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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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55년 김춘추가 왕위에 오른 다음 해, 형들과 나란히 관등을 제수받았다. 이는 무열왕이 정권 초기에 친위세력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당나라 황제가 칙명으로 지경과 개원을 장군으로 삼아 요동의 전장에 가도록 하였다. 임금이 곧장 지경을 파진찬으로 삼고, 개원을 대아찬으로 삼았다.《삼국사기》
이후 서기 667년, 문무왕 7년에 당고종의 칙명으로 대아찬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앞선 기록에선 이찬에 임명됐다고 나오는데 여기서는 대아찬이라 해서 아마 앞의 기록이 아찬을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듬해인 668년 6월에는 김인문, 흠순, 천존, 진복, 지경, 흠돌 등과 함께 대당총관에 임명되었고 고구려 정복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683년에는 조카인 신문왕이 김흠운의 딸을 맞아 부인을 삼으려 하자, 이찬 김문영과 함께 김흠운의 집에 가서 그의 딸을 부인으로 책봉하기도 했다. 그리고 695년, 효소왕 4년에 마침내 상대등에 임명됐다. 이렇게 보면 자신이 주관했던 혼례로 태어난 효소왕이 자신을 상대등으로 임명한 셈.[2]
이듬해인 668년 6월에는 김인문, 흠순, 천존, 진복, 지경, 흠돌 등과 함께 대당총관에 임명되었고 고구려 정복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683년에는 조카인 신문왕이 김흠운의 딸을 맞아 부인을 삼으려 하자, 이찬 김문영과 함께 김흠운의 집에 가서 그의 딸을 부인으로 책봉하기도 했다. 그리고 695년, 효소왕 4년에 마침내 상대등에 임명됐다. 이렇게 보면 자신이 주관했던 혼례로 태어난 효소왕이 자신을 상대등으로 임명한 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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