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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사회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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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Magsaysay award ... 한국인 막사이사이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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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윤혜란
김선태
2019년
김종기
Kim Jongki
김종기(푸른나무청예단)
출생
국적
학력
목포북교국민학교[1] (졸업)
목포중학교[2]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 41회)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 / 학사)
가족
아내, 딸, 아들 김대현(1979~1995)
소속
푸른나무재단(명예 이사장)

1. 개요2. 생애3. 수상 내역4. CF

1. 개요[편집]

재단법인 푸른나무재단의 설립자 및 현 명예 이사장. 학교폭력 예방과 비폭력 문화 확산에 힘써왔다. 푸른나무재단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를 획득하고 삼일투명경영대상을 수상한 청소년 NGO 단체다.

2. 생애[편집]

1947년 7월 4일 미군정 조선 전라남도 목포부(현 목포시)에서 태어났다. 목포북교초등학교, 목포중학교, 경복고등학교(41회),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홍콩법인장 및 전략수출 담당 임원으로 근무하였다.

그가 해외 출장 중이던 1995년 6월, 고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 김대현 군(1979년생. 사망 당시 16세)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를 접했다. 아들이 학교를 옮겨 친구가 없는 상태에서 상급생들 5명한테 지속해서 시달리고 폭행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더 가슴 아픈 것은 아파트에서 투신해 차로 떨어졌지만 죽지 않아 피를 흘리면서 다시 아파트 현관 쪽으로 걸어와서 재투신을 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 늘 반장을 하고, 수영 대회에 나가 우승컵도 타고, 친구들과 명랑하고 즐겁게 지내던 우등생 아들의 자살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그는 영안실에 가서야 김대현의 친구들의 증언을 통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는 쉬쉬했고, 가해 학생 부모들은 제 자식을 챙기는 데 급급했다. 이에 김종기 이사장은 한국을 떠나려고 했으며 왜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과 자괴감이 들었지만 절망에서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아들을 지키지 못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언론 인터뷰를 자청했다. 더 나아가 학교폭력으로 자녀를 잃는 부모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체계적인 학교폭력 예방 활동을 구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자비로 서울 마포구에 조그만 오피스텔을 빌렸다. 청예단[3]의 시작이었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빠듯한 운영비로 매달 직원 월급을 걱정해야 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냉대와 무관심이 그를 힘들게 했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그가 찾아가면 피하기에 급급했다. "학교폭력이라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여기에 청예단 역시 사무실을 여러번 이사할 정도로 운영도 불안정했다. 이 부분은 김종기 본인이 소유한 건물로 청예단을 불러들이면서 해결했다.

이때 버팀목이 되어준 게 시민들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후원금이 모였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에 시민 47만 명이 동참했다. 그 결실로 2004년 법이 제정됐다.

직원이 5명이었던 청예단은 지금 전국 14개 지부에서 직원 약 330명이 일하고 있다. 연간 학교폭력 관련 상담 건수가 6만 건이 넘는다. 아들의 이름을 딴 '대현장학회'를 만들어 학교폭력 피해자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이런 공로로 2019년 제61회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가수 성시경이 김대현과 반포중학교 친구였으며, 같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살았기 때문에 서로의 집에 놀러갈 만큼 친했다고 한다. 이후 성시경은 김대현 유족과 아직까지 찾아뵙기도 하고 학교폭력 예방 홍보대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해당 이야기는 '유 퀴즈 온 더 블럭 148화' 참고.

아들 잃고 눈물 흘리며 수많은 '자식들' 구한 사나이

3. 수상 내역[편집]

수상연도
부문
제32회 인촌상 교육 부문
아쇼카 시니어 펠로우
제24회 아산상 대상
국민훈장 동백장
제5회 청소년보호대상
좋은 한국인 대상 본상

[1] 現 목포북교초등학교[2] 1973년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폐교.[3]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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