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만 정복
최근 수정 시각: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며 잉글랜드에 노르만 왕조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윌리엄 1세를 따라온 노르만족 기사들이 잉글랜드의 영지를 받고 대륙의 봉건제도를 잉글랜드로 들여오며 새 지배계층을 이루기 시작해 앵글로색슨족과 대립했다. 후에 존 왕이 노르망디, 앙주 등 대륙의 영토를 대거 상실하며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귀족들을 이어주던 연결고리가 사라졌고 결국 이들은 대부분 동화되어 잉글랜드인의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노르만족은 바이킹의 후예이긴 하지만 이미 노르망디에 정착한지 200년이 흘러 그 정체성과 혈통, 언어[1], 풍습, 문화, 종교는 프랑스인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영국-프랑스 라이벌 관계를 들먹일 때 노르만 정복은 사실 프랑스의 잉글랜드 정복이었다라는 떡밥은 양국 국민들의 불타는 주제이기도 하다.
노르만족은 바이킹의 후예이긴 하지만 이미 노르망디에 정착한지 200년이 흘러 그 정체성과 혈통, 언어[1], 풍습, 문화, 종교는 프랑스인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영국-프랑스 라이벌 관계를 들먹일 때 노르만 정복은 사실 프랑스의 잉글랜드 정복이었다라는 떡밥은 양국 국민들의 불타는 주제이기도 하다.
코노트 왕국(Kingdom of Connacht) 국왕으로부터 추방당한 렌스터 왕국(Kingdom of Leinster) 국왕이 잉글랜드 헨리 2세로부터 도움을 요청하자 리처드 드 클레어 (Richard de Clare) 등이 이끌던 노르만계 기사들이 아일랜드로 들어와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들이 독단적으로 노는 것을 안 좋게 본 헨리 2세는 1171년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아일랜드를 정복해 명목상 아일랜드 국왕으로 인정 받았다. 중세 초 아일랜드에 정착한 잉글랜드 노르만족은 켈트족과 크고 작은 전쟁를 벌이며 성장했다. 그러나 백년전쟁이나 장미 전쟁 등으로 바빴던 잉글랜드 국왕은 잉글랜드에 충성하던 노르만족 귀족들의 지원을 끊었고 흑사병으로 노르만족 정착민 수가 감소하며 이 두 민족이 차츰 동화되어 아일랜드인이라는 정체성이 생겼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