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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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Life Is Here (인생은 이곳에 있다) | |||
시청 소재지 | 포블라시온 (City Hall Dr, Poblacion District, Davao City) | ||
하위 행정구역 | 182바랑가이 | ||
주 | |||
지방 | |||
섬 | |||
면적 | 293.78㎢ | ||
인구 | 1,776,949명 | ||
인구밀도 | 730명/㎢ | ||
시장 | HNP | 세바스찬 두테르테 (초선) | |
시의회 (24석) | HNP | 13석 | |
HTL | 10석 | ||
1석 | |||
파올로 두테르테 (다바오시 1구/ 재선) | |||
빈센트 가르시아 (다바오시 2구/ 재선) | |||
이시드로 웅갑 (다바오시 3구/ 재선) | |||
PSGC 코드 | 112402000 | ||
원래 다바오 지역은 여러 부족이 거주하던 울창한 숲이었다. 1543년, 루이 로페즈 데 빌라로보스가 이끄는 스페인 탐험대가 식민지 설립을 위해 민다나오섬의 남동부 해안을 조사하였으나 부족들의 거센 저항으로 인해 이 지역에 대한 조사를 중단했고 그 결과 다바오 지역은 이후 3세기 동안 유럽인들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전후 다바오는 민다나오섬의 농업 및 경제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되찾았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다바오는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3]
1972년 당시 필리핀 대통령이었던 마르코스가 계엄을 선포하고 민다나오의 무슬림들을 탄압하면서 민다나오 섬의 많은 사람들이 필리핀 공산당이 조직한 신인민군(NPA)에 가담하였으나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가 암살당하기 전까지 다바오는 예외적으로 시민들이 직접적인 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1986년 마르코스 정권이 붕괴한 뒤 1988년부터 2010년까지 22년간 다바오 시장으로 재임한 두테르테가 다바오 척살대(Davao Death Squads)를 동원해 무법 천지이던 다바오를 범죄 청정 도시로 만들었고 부정부패를 뿌리 뽑았다.
1972년 당시 필리핀 대통령이었던 마르코스가 계엄을 선포하고 민다나오의 무슬림들을 탄압하면서 민다나오 섬의 많은 사람들이 필리핀 공산당이 조직한 신인민군(NPA)에 가담하였으나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가 암살당하기 전까지 다바오는 예외적으로 시민들이 직접적인 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1986년 마르코스 정권이 붕괴한 뒤 1988년부터 2010년까지 22년간 다바오 시장으로 재임한 두테르테가 다바오 척살대(Davao Death Squads)를 동원해 무법 천지이던 다바오를 범죄 청정 도시로 만들었고 부정부패를 뿌리 뽑았다.
열대 우림 기후(Af)에 속하는 지역이며 평균기온은 28°C 정도이다. 특이한 사실 중 하나는 이 지역이 사이클론에서도, 태풍에서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민다나오 섬에도 태풍이 가끔 불어닥쳐 큰 피해를 내곤 하는데, 다바오는 '태풍이 오지 않는 마을'로 유명하다.
인구의 약 98%정도가 기독교 신자이며 나머지 2%는 주로 무슬림이다.
이 지역에 여행경보[5]가 걸려 있는 이유는 눈먼 총알에 맞아 죽을 가능성(...)때문이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그전까지 다바오에서만 3번의 시장직과 1번의 부시장직을 연임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때문인데, 그의 재임시기 약 1천여 명 내외의 범죄자들이 다바오에서 정체불명의 무장단체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두테르테는 본인이 지시한 일이 아니라며 부정했지만 그의 성향을 잘 아는 다바오 현지인이나 외국인들 대부분은 그가 직접 지시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당시 두테르테 시장이 안정되고 깨끗한 이미지를 위해 범죄 저지를 만한 놈들을 강압적으로 기어다니게 만드는 도시 조성을 위해 금연 정책을 위시로 단돈 1페소조차 떼어먹을 생각도 못하도록 하는 등 현대 어느 도시에도 보기 힘든 수준의 강한 공권력을 투사했기 때문이다.
덤으로 다바오섬 여행경보는 황당하게도 두테르테가 시장연임 시기가 아닌 대통령 당선이 되면서 벌어진 일인데, 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마약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인데다가 IS에 충성을 맹세한 반군이 나오면서 그들과 겨루는 사이에 피해가 이래저래 불가피해지고 2015년 말에 네덜란드인 2명 필리핀인 1명이 근처의 사말 섬으로 납치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여행 특별경보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
물가는 세부보다 싸나, 바콜로드나 일로일로보다는 비싸다. 열대과일은 타 지역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싼데 다바오 시가 있는 민다나오섬이 필리핀의 열대과일의 원산지라 할 정도로 필리핀 열대과일 태반이 생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민다나오 섬의 영향은 저 도시 하나에 한정되는게 아니고 원산지가 필리핀이라 적힌 수입 열대과일은 수출되는 지역을 막론하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이 세운 미승인국인 방사모로가 주장했던 수도다. 2013년 9월에 방사모로가 망한 이후 MILF와 정부군은 협정을 통해 민다나오를 자치구로 만들고 자원 이익 분배와 인프라 설립에 합의하였다.
필리핀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이다. 필리핀 최초로 금연도시[6]이자 대부분의 현지인들이 가고싶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금연정책을 제외하면 르완다의 키갈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덤으로 다바오섬 여행경보는 황당하게도 두테르테가 시장연임 시기가 아닌 대통령 당선이 되면서 벌어진 일인데, 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마약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인데다가 IS에 충성을 맹세한 반군이 나오면서 그들과 겨루는 사이에 피해가 이래저래 불가피해지고 2015년 말에 네덜란드인 2명 필리핀인 1명이 근처의 사말 섬으로 납치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여행 특별경보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
물가는 세부보다 싸나, 바콜로드나 일로일로보다는 비싸다. 열대과일은 타 지역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싼데 다바오 시가 있는 민다나오섬이 필리핀의 열대과일의 원산지라 할 정도로 필리핀 열대과일 태반이 생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민다나오 섬의 영향은 저 도시 하나에 한정되는게 아니고 원산지가 필리핀이라 적힌 수입 열대과일은 수출되는 지역을 막론하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이 세운 미승인국인 방사모로가 주장했던 수도다. 2013년 9월에 방사모로가 망한 이후 MILF와 정부군은 협정을 통해 민다나오를 자치구로 만들고 자원 이익 분배와 인프라 설립에 합의하였다.
필리핀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이다. 필리핀 최초로 금연도시[6]이자 대부분의 현지인들이 가고싶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금연정책을 제외하면 르완다의 키갈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1] 당시 스페인은 1820년대부터 1830년대까지 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민지를 상실하면서 더 이상 왕실이 식민지 정부에 이전과 같은 재정적지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필리핀 도독령 정부는 재정확보를 위해 당시 해상 무역이 발달해 있던 다바오 만 지역을 비롯한 민다나오 섬을 식민지화하기로 결심했다.[2] 특히 일본 사업가들이 많이 정착하였고 이들은 다바오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3] 당시에는 분리주의 운동이 거의 없었다.[4] 해발고도 2,954m로 백두산보다도 높고 필리핀에서도 최고봉에 속하는 고산이다. 여담으로 과거 1970년대 당시에는 반군과 협력 하에 북한 김일성이 외화벌이 하던 마약 농장들이 있었다(...)[5] 2022년 8월 기준 다바오시 전 지역에 여행유의(청색경보)가 걸려 있다.[6] 건물 내 전면 금연. 길거리에서도 금연. 적발되면 한화로 1회 25만원 정도의 벌금이, 2회부터는 가중처벌로 흡연은 특정구역에 한정해서만 가능하다. 이는 외국인이든 뭐든 얄짤없이 죄다 포함되므로 주의. 현재는 일로일로도 따라가는듯한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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