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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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의 아들 문사(文思)가 왕의 아들 융(隆)에게 이르기를
“왕께서는 태자와 함께 나가버렸고, 숙부는 자기 마음대로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만일 당나라 군사가 포위를 풀고 가버리면 우리들이 어떻게 안전할 수 있겠는가?”라 하고,
마침내 측근들을 데리고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 나가고 백성들도 모두 그를 뒤따르니, 태(泰)가 이를 만류하지 못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백제의 왕족. 의자왕의 손자로 부여융 또는 부여효의 아들이다.
여기서 부여효를 태자, 부여융은 왕자로 기록했고 문사는 '태자의 아들'이므로 효의 아들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효를 따라 웅진성으로 떠나지 않고 사비성에 잠시 남았다가 부여융과 상의하고 함께 뒤늦게 밧줄을 타고 탈출한다는 것이다. 원래 융이 백제 태자였다가 효가 태자 자리를 빼앗았다는 점에서 융과 효의 사이가 좋았을 이유가 없으므로 의아한 대목인데 이 때문에 몇몇 학자들은 부여문사가 부여융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만약 부여효의 아들이라고 보면 그만큼 백제멸망전 당시 상황이 예전의 악연 같은 건 신경쓰기 힘들 정도로 긴박했다는 것일 수도 있다.
[1] 《구당서》 <소정방전>에는 '적손문사(嫡孫文思)', 《신당서》 <소정방전>에는 의자왕의 손자(義慈孫), 《자치통감》에서는 (부여)융의 아들 문사(隆子文思)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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