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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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 | 권헌봉(權憲鳳) |
자 | 순오(順五) |
본관 | |
출생 | |
사망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1034호 |
상훈 | 대통령표창 |
1890년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임서면 오대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아버지 권문현(權文顯, 1846 ~ 1901)과 어머니 고성 이씨[4]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1일 경상북도 안동군 길안면 천지리 천지(泉旨)장터에서 장날을 이용해 손영학(孫永學)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이어 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을 습격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40년 12월 24일 별세했다.
199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당초 고향인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 안장되었다가, 2002년 11월 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되었다.
그는 1919년 3월 21일 경상북도 안동군 길안면 천지리 천지(泉旨)장터에서 장날을 이용해 손영학(孫永學)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이어 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을 습격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40년 12월 24일 별세했다.
199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당초 고향인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 안장되었다가, 2002년 11월 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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