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지명/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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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7년에 처음 자사를 설치할 때, 이 방면을 맡는 자사의 감찰 구역이 원래 태산(泰山)과 회수(淮水) 사이의 동부 해안 지방을 가리키던 지방 이름인 서주(徐州)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서주자사부가 되었다. 주로 현재의 장쑤성 북부와 산둥성 남부 일대에 해당한다.
군웅할거 시기에는 당시 서주자사 도겸이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보하여 사실상 도겸의 영역이 되었고 이후 서주목에 임명되었다. 이후 도겸의 후계자가 된 유비가 그 세력을 물려받았다. 그 뒤에 서주를 여포에게 빼앗겼다가, 결국 여포를 멸망시킨 조조가 서주를 차지하게 되었다. 유비가 잠시 복귀했으나 조조에게 패주한 뒤론 영영 서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유수구 전투 이후인 213년 무렵 조조는 손권과의 대치가 장기화할 거로 생각하고 회수(淮水) 이남의 주민들을 회수 이북으로 옮기려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장강을 건너 이주해 버려(...) 무려 10만 호(戶)가 손권에게 유출된 일이 있었다. 이것이 단순히 기록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이 일로 인해 하비군과 광릉군 남부 일대는 사실상 폐현(廢縣)되어 무인지대가 형성되었다. 훗날 손준이 255년에 장강을 건너와 광릉군의 일부 현을 점거하긴 했으나, 실제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 소득이라 할만한 일이 되진 못했다.
군웅할거 시기에는 당시 서주자사 도겸이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보하여 사실상 도겸의 영역이 되었고 이후 서주목에 임명되었다. 이후 도겸의 후계자가 된 유비가 그 세력을 물려받았다. 그 뒤에 서주를 여포에게 빼앗겼다가, 결국 여포를 멸망시킨 조조가 서주를 차지하게 되었다. 유비가 잠시 복귀했으나 조조에게 패주한 뒤론 영영 서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유수구 전투 이후인 213년 무렵 조조는 손권과의 대치가 장기화할 거로 생각하고 회수(淮水) 이남의 주민들을 회수 이북으로 옮기려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장강을 건너 이주해 버려(...) 무려 10만 호(戶)가 손권에게 유출된 일이 있었다. 이것이 단순히 기록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이 일로 인해 하비군과 광릉군 남부 일대는 사실상 폐현(廢縣)되어 무인지대가 형성되었다. 훗날 손준이 255년에 장강을 건너와 광릉군의 일부 현을 점거하긴 했으나, 실제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 소득이라 할만한 일이 되진 못했다.
- 치소(治所)[1]: [후한]동해군 담현→[193?]하비국 하비현→[213?]팽성국 팽성현
- 198년?: 낭야군·태산군을 분할해 동관군 설치. 동해군·낭야군을 분할해 이성군 설치. 동해군을 분할해 창려군 설치.
- 206년: 창려군을 폐지하여 동해군에 합병함.
- 225년: 이성군을 폐지하여 동해군에 합병함.
항우의 서초에 연원을 둔 곳으로, 전한 때에는 초왕의 식읍인 초국(楚國)이었다. 후한 때인 70년에 초왕이 철봉(撤封)되면서 초군(楚郡)이 되었는데, 88년에 팽성왕이 책봉되면서 팽성국으로 개편되었다.
지명 | [-207]서초국→[-202]초국→[70]초군→[88]팽성국→[220]팽성군(彭城郡)→[222]팽성국→[222]팽성군→[232]팽성국 | ||||||||
소속 | 서초(西楚)→[한]서주자사부→[서진]서주 | ||||||||
치소 | 팽성현 | ||||||||
전입 | [277]패국 광척현 | ||||||||
전출 | [238]광척현→패국 | ||||||||
폐지 | [서진]치구현 | ||||||||
봉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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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성현(彭城縣): 서주자사(213?~) 및 팽성국 치소
-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초국→[후한]팽성국→[서진]서주 팽성국
- 무원현(武原縣)
-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초국→[후한]팽성국→[서진]서주 팽성국
- 부양현(傅陽縣)
-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초국→[후한]팽성국→[서진]서주 팽성국
- 여현(呂縣)
-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초국→[후한]팽성국→[서진]서주 팽성국
- 유현(留縣)
-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초국→[후한]팽성국→[서진]서주 팽성국
- 봉작
채관: 유후(?~?)
- 오현(梧縣)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초국→[후한]팽성국→[서진]서주 팽성국
- 치구현(菑丘縣·甾丘縣): 서진 폐지
-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초국→[후한]팽성국→[서진]폐지
- 봉작
- 위관: 치양후(菑陽侯·264~)→현공(265~291)
원래 전한 때인 기원전 117년에 형성된 임회군(臨淮郡)이었다.후한 때인 72년에 하비왕이 책봉되면서 하비국(下邳國)으로 개편되었다. 184년 무렵에 하비왕이 단절되었음에도 하비국이 폐지되지 않았으나,[4] 206년에 조치가 이뤄져 하비군이 되었다. 삼국통일 이후 280년에 하비국을 분할해 임회군을 새로 설치했다.
지명 | [-117]임회군→[72]하비국→[206]하비군→[222]하비국→[224]하비군→[265]하비국 | |||||||||
소속 | [한]서주자사부→[서진]서주 | |||||||||
치소 | [전한]서현→[후한]하비현 임회군: [서진]서현 | |||||||||
분합 | [서진]임회군: 서현·하상현·우이현·고산현·반정현·회릉현·사오현 및 광릉군 고우현·동양현 | |||||||||
전입 | [삼국]광릉군 능현 | |||||||||
설치 | [서진]우이현(재설치)·고산현(재설치)·반정현(재설치) 및 임회군 췌기현 | |||||||||
전출 | [213?]회음현·회포현→광릉군 | |||||||||
폐지 | [213?]우이현·고산현·반정현·동성현, [서진]곡양현 | |||||||||
출신 | ||||||||||
봉작 | 조우: 하비왕(222~224) 사마황(司馬晃): 하비왕(2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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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비현(下邳縣): 서주목(193?~213?) 및 팽성국 치소
여포가 마지막까지 농성했던 곳이다.-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하비군→[서진]서주 하비군
- 동현(僮縣)
- 지명: [후한]동국(僮國)
-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군→[서진]서주 하비군
- 수릉현(睢陵縣)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군→[서진]서주 하비군
- 위치: 193년에 현이 이전되었다.
- 봉작
- 왕상: 수릉후(264~)→현공(265~)
- 취려현(取慮縣)
-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군→[서진]서주 하비군
- 곡양현(曲陽縣): 서진 폐지
- 지명: [후한]곡양국(曲陽國)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하비군→[서진]폐지
- 봉작
- 조무: 곡양왕(232~244)
- 양성현(良成縣)
- 지명: [전한]양성국(良成國)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하비군→[서진]서주 하비군
- 봉작
- 장패: 양성후(221?~)
- 하구현(夏丘縣)
- 소속: [전한]예주자사부 패군→[후한]서주자사부 하비군→[서진]서주 하비군
- 서현(徐縣)
-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군→[서진]서주 임회군
- 봉작
- 순의: 임회후(臨淮侯·264~)→현공(265~)
- 누정(樓亭): 《33.50943, 118.07846》
- 하상현(下相縣)
-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군→[서진]서주 임회군
- 회릉현(淮陵縣)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군→[서진]서주 임회군
- 사오현(司吾縣)
- 지명: [후한]사오국(司吾國)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하비군→[서진]서주 임회군
우이현(盱眙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 지명: [후한]우태현(盱台縣)
-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군→[213]폐지, [서진]서주 임회군
고산현(高山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군→[213]폐지, [서진]서주 임회군
반정현(潘旌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 지명: [진]반정현(播旌縣)→[후한]반정현(潘旌縣)
-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군→[213]폐지, [서진]서주 임회군
- 소속: [진]구강군→[전한]양주자사부 구강군→[후한]서주자사부 하비군→[213]폐지
췌기현(贅其縣): 후한 폐지→서진 재설치-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폐지, [서진]서주 하비군
구유현(厹猶縣): 후한 폐지-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폐지
개양현(開陽縣): 후한 폐지부릉현(富陵縣): 후한 폐지서평현(西平縣): 후한 폐지- 소속: [진]회양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폐지
고평국(高平國): 후한 폐지개릉국(開陵國): 후한 폐지창양국(昌陽國): 후한 폐지광평국(廣平國): 후한 폐지난양국(蘭陽國): 후한 폐지양평국(襄平國): 후한 폐지낙릉국(樂陵國): 후한 폐지
기록에서는 원래 진(秦)나라의 담군(郯郡)이었다고 하는데, 간독에선 이미 진나라 때부터 동해군(東海郡·東晦郡)으로 쓰였음이 확인된다. 또한 212년에 동해왕이 새로 책봉되었으나, 이 당시엔 동해왕 유선(劉羨)이 이미 재위 중이었다. 기존의 동해왕은 그 봉호(封號)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노국(魯國)을 그 식읍으로 삼고 있었으므로, 아마도 유선이 이때 노왕(魯王)으로 개봉(開封)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지명 | [진]동해군→[39]동해국→[58]동해군→[212]동해국→[220]동해군→[232]동해국→[265]동해군 | ||||||||||
소속 | 진(秦)→[한]서주자사부→[서진]서주 | ||||||||||
치소 | [진]담현→[206]창려현→[232?]담현 이성군: 이성현 창려군: 창려현 | ||||||||||
분합 | [198]이성군→[206]동해군에 합병: 창려현·합향현·척현·승현·도양현 | ||||||||||
[198]창려군→[225]동해군에 합병: 이성현·축기현·구현·후구현·감유현 및 낭야국 낭야현·해곡현 | |||||||||||
전입 | [216]낭야군 담현·양분현· | ||||||||||
설치 | [서진]감유현(재설치) | ||||||||||
전출 | [206]담현·양분현· | ||||||||||
폐지 | [225]이성군 낭야현·해곡현, [225?]감유현, [서진]도양현 | ||||||||||
출신 | |||||||||||
봉작 | 유돈(劉敦): 동해왕(212~220) 조림: 동해왕(232~2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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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진]동해군→[한]서주자사부 동해군→[206]낭야국→[216]동해국→[서진]서주 동해군
- 봉작
- 진건: 담후(264~265)
- 양분현(襄賁縣)
평곡현(平曲縣): 후한 폐지난기국(蘭祺國): 후한 폐지산향국(山鄕國): 후한 폐지건향국(建鄕國): 후한 폐지용구국(容丘國): 후한 폐지동안국(東安國): 후한 폐지건양국(建陽國): 후한 폐지- 지명: [진]건양현(建陽縣)
- 소속: [진]설군→[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폐지
우향국(于鄕國): 후한 폐지평곡국(平曲國): 후한 폐지도양국(都陽國): 후한 폐지(음평현에 합병)오향국(郚鄕國): 후한 폐지- 지명: [진]오현(郚縣)
- 소속: [진]사천군→[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폐지
무양국(武陽國): 후한 폐지신양국(新陽國): 후한 폐지건릉국(建陵國): 후한 폐지- 지명: [진]건릉현(建陵縣)
-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폐지
도평국(都平國): 후한 폐지
198년에 여포가 멸망한 뒤 조조가 설치한 군으로, 동해국의 동부를 분할해 설치했다. 225년 이성군에서 반란이 일어나 태수 서질이 죽었는데, 이때 반란이 평정되면서 폐지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성현·축기현 외에 어떠한 현이 소속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6년에 동해국의 담현·양분현 등이 낭야국으로 이속한 연혁을 살펴보면, 구현·후구현도 이성군에 소속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국시대 중에 동해국 감유현과 낭야국 낭야현·해곡현이 폐지되었으나,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는데, 아마 이 3현도 이성군에 소속되어 있다가 이성군의 반란이 진압당하면서 폐지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이성현(利城縣): 이성군 치소
- 지명: [전한]이성현(利成縣)
- 소속: [한]서주자사부 동해군→[198]이성군→[225]동해군→[서진]서주 동해군
- 축기현(祝其縣)
- 소속: [한]서주자사부 동해군→[198]이성군→[225]동해군→[서진]서주 동해군
- 구현(胊縣)
- 소속: [진]동해군→[한]서주자사부 동해군→[198]이성군?→[225]동해군→[서진]서주 동해군
- 후구현(厚丘縣)
- 소속: [한]서주자사부 동해군→[198]이성군?→[225]동해군→[서진]서주 동해군
감유현(贛楡縣): 삼국시대 중 폐지→서진 재설치- 소속: [진]낭야군→[전한]서주자사부 낭야군→[후한]동해국→[198]이성군?→[225?]폐지, [서진]서주 동해국
- 기성(紀城): 《35.11127, 119.32435》
낭야현(琅邪縣): 삼국시대 중 폐지- 소속: [진]낭야군→[전한]서주자사부 낭야군→[후한]낭야국→[198?]이성군?→[225?]폐지
- 낭야대(琅邪臺): 《35.64908, 119.90517》
해곡현(海曲縣): 삼국시대 중 폐지-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낭야국→[198?]이성군?→[225?]폐지
198년에 여포가 멸망한 뒤 조조가 설치한 군으로, 동해국의 서부를 분할해 설치했다. 206년에 낭야왕이 책봉되면서 폐지되었다. 창려현·합향현 외에 어떠한 현이 소속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6년에 동해국의 담현·양분현 등이 낭야국으로 이속한 연혁을 살펴보면, 척현·승현·도양현 등이 소속되어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기존의 동해국을 낭야국에 병합하고 동해왕을 전봉(轉封)하여 창려군을 동해국으로 개편한 것으로 여겨진다.
- 창려현(昌慮縣): 창려군 치소
- 지명: [전한]창려국(昌慮國)
- 소속: [한]서주자사부 동해군→[198]창려군→[206]동해국→[서진]서주 동해군
- 합향현(合鄕縣)
합성현(合城縣)으로 오기(誤記)된 예가 있다.- 소속: [한]서주자사부 동해군→[198]창려군→[206]동해국→[서진]서주 동해군
- 척현(戚縣)
- 소속: [진]사천군→[한]서주자사부 동해군→[198]창려군?→[206]동해국→[서진]서주 동해군
- 승현(承縣)
- 지명: [후한]승현(氶縣)
- 소속: [진]설군→[한]서주자사부 동해군→[198]창려군?→[206]동해국→[서진]서주 동해군
- 봉작
- 왕순: 승자(264~)
- 도양현(都陽縣): 서진 폐지
- 지명: [진]음평현(陰平縣)→[전한]음평국(陰平國)→[140?]도양현
후한의 음평현은 삼국시대에 확인되지 않으나, 후한 초기에 음평현에 합병된 도양국이 조홍의 식읍으로 쓰이는 것이 확인된다. 이름이 익주의 음평도와 겹치기에, 아마도 140년 이후에 음평현이 도양현으로 바뀐 듯하다. - 소속: [진]설군→[한]서주자사부 동해군→[198]창려군?→[206]동해국→[서진]폐지
- 봉작
- 조홍: 도양후(221?~226)
원래 진(秦)나라가 설치한 낭야군(琅邪郡)으로, 전한 때 낭야군 주변 일대는 황족들이 책봉되는 봉국으로 주로 활용되었기에, 낭야군은 보통 주변의 왕국(王國)에서 분봉된 후국(侯國)의 수용소(...)처럼 운영되었다. 이는 왕국에 소속된 군·현들은 그 왕의 식읍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원칙상 왕의 식읍에 또 다른 열후의 식읍을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후한 때에는 열후의 식읍을 무조건 현급의 국으로 분할하지 않았기에 몇몇 군을 후국의 수용소처럼 운영하는 일은 없게 되었고, 80년에 낭야왕이 책봉되면서 낭야국으로 개편되었다. 193년에 낭야왕 유용(劉容)의 후사가 없어 단절되었음에도 봉국을 폐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가, 206년에 낭야왕이 새로 책봉되었다.
지명 | [진]낭야군→[41]낭야국→[206]낭야국→[216]낭야군→[232]낭야국 | ||||||||||
소속 | 진(秦)→[한]서주자사부→[서진]서주 | ||||||||||
치소 | [진]낭야현→[전한]동무현→[80]개양현 | ||||||||||
분합 | [198]동관군: 동관현·동안현 | ||||||||||
전입 | [206]동해국 담현·양분현· | ||||||||||
전출 | [198]동무현·제현·거현·고막현→청주 성양군 및 낭야현·해곡현→이성군, [216]담현·양분현· | ||||||||||
출신 | |||||||||||
봉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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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양현(開陽縣): 낭야국 치소
- 양도현(陽都縣)
- 소속: [진]성양군→[전한]연주자사부 성양국→[후한]서주자사부 낭야국→[서진]서주 낭야국
- 봉작
제갈각: 양도후(252~253?)
- 중구(中丘): 《35.35164, 118.49389》
- 모향(牟鄕): 《35.36755, 118.69572》
- 임기현(臨沂縣)
삼국시대의 유명 도시나 거점이 아니라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임기'는 현대의 린이시까지 그 지명이 이어져 쓰이고 있다. 그 유래가 한나라 때로 거슬러 가는 굉장히 오래된 지명이다.-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낭야국→[서진]서주 낭야국
- 봉작
- 가충: 임기후(264~265)
- 즉구현(卽丘縣)
- 지명: [후한]즉구국(卽丘國)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낭야국→[서진]서주 낭야국
- 봉작
- 왕람: 즉구자(264~)
- 증현(繒縣)
- 지명: [후한]증국(繒國)
-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낭야국→[서진]서주 낭야국
- 기정(蔇亭): 《34.94182, 117.92233》
오성현(梧成縣): 후한 폐지- 지명: [후한]오(郚)
영문현(靈門縣): 후한 폐지허수국(虛水國): 후한 폐지임원국(臨原國): 후한 폐지불국(祓國): 후한 폐지거현(柜縣): 후한 폐지병국(缾國): 후한 폐지(임구현에 합병)- 지명: [후한]병읍(郱邑)·삼정(三亭)
부현(邞縣): 후한 폐지- 소속: [진]낭야군→[전한]서주자사부 낭야군→[후한]폐지
우가국(雩叚國): 후한 폐지운국(雲國): 후한 폐지계근현(計斤縣): 후한 폐지(검추국에 합병)- 지명: [후한]개정(介亭)
도국(稻國): 후한 폐지고우국(皐虞國): 후한 폐지횡현(橫縣): 후한 폐지위기국(魏其國): 후한 폐지- 지명: [진]위기현(魏其縣)
- 소속: [진]교동군→[전한]서주자사부 낭야군→[후한]폐지
창현(昌縣): 후한 폐지자향국(茲鄕國): 후한 폐지기국(箕國): 후한 폐지- 지명: [진]기현(箕縣)
- 소속: [진]낭야군→[전한]서주자사부 낭야군→[후한]폐지
비현(椑縣): 후한 폐지고광국(高廣國): 후한 폐지고향국(高鄕國): 후한 폐지유국(柔國): 후한 폐지즉래국(卽來國): 후한 폐지여국(麗國): 후한 폐지무향국(武鄕國): 후한 폐지이향국(伊鄕國): 후한 폐지신산국(新山國): 후한 폐지고양국(高陽國): 후한 폐지곤산국(昆山國): 후한 폐지삼봉국(參封國): 후한 폐지절천국(折泉國): 후한 폐지박석국(博石國): 후한 폐지방산국(房山國): 후한 폐지신향국(愼鄕國): 후한 폐지사망국(駟望國): 후한 폐지안구국(安丘國): 후한 폐지고릉국(高陵國): 후한 폐지임안국(臨安國): 후한 폐지석산국(石山國): 후한 폐지
'莞'은 '완'으로도 읽히기에 '동완군'으로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있으나, 지명에 쓰일 때는 '관'으로 읽힌다. 198년에 여포가 멸망한 뒤 조조가 윤례가 동관태수가 되었을 때 처음 등장하므로, 당시에 윤례가 장악하고 있던 영역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진서』 지리지에는 동관군을 서진이 설치했다고 쓰여있기에 위나라 때 폐지된 것으로 보는 의견들이 있으나, 위나라 때에도 동관태수가 임명되었던 것을 보면 『진서』 지리지가 군웅할거 이후 시점의 일을 무작정 서진 때 일어난 일로 기록한 사례 중 하나라 생각된다. 아마도 서진 초기에 동관왕이 책봉되면서 동관국(東莞國)이 되었다가 277년에 낭야왕으로 증봉(增封)되면서 낭야국의 지군(支郡)이 되었고, 태강 연간에 낭야왕의 식읍에서 분리되었기에 이런 기록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지명 | [198]동관군→[265]동관국→[277]동관군 | ||
소속 | [198]서주자사부→[277]서주 낭야국→[서진]서주 | ||
치소 | 동관현 운정 | ||
전입 | [198]낭야군 동관현·동안현 및 태산군 개현·몽음현, [210?]동안군? 임구현, [서진]북해국 주허현·영릉현·극현 및 성양군 안구현 및 제국 광현 | ||
전출 | [서진]동안현·몽음현→낭야국 | ||
봉작 | 사마주: 동관왕(265~27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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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관현(東莞縣): 동관군 수현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낭야군→[후한]낭야국→[198]동관군→[서진]서주 동관군
- 봉작
- 정렬: 평관남(平莞男·264~)
- 운정(鄆亭): 동관군 치소, 《36.00282, 118.75885》
- 비향(邳鄕): 《36.09680, 118.65050》
- 동안현(東安縣)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성양국→[후한]낭야국→[198]동관군→[서진]서주 낭야국
- 봉작
- 사마륜: 동안자(264~265)
- 개현(蓋縣)
- 소속: [한]연주자사부 태산군→[198]동관군→[서진]서주 동관군
- 몽음현(蒙陰縣): 30년 폐지→198년 재설치
- 소속: [전한]연주자사부 태산군→[30]폐지, [198]동관군→[서진]서주 낭야국
- 위치: 전한 때의 위치와 후한 말 다시 설치되었을 때의 위치가 서로 다르다.
- 이오정(夷吾亭): 《35.74800, 117.89720》
- 임구현(臨胊縣)
- 지명: [전한]임구국(臨胊國)
- 소속: [진]임치군→[전한]청주자사부 제군→[후한]제국→[195?]동안군?→[210?]서주자사부 동관군→[서진]서주 동관군
전한 초기인 기원전 154년에 강도왕이 책봉되면서 동양군(東陽郡)을 분할해 강도국(江都國)이 설치되었고, 기원전 120년에 강도왕이 철봉(撤封)되고 새로 광릉왕이 책봉되어 광릉국(廣陵國)이 되었다. 기원전 114년에 사수왕이 책봉되면서 동해군을 분할해 사수국(泗水國)이 설치되었다. 후한 때인 35년에 사수왕이 단절되자, 사수국이 광릉군에 합병되었다. 유수구 전투 이후인 213년 무렵에 조조는 손권과의 대치가 장기화될 거라 여기고 회수(淮水) 이남과 장강 이북 사이에 있는 지역의 주민들을 회수 이북으로 이주시키려 했으나,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장강을 건너가 손권에게 망명해 버렸기에 회수 이남 지역에 무인지대가 형성되어, 이 영향으로 광릉군 11현 중 9현이 사실상 폐지되었기에 하비국에서 2현이 이속되어 광릉군을 유지할 수 있었다. 250년에 손권이 당릉현을 점거해 도당(涂塘)을 건설했고, 255년 손준이 관구검에게 호응하여 회수 이남에 상비군을 주둔하고자 광릉현 일대를 점령하고, 오양(吳穰)을 광릉태수로 유략을 동해태수로 임명해 보냈으나, 그 일대에서 축성하는 데 실패했다. 서진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야 옛 현들을 복구했다.
지명 | [-154]강도국→[-120]광릉국→[10]광릉군→[58]광릉국→[67]광릉군 [-114]사수국→[23]사수군→[25]사수국→[35]광릉군에 병합 | ||||||||||
소속 | [한]서주자사부→[서진]서주 | ||||||||||
치소 | [전한]광릉현→[213?]회음현 사수국: [전한]능현 | ||||||||||
설치 | [280]광릉현(재설치)·강도현(재설치)·고우현(재설치)·동양현(재설치)·사양현(재설치)·염독현(재설치)·여국(재설치)·해릉현(재설치) | ||||||||||
전출 | [148]당읍현→양주자사부 부릉국?, [서진]능현→하비군 및 고우현·동양현→임회군 | ||||||||||
폐지 | [213?]광릉현·강도현·고우현·동양현·사양현·염독현·여국·해릉현·평안현, [서진]해서현 | ||||||||||
출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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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서주를 점거하고 있던 때에 진등이 정식으로 광릉태수에 임명되었다. 『삼국지』 장막전의 주석으로 인용된 『선현행장』에 진등이 동성태수(東城太守)로 나와 있어, 후한 말에 동성군(東城郡)이 설치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기록들에서 엄연히 광릉태수로 나오고 있는 이상 『선현행장』의 오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회음현(淮陰縣): 광릉군 치소
초·한전쟁 때의 명장 한신의 고향으로, 한신이 제왕·초왕이었다가 제후로 강등되었을 때 회음후가 되었다.-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국→[213?]광릉군→[서진]서주 광릉군
- 사구(泗口): 《33.51660, 118.91025》
- 회포현(淮浦縣)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하비국→[213?]광릉군→[서진]서주 광릉군
- 능현(淩縣)
- 지명: [진]능현(凌縣)→[전한]능현(淩縣)
-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사수국→[후한]광릉군→[서진]서주 하비군
- 해서현(海西縣): 서진 폐지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동해군→[후한]광릉군→[서진]폐지
광릉현(廣陵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강도현(江都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광릉국→[후한]광릉군→[213]폐지, [서진]서주 광릉군
고우현(高郵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광릉국→[후한]광릉군→[213]폐지, [서진]서주 임회군
동양현(東陽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광릉군→[213]폐지, [서진]서주 임회군
사양현(射陽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광릉군→[213]폐지, [서진]서주 광릉군
- 봉작
- 주준: 사양후(279 이전~280)
염독현(鹽瀆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광릉군→[213]폐지, [서진]서주 광릉군
여현(輿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 지명: [후한]여국(輿國)
-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광릉군→[213]폐지, [서진]서주 광릉군
해릉현(海陵縣): 213년 사실상 폐지→280년 복구- 소속: [진]동해군→[전한]서주자사부 임회군→[후한]광릉군→[213]폐지, [서진]서주 광릉군
평안현(平安縣): 213년 폐지- 소속: [전한]서주자사부 광릉국→[후한]광릉군→[213]폐지
사양현(泗陽縣): 후한 폐지우현(于縣): 후한 폐지
![실제 지도 후한 13주](http://i.namu.wiki/i/dvlbJYY0oSVXkrFykIGzCmOAX39jXhxWrEPQGCy-YElK3OMPus8043MY48F7SCtQX1K8LjAmY_tSzrBxzmrkqr2TgTNzj_btcC8Wyd-ZlUCLwm2_2uKG-VQ95fE-Xs1n9uHx_2-TFZ0TWR4PPBwfEQ.webp)
[1] 193년 조조가 서주를 침공하면서 무고한 백성들까지 학살하면서 피해가 막심했고, 특히 당시에 자사의 치소인 담현까지 함락당한 일도 있었기에, 도겸이 하비현으로 치소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유비가 서주목을 물려받은 194년 시점에는 확실하게 하비가 서주목의 치소로 언급된다. 이후 위나라 때 서주자사의 치소는 팽성국 팽성현에 있었는데, 아마도 유수구 전투 이후 주민들을 이주시킨 시점에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2] 213년에 아버지 유화(劉和)의 작위를 계승함.[3] 40,196호[4] 184년에 아버지 유의(劉意)의 작위를 계승한 유의(劉宜)가 수개월 만에 훙서함.[5] 206년에 담현·양분현·척현을 낭야국으로 이속했다고 하는데, 이 중 척현은 낭야국에 인접하지 않으며 당시에는 창려군 소속 현이었기에 난릉현의 오기(誤記)인듯 하다.[6] 『한서』 지리지는 해곡현(海曲縣)으로 오기했다.[7] 『속한서』 군국지는 서해현(西海縣)으로 오기했다.[8] 『속한서』 군국지에는 당읍현이 기재되고 해릉현은 누락되어 있다. 아마도 당읍현이 부릉국에 소속된 것을 파악하지 못하여 발생한 오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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