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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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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역사
단두장군(斷頭將軍)
嚴顔
엄안
엄안
(嚴)
(顔)
생몰 기간
(? ~ ?)
1. 개요2. 정사 삼국지3. 삼국지연의4. 기타5.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로 유장 휘하의 무장이다.

출신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화양국지》 파지에 따르면 낭중의 대성 중 엄씨가 있기에 엄안이 호족이라면 낭중 엄씨일 것이다.

정사에서는 딱 1회 등장하는 엑스트라지만 연의에서는 용장으로 각색된다. 단, 삼국지연의 이전에도 엄안의 고사에 대해 유명한 문인들이 글을 지었던 만큼, 나관중 혼자서 무리하게 유명한 인물로 띄운 케이스는 아니다.
유비가 익주로 들어오면서 유장을 공격했는데, <장비전>과 《자치통감》에 따르면 파군태수가 엄안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화양국지》에 따르면 파군태수는 엄안이 아니라 조작이라는 장수였고 엄안은 조작의 장군이라고 나와 있다.

<장비전>에 주석으로 달린 《화양국지》에 따르면 유비가 입촉하여 파군에 도착하자 엄안이 가슴을 두드리고 탄식하며 "이는 험한 산에 홀로 앉아 호랑이를 풀어 스스로를 지키려는 격이로구나!"라고 말했다.

<장비전>에 따르면 장비가 엄안을 격파하고 산 채로 붙잡았다. 장비가 엄안을 꾸짖으며 말했다.
대군이 당도했는데 어찌 항복하지 않고 감히 맞서 싸웠느냐?
엄안이 대답했다.
경(그대) 등이 무도하게 우리 주(익주)를 침탈했으니, 우리 주에는 다만 머리를 잘리는 장군이 있을 뿐 항복하는 장군은 있을 수 없소.
화난 장비가 주변인에게 엄안을 끌고 가서 머리를 자르라고 명했지만, 엄안은 안색이 변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머리를 자르면 자르는 것이지 어찌 화를 내는가!

엄안의 꿋꿋한 태도에 장비가 감복했고 그를 풀어주고 그를 손님으로 삼았다.

연의와 달리 정사에서는 이게 기록의 전부다. 장비가 엄안과의 대결을 포함한 익주에서 치른 전투들을 모두 이기고 승승장구를 했다고 하니 연의처럼 장비가 지나치게 되는 군현 및 성들이 항복하게 설득했거나 이곳들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하는 식으로 장비를 도와줬을 가능성은 있다.
나이가 예순이 훌쩍 넘어가는 노장으로 등장한다. 여기선 장비가 낙성을 향하여 나아갈 때 가짜 장비를 앞세우고 지나가는 것을 모르고 협공하려다가 진짜 장비에게 붙잡힌다. 그러나 "우리 촉 중엔 목을 베이는 장군은 있어도 항복하는 장수는 없다!"고 외치며 버티었다.

그의 높은 의기에 감복한 장비가 스스로 결박을 풀고 상석에 앉히며 우대하며 깍듯이 큰절까지 올리며 "당신이야말로 참된 호걸입니다. 이 놈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며 용서를 빌었고, 완고하던 엄안은 장비의 그 진실된 태도에 감격해 결국 진심으로 항복하여 그와 손을 잡았다. 그는 장비를 도와 4, 5성을 모두 항복시키며 성도를 향하여 진군하였다.

이때 일부 판본에서 다른 내용이 추가된다. 낙성까지 도달하는 관문을 지키는 촉군 장수들이 모두 엄안 본인의 부하들이라서 엄안의 말 한 마디에 '그 엄안장군마저 항복을 권유하면 더 생각할것도 없다.' 라며 모두 문을 열게 되었다는 것. 단순한 노장이 아닌 서촉의 덕장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덕분에 장임의 간계에 당해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인 유비를 극적으로 맞닥뜨려 장임을 후퇴시키고 유비를 구원할 수 있었다. 이에 감복한 유비는 엄안의 공을 치하하고 그에게 자신이 입던 갑옷인 수면탄두연환개를 하사하였다.

유비의 입촉 후 맹달의 원군으로 갈 때 황충의 부장으로서 함께 가맹관에 파견된다. 그러나 맹달이 늙다리들이 왔다며 회의적인 모습을 보내자 황충과 함께 노익장의 지혜를 보여줘서 젊은이들의 콧대를 꺾기로 마음먹고 계략을 짠다. 이후 황충이 일곱 번 지는 동안 어느새 모습이 사라졌는데, 황충이 적절한 타이밍에 교육지계를[1] 깨고 대역전하며 위병들을 혼란을 틈타, 철벽방어선이었던 천탕산을 뒤로 동시에 기습해 점령에 성공하고 하후덕을 참살하는 등 크게 공을 세우는 장면이 있다.

정사에선 나이도 딱히 기록된 바가 없기 때문에 연의처럼 노장이었는지도 미지수다.

4. 기타[편집]

  • 북송의 대문호인 소동파의 시 엄안비(嚴顏碑)에서 엄안이 언급된다.[2]
  • 남송의 충신인 문천상이 지은 정기가의 구절 중 '위엄장군두(爲嚴將軍頭: 엄 장군의 머리가 되어)'라는 구절은 엄안의 일화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말을 한 엄안이 투항자가 되었다.
  • 바이두 백과에 의하면 엄안의 묘는 총 3개가 존재하는데, 어느 것이 진짜 엄안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출처

5. 미디어 믹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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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부러 일주일 동안 7번 연속 져준 덕에 병력소모도 없었고 위군 입장에서는 너무 성공적으로, 빨리 이겨버렸기 때문에 위병이 길게 한 줄로 분산되어 있었고 오만한 마음이 하늘을 찌르다가 황충의 급작스러운 맹공에 병력이 실오라기처럼 다 풀어지게 된다.[2] 嚴子獨何賢,談笑傲碪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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