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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遼東征伐
한반도에 있던 정치세력이 요동을 정벌하려 했던 군사적 행동을 뜻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수식어 없이 요동정벌이라고 하면 대체로 여말선초 시기에 있었던 3차례 시도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고구려의 경우 태조대왕 시절부터 광개토대왕 시기까지 요동의 패권을 두고 쉴새없이 전쟁을 벌였다. 요동 일부를 점령했다가 축출당하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요동에 대한 정벌 시도 역시 셀 수 없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는 광개토대왕이 요동성을 함락시키며 요하 너머 중원의 거점을 완전히 축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후에도 설오유와 고연무가 이끄는 고구려 부흥세력 및 신라 연합군이 670년 3월에 압록강을 건너 당나라를 선제 공격하고 몇 달간 요동 남부를 점거한 사례가 있지만 이 사건은 요동 정벌만이 목표가 아닌 나당전쟁의 일부로 본다. 전쟁의 목적이 기록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학계에서는 기선제압, 혹은 남쪽 웅진도독부 정벌을 위한 양동작전 등의 설이 나오고 있다.
이후 발해 시기에도 요동에 대한 군사작전은 계속되었으며, 발해의 요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이어졌다.
한반도에 있던 정치세력이 요동을 정벌하려 했던 군사적 행동을 뜻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수식어 없이 요동정벌이라고 하면 대체로 여말선초 시기에 있었던 3차례 시도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고구려의 경우 태조대왕 시절부터 광개토대왕 시기까지 요동의 패권을 두고 쉴새없이 전쟁을 벌였다. 요동 일부를 점령했다가 축출당하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요동에 대한 정벌 시도 역시 셀 수 없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는 광개토대왕이 요동성을 함락시키며 요하 너머 중원의 거점을 완전히 축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후에도 설오유와 고연무가 이끄는 고구려 부흥세력 및 신라 연합군이 670년 3월에 압록강을 건너 당나라를 선제 공격하고 몇 달간 요동 남부를 점거한 사례가 있지만 이 사건은 요동 정벌만이 목표가 아닌 나당전쟁의 일부로 본다. 전쟁의 목적이 기록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학계에서는 기선제압, 혹은 남쪽 웅진도독부 정벌을 위한 양동작전 등의 설이 나오고 있다.
이후 발해 시기에도 요동에 대한 군사작전은 계속되었으며, 발해의 요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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