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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아우구스트(브라운슈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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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Ernst August, Herzog von Braunschweig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
이름
독일어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크리스티안 게오르크
(Ernst August Christian Georg)
영어
어니스트 어거스터스 크리스티안 조지
(Ernest Augustus Christian George)
출생
사망
1953년 1월 30일 (향년 65세)
서독 니더작센 하노버 마리엔부르크 성
배우자
자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데리케, 크리스티안 오스카, 벨프 하인리히
아버지
어머니
형제
마리 루이제, 게오르크 빌헬름, 알렉산드라, 올가, 크리스티안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4. 자녀

1. 개요[편집]

하노버 왕조의 왕손이자 마지막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공작. 빌헬름 2세의 고명딸인 빅토리아 루이제와 결혼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그리스의 왕비 프레데리키의 아버지이며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콘스탄티노스 2세, 스페인의 소피아 왕태후의 할아버지다.

영국 국왕 조지 5세, 노르웨이의 왕비 모드[1],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2]와는 이종사촌이며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3], 그리스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4]와는 외사촌이다.

빌헬름 황태자, 아이텔 프리드리히, 아달베르트, 아우구스트 빌헬름, 오스카, 요아힘의 매제이다.[5] 또한 막시밀리안 폰 바덴의 처남[6]이다.

2. 생애[편집]

1887년 하노버의 마지막 왕세자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덴마크의 티라 공주의 3남 3녀 중 막내이자 삼남으로 태어났다.

삼남인만큼 원래는 후계와 거리가 멀었으나 두 형이 모두 자녀 없이 요절해서 하노버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다.

1912년 큰 형 게오르크 빌헬름이 프레데리크 8세의 장례식에 가던 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빌헬름 2세가 애도를 표했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아버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는 베를린 성으로 아들을 보내 감사 인사를 하게 했다. 그곳에서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빌헬름 2세의 고명딸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1913년 2월 11일 카를스루에서 약혼하고 1913년 5월 24일 결혼하였다. 참고로 두 사람의 결혼식은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열린 왕족 결혼식으로 사실상 유럽 왕족들이 대규모로 모인 마지막 자리가 되었다.

당시 하노버 왕조는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편을 들다가 왕국이 멸망당해 추방되었기 때문에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가문과는 원수지간이었지만, 상술한 빌헬름 2세가 게오르크 빌헬름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사이가 좋아졌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빅토리아 루이제의 결혼으로 완전히 화해하게 되었다. 이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는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위를 본인이 유지하고, 아들에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를 양보했고, 1913년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공작이 된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1917년 제정된 영국의 작위박탈법으로 아버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는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위는 폐지되었고, 이듬해 독일의 제정이 폐지되면서 본인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에서 폐위되었다.

나치 독일 당시에는 처남들처럼 직접적으로 나치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후원금을 보냈으며, 나치 독일의 지도자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아들들은 나치 독일의 군사조직에 가담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영국으로 도피했다.

1943년에는 장남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가 처조카인 후베르투스 폰 프로이센 왕자의 아내인 마리아 안나 폰 훔볼트 다흐로덴(1916년 ~ 2003년) 여남작과 바람이 나서 사생아를 낳는 대형 사고를 쳤다.(...) 여기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마리아랑 결혼하려고 하자 마리아와 결혼하면 귀천상혼으로 여겨 계승권을 박탈시키겠다고 반대해서 결혼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1953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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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녀[편집]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브라운슈바이크의 공세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Ernest Augustus, Hereditary Prince of Brunswick)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오르트루트 공녀
슬하 3남 3녀[7]
모니카 추 졸름스라우바흐 여백작
2남
게오르크 빌헬름 공자
(Prince George William)
1녀
그리스의 왕비 프리데리키
(Frederica, Queen of the Hellenes)
파블로스
슬하 1남 2녀[8]
3남
크리스티안 오스카 공자
(Prince Christian Oscar)
미릴 듀트리
슬하 2녀
4남
벨프 하인리히 공자
(Prince Welf Heinrich)
이젠부르크와 뷔딩겐의 알렉산드라 공녀
이 중 차남 게오르크 빌헬름의 가계가 사실상 단절되면서[9] 하노버 가문은 장남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의 자손으로만 이어지게 된다.

[1] 조지 5세와 모드 왕비 모두 첫째 이모 영국의 왕비 알렉산드라의 자녀들이다.[2] 둘째 이모 러시아의 황후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장남.[3] 크리스티안과 호콘 모두 첫째 외삼촌 프레데리크 8세의 아들들이다. 호콘의 아내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본인의 이종사촌인 모드다.[4] 둘째 외삼촌 요르요스 1세의 장남이자 사위 파블로스의 부친이기도 하다. 게다가 콘스탄티노스 1세의 아내 프로이센의 조피 공주는 아내 빅토리아 루이제의 셋째 고모였다.[5]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 루이 페르디난트의 고모부이자, 먼 친척이다. 루이 페르디난트의 외숙모 알렉산드라 대공비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둘째 누나였다.[6] 막시밀리안의 아내 마리 루이제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큰누나다.[7]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하노버[8] 스페인의 왕대비 소피아, 콘스탄티노스 2세[9] 후손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남 에른스트는 1981년 사망했고, 차남 게오르크는 아직 살아있으나 둘 다 딸만 있어 남계 후손은 단절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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