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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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광역자치단체장 2석, 바른미래당은 광역자치단체장 0석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남북평화 무드의 바람에 밀린 것이 컸지만 자유한국당은 탄핵 정당의 이미지와 홍준표 대표의 발언으로 인한 각종 구설수로 이미지가 추락했고 바른미래당에선 바른정당계와 국민의당계의 공천 갈등으로 공천 혼란이 벌어지는 등의 행동이 패배의 요인이 되었다. 결국 한국당에선 비박계 홍준표 대표가 사퇴하며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전환하게 되었고 미래당에서도 유승민 공동대표가 사퇴하며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는 등 두 보수정당이 모두 큰 혼란에 빠졌다.
이후 시간이 지나 자유한국당에선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퇴임하고 자유한국당의 신임 대표로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였던 황교안을 선출했다. 바른미래당에선 신임 대표로 새누리당 출신이 아닌 국민의당 출신이었던 손학규를 선출하면서 두 정당의 제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체제는 처음엔 잘 순항하면서 순조로운 모습을 보였다. 황교안 대표의 높은 지지율이 이어지며 이낙연 총리를 앞지르는 등 순풍이 이어졌다. 반면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체제는 자유한국당에 비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당내의 대주주였던 친안계와 친유계 모두에게서 점점 신임을 잃게 되었다. 결국 이후 벌어진 재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1석을 차지한 반면 바른미래당은 의석을 얻는데 실패하며 손학규 대표의 사퇴가 빗발치는 등 분열이 시작되었다.[2]
이후 또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조국 사태 등 문재인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자유한국당은 지지율을 크게 올리면서 반등한 반면[3]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를 둘러싼 분열로 인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는 등 보수내전의 승패가 서서히 자유한국당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바른미래당은 내분 끝에 사실상 공중분해 절차를 거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의 당주였던 안철수 전 의원은 국민의당을 창당해 나갔고 바른정당의 당수였던 유승민 전 대표는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해 나갔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자유한국당은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 본격적으로 두 정당에 통합 요청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통합 논의는 각 당의 힘겨루기로 인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마지막에 들어서 새보수당의 당주나 다름없던 유승민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기득권을 내려놓으면서 보수통합은 빠르게 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자유한국당에선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퇴임하고 자유한국당의 신임 대표로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였던 황교안을 선출했다. 바른미래당에선 신임 대표로 새누리당 출신이 아닌 국민의당 출신이었던 손학규를 선출하면서 두 정당의 제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체제는 처음엔 잘 순항하면서 순조로운 모습을 보였다. 황교안 대표의 높은 지지율이 이어지며 이낙연 총리를 앞지르는 등 순풍이 이어졌다. 반면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체제는 자유한국당에 비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당내의 대주주였던 친안계와 친유계 모두에게서 점점 신임을 잃게 되었다. 결국 이후 벌어진 재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1석을 차지한 반면 바른미래당은 의석을 얻는데 실패하며 손학규 대표의 사퇴가 빗발치는 등 분열이 시작되었다.[2]
이후 또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조국 사태 등 문재인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자유한국당은 지지율을 크게 올리면서 반등한 반면[3]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를 둘러싼 분열로 인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는 등 보수내전의 승패가 서서히 자유한국당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바른미래당은 내분 끝에 사실상 공중분해 절차를 거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의 당주였던 안철수 전 의원은 국민의당을 창당해 나갔고 바른정당의 당수였던 유승민 전 대표는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해 나갔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자유한국당은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 본격적으로 두 정당에 통합 요청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통합 논의는 각 당의 힘겨루기로 인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마지막에 들어서 새보수당의 당주나 다름없던 유승민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기득권을 내려놓으면서 보수통합은 빠르게 물살을 타게 되었다.
- 4월 1일: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을 주도로 한 '플랫폼 자유와 공화'가 출범하였다. '플랫폼 자유와 공화'는 각계 전문 인사 30여 명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 모델을 연구하면서 시작됐다. 자유와 공화 측은 창립 선언문을 통해 북핵폐기와 한반도 항구적 평화와 공영, 경제와 노동 개혁, 정부와 공공부문 개혁, 교육 개혁,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박형준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은 자유와 공화를 지향하는 정치 세력의 규합과 통합을 통해 정치 혁신에 나설 것이라며 '플랫폼 자유와 공화'가 보수 재편의 진앙지가 될 것임을 확인했다. 창립총회에는 유승민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참여하였다. 당시 황교안 지도부는 정통 보수를 강조하면서 개혁 보수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비박과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선 "강경 보수만으로는 내년 총선 승리와 집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개혁 보수를 앞세운 보수의 전면적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고 전한다. #
- 8월 20일: 시민단체 '플랫폼 자유와 공화'가 20일 개최한 '대한민국 위기극복 대토론회'에서는 보수 대통합을 어떻게 실현할지를 놓고 보수 진영 내에서 엇갈린 견해가 표출됐다. #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보수 정당의 자기 혁신은 불가능하다면서 기존 보수 정당의 혁신 세력이 중도 기치 아래 통합해야 한다면서 중도 세력을 구심점으로 한 보수 대통합론을 제시했다. 참여정부 시절 부총리 겸 교육장관을 지낸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을 묻지 말고 공통의 비전과 철학을 중심으로 뭉치자고 제안했다.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반문연대의 틀 안에서 작은 차이는 무시하는 통합의 길로 가 국민의당 안철수 전 의원부터 우리공화당까지 끌어안고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한국당 중심의 반문연대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정병국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은 보수진영 통합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선거를 앞둔 인위적 통합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통합에 앞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등을 돌린 보수 세력들이 반목을 멈추고 생존을 위한 화해와 용서의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도 이때쯤부터 유승민 의원에게 보수통합 러브콜을 보내 왔다.
- 10월 9일: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자신이 밝힌 원칙에 동의한다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6.13 지방선거 패배 이후 바른미래당의 분열 조짐 가운데 비당권파 좌장으로서 당내 조직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이후 새로운보수당)'을 이끄는 유 의원이 처음으로 한국당과의 통합·연대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주목을 끌었다.
유승민 의원은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가자', '낡은 것 다 허물고 새 집 짓자'의 보수 통합 3대 원칙을 강조하였다. '탄핵의 강을 건너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탄핵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입장을 분명히 해야만 보수가 살 수 있고 탄핵에 찬성, 반대로 싸우면 도움이 안 된다며 이를 수용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혁 보수'는 조국 사태 이후 보수가 헌법 가치 가운데 자유뿐 아니라 평등과 정의, 공정의 실현도 의제로 내세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설합당의 방식을 선택하는 데 대해서는 "첫째와 둘째 원칙이 중요하다. 이걸 받아들이면 셋째 원칙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라고 언급했다. #
- 11월 6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총선 승리를 위한 본격적인 통합 추진에 나설 뜻을 알렸다. 당내에는 자유우파 통합 추진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언급했다.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하는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보수 진영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의견차가 있는 데 대해 '불문에 부치자'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통합 과정에서는 "한국당 간판을 내리고 새로운 간판을 다는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전격 선언해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주도하는 제3지대 신당과의 통합도 검토되는 것으로 풀이되었다. 박형준 교수 등이 물밑 접촉에 힘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
- 1월 31일: 혁신과통합 추진위원회 제1차 대국민 보고대회가 있었다. 당초 합당 선언으로 계획되었으나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간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대국민 보고대회로 축소된 것이다. 박형준 혁신과통합 추진위원장은 대회 경과보고에서 범 중도보수 통합을 강조하며 "자유·민주·공화·공정과 창조성·휴머니티"를 핵심 가치로 하겠다고 밝히고 "통합신당이 유일한 범중도보수의 정통 세력임을 선언한다"고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통합을 강조하여 당장 아쉽고 미흡한 부분은 앞으로 함께 바꿔나갈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지금 자유우파가 발휘해야 할 지혜라고 말했다. 반면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책임대표는 통합 작업이 막바지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국민은 저 통합이 무원칙한 통합이냐, 원칙이 있는 통합이냐 한 가지만 볼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원칙을 강조했다. 하 대표는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것은 들어와서 치고받지 않기 위함"이라며 통합 이후 내홍을 막기 위해 탄핵 불복 세력에 대해 재차 선을 그은 것이다. #
- 2월 13일: 자유한국당은 국회에서 전국위원회를 열고 새보수당, 전진당과의 통합을 의결하고 모든 합당 관련 권한을 최고위원회의에 위임한다고 밝혔다. 당명은 통합신당 혹은 대통합신당이 물망에 올랐었으나 결국엔 미래통합당으로 결정됐다.
- 2월 14일: 총선을 2달 앞두고 전당대회를 치러 새 지도부를 뽑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당 최고위에 기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비롯 8명의 최고위원직이 유지되고 거기에 4명의 최고위원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신임 최고위원으로 원희룡 제주지사와 이준석 새로운보수당 젊은정당비전위원장을 우선 내정했다. 보수 시민단체들은 이에 반발해 전원 사퇴했다.
- 2월 6~17일: 통합추진위원회는 시민·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약칭 시대연)의 참여 하에 자유한국당(황교안), 새로운보수당(유승민), 미래를향한전진4.0(약칭 전진당, 이언주) 3당을 신설합당키로 하고 이를 위한 통합신당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통합신당준비위원회는 2월 6일 15인으로 출범, 2월 10일 김일두(시대연 추천) 추가 위촉, 총 16인으로 구성, 2월 14일 시대연 추천 7인 전원 사퇴했다. '혁신공천=총선승리'를 위해 공천관리위원장과 공천관리위원에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주장이 무산되어 2월 14일 시민·사회단체 출신 공동위원장(장기표)과 통합신당준비위원(김근식, 김일두, 박준식, 안병용, 안형환, 조형곤) 전원 사퇴했다.
공동위원장(5인): 심재철(자유한국당), 정병국(새로운보수당), 이언주(전진당), 장기표, 박형준(이상 시대연)
정치혁신특별위원장: 문병호
통합신당준비위원(10인): 김상훈, 송언석(이상 자유한국당), 정운천(새로운보수당), 김원성(전진당), 김근식, 김일두, 박준식, 안병용, 안형환, 조형곤(이상 시대연)
2020년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등으로 나뉘어 있던 보수정당들은 미래통합당을 신설합당하고 보수 통합을 내걸면서 새누리당 분당 사태가 마무리되고 보수정당의 통합이 이루어졌다.[4] 미래통합당과는 별개로 우리공화당, 친박신당 같은 친박 정당이 남아 있었으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외정당이 되면서 정리되었다.[5]
이 과정에서 유승민, 하태경, 이준석, 정병국 등 새로운보수당계 정치인이 복당하였으며 옛 국민의당 출신 정치인들도 미래통합당에 합류했다. 특히 미래통합당 창당 과정을 통해 이언주, 문병호, 김근식, 김영환처럼 민주당계 정당에서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으로 합류하면서 민주당에서 보수정당으로 전향한 민주당계 보수 정치인들이 많아졌다.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던 박형준 역시 이때 플랫폼 자유와 공화를 통해 보수 통합을 주도하면서 이후 미래한국당에 입당해 현실 정치에 다시 복귀한다.
두 보수정당의 분열 사태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보수의 적통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나 결과적으론 바른정당의 후신인 새로운보수당이 사실상 자유한국당에 흡수통합되는 형식으로 합쳐지면서 자유한국당의 승리로 끝났는 모양새가 되었다. 사실상 친박, 친황 위주 지도부가 친유, 소장파를 비롯한 비박 성향 정치인들을 압박했지만 21대 총선에서 완패하면서 친박, 친황,친이 일부가 몰락했다.
다만 21대 총선 이후에는 조금 이야기가 다른데 미래통합당이 제21대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 반성과 자조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고 이 과정에서 기존 바른정당계 지도부를 차지해 당의 변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6]
그런데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자유한국당에 잔류했고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는 2위, 바른정당을 창당하고 바른정당 대선 후보였던 유승민은 3위로 경선에서 탈락하게 되었으며 정작 최종 후보로 당선된 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전직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이다. 여기서 2030의 지지를 받은 홍준표, 유승민과 60대 이상의 지지를 받은 윤석열의 구도가 드러났다.
21대 총선으로 인해 기존의 계파가 와해되고 윤석열의 정계 입문으로 인해 과거와 다른 대권 구도 양상을 보였다. 그래서 홍준표와 유승민이 전략적 동맹을 결성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윤석열을 비판하는 구도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둘 중 어느 정당이 최종적으로 승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새로운보수당 출신의 이준석 체제로 승리해 정권을 탈환하면서 한국당계의 입지는 축소된 반면 바른정당계는 당의 신주류로 떠올랐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결과와 이후의 국민의힘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8회 지선 결과 바른정당계가 이끄는 국민의힘이 압승하며 바른정당계 입장에선 호랑이(한국당계)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와 성공한 격이 됐고 한나라당에서부터 이어져 온 자유한국당계는 보수 적통 경쟁에서 최종 패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허나 바른정당계인 이준석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 사건으로 당대표직에서 내려오며 자유한국당계가 다시 당권을 차지해 주류로 복귀했다.
그러나 2023년 연말에는 이준석계 중심으로 한 반윤 세력의 일부가 다시 국민의힘에서 대거 탈당하면서 3년 11개월만 다시 한번 범보수-우파세력간의 분열이 일어났다.
이준석계와 반윤 세력이 국민의힘에서 나가는 사이에 윤석열 정부의 초대 법무 장관을 지낸 한동훈 전 장관이 투입하면서 범보수세력의 새로운 핵심 인물이자 차기 대선주자로 성장했다.
한동훈의 등장로 다른 범보수 세력의 대선주자들도 일제히 경계을 하면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유승민, 하태경, 이준석, 정병국 등 새로운보수당계 정치인이 복당하였으며 옛 국민의당 출신 정치인들도 미래통합당에 합류했다. 특히 미래통합당 창당 과정을 통해 이언주, 문병호, 김근식, 김영환처럼 민주당계 정당에서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으로 합류하면서 민주당에서 보수정당으로 전향한 민주당계 보수 정치인들이 많아졌다.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던 박형준 역시 이때 플랫폼 자유와 공화를 통해 보수 통합을 주도하면서 이후 미래한국당에 입당해 현실 정치에 다시 복귀한다.
두 보수정당의 분열 사태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보수의 적통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나 결과적으론 바른정당의 후신인 새로운보수당이 사실상 자유한국당에 흡수통합되는 형식으로 합쳐지면서 자유한국당의 승리로 끝났는 모양새가 되었다. 사실상 친박, 친황 위주 지도부가 친유, 소장파를 비롯한 비박 성향 정치인들을 압박했지만 21대 총선에서 완패하면서 친박, 친황,친이 일부가 몰락했다.
다만 21대 총선 이후에는 조금 이야기가 다른데 미래통합당이 제21대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 반성과 자조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고 이 과정에서 기존 바른정당계 지도부를 차지해 당의 변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6]
그런데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자유한국당에 잔류했고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는 2위, 바른정당을 창당하고 바른정당 대선 후보였던 유승민은 3위로 경선에서 탈락하게 되었으며 정작 최종 후보로 당선된 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전직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이다. 여기서 2030의 지지를 받은 홍준표, 유승민과 60대 이상의 지지를 받은 윤석열의 구도가 드러났다.
21대 총선으로 인해 기존의 계파가 와해되고 윤석열의 정계 입문으로 인해 과거와 다른 대권 구도 양상을 보였다. 그래서 홍준표와 유승민이 전략적 동맹을 결성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윤석열을 비판하는 구도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둘 중 어느 정당이 최종적으로 승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새로운보수당 출신의 이준석 체제로 승리해 정권을 탈환하면서 한국당계의 입지는 축소된 반면 바른정당계는 당의 신주류로 떠올랐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결과와 이후의 국민의힘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8회 지선 결과 바른정당계가 이끄는 국민의힘이 압승하며 바른정당계 입장에선 호랑이(한국당계)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와 성공한 격이 됐고 한나라당에서부터 이어져 온 자유한국당계는 보수 적통 경쟁에서 최종 패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허나 바른정당계인 이준석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 사건으로 당대표직에서 내려오며 자유한국당계가 다시 당권을 차지해 주류로 복귀했다.
그러나 2023년 연말에는 이준석계 중심으로 한 반윤 세력의 일부가 다시 국민의힘에서 대거 탈당하면서 3년 11개월만 다시 한번 범보수-우파세력간의 분열이 일어났다.
이준석계와 반윤 세력이 국민의힘에서 나가는 사이에 윤석열 정부의 초대 법무 장관을 지낸 한동훈 전 장관이 투입하면서 범보수세력의 새로운 핵심 인물이자 차기 대선주자로 성장했다.
한동훈의 등장로 다른 범보수 세력의 대선주자들도 일제히 경계을 하면 견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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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2] 여담으로 당시 재보궐선거에선 자유한국당과 정의당과의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여기서 바른미래당 후보의 3% 잠식으로 인해 한국당이 정의당에게 의석을 1석 빼앗기는 등 보수 분열이 미친 영향을 여김없이 보여주었다.[3] 물론 조국이 사퇴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지지율이 다시 빠져나갔다.[4] 같은 해 9월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미래통합당은 신한국당의 기록을 깨고 대한민국 보수정당 사상 가장 짧은 기간 사용된 이름이 되었다.[5] 이에 앞서 신 새누리당이 창당되었으나, 이쪽은 진작 대한애국당이 갈라지면서 원외정당이 되었다.[6] 물론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만 등용된다는 소리는 아니고 기존 자유한국당 인사들도 지도부에 포함되었다. 다만 전에 비해서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이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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