. 이후 효종 시기 김육이 주관해서 수정실록을 완성했다.# 선조수정실록은 서인과 남인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는데, 이식의 시각보다는 이식이 같이 일하고 있는 인물들인 서인과 남인의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 기존 실록을 없애지 않고, 수정본을 별도로 제작해서 공존시킨다는 형태가 최초로 적용되었다.
-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선조실록에는 없고, 선조수정실록에만 등장한다.
- 선조수정실록은 대부분의 기사를 날짜별이 아닌 월별로만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선조수정실록의 월별 기사는 대부분 하루(보통 1일)에 몰아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단순히 그 달에 일어났다는 뜻이다. 게다가 정확히 그 달에 일어난 일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달이 되기 전 3~5일 정도의 애매한 범위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선조실록에 없지만 선조수정실록에만 있는 기록만 가지고는 사건의 정확한 날짜를 파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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